외국인과 함께 한 도리깨질

사는 노래로 절을 가름합니다

등록 2004.09.26 16:19수정 2004.09.26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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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시골집 모습

시골집 모습 ⓒ 김교진

곧 추석이다. 나는 서울 토박이이기 때문에 명절이더라도 서울 부근을 벗어날 일이 없어 귀성전쟁에서 고생할 일은 없지만 가끔씩 시골에 고향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우리들의 마음의 고향인 시골에서 명절을 보낸다면 정감이 넘칠 것이다. 내 주변에는 도시를 벗어나서 고향으로 귀농한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을 통해 고향의 소중함을 알고 농촌체험을 해볼 수 있다.

나의 지인 중에서도 도시에서 살다가 고향인 충남 서산으로 돌아간 무출 김성호씨의 집에서 특별한 보리타작을 했던 기억이 있어서 추석을 앞두고 시골집 풍경을 그리워하며 글을 써본다.

a 딸을 손수레에 태우고 가는 아버지

딸을 손수레에 태우고 가는 아버지 ⓒ 김교진

마침 우리 일행이 무출 선생의 집에서 일을 하는 날에 캐나다인 부부가 일을 하러 왔다. 서산 시내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부부인데 한국의 농촌 풍경이 아름답고 자연을 느끼고 싶어 시골집에 보리 수확을 도우러 왔다고 한다.

그들이 무출 선생을 알게 된 것은 길을 가는데 무출 선생이 더듬거리는 영어로 말을 걸어왔고 그의 용감함과 순수함 때문에 친구가 되었다는 것이다. 외국인과 친구가 되려면 서툰 영어라도 과감히 자기를 표현해야 한다는 것을 무출 선생은 보여준 것이다.

남편 이름은 돈이고 아내 이름은 올가다. 나는 돈에게 당신 이름이 한국말로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묻자 그는 “오, 알아요. 내 이름은 한국말로 돈을 뜻하는 돈이에요. 그래서 학생들이 좋아해요. 내 이름을 자꾸 부르면 돈이 많이 생길 것 같지 않아요?”


a 보리를 걷고 있는 무출선생과 외국인 부부

보리를 걷고 있는 무출선생과 외국인 부부 ⓒ 김교진

그들은 왜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살지 서산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살게 되었느냐고 내가 묻자 서산은 바다가 가깝고 농촌과 가까워서 살고 있다고 대답했다. 확실히 그들은 생태적인 삶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그날 하루 종일 일을 해서 힘이 들 텐데도 전혀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일을 자청해서 하였고 우리가 쉬고 있을 때도 그 부부는 일만 하고 있었다. 내가 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부인 올가는 자기 아버지가 농부이기 때문에 어려서 농사를 많이 해서 힘들지 않다고 말한다.


a 무출 선생의 딸 김덕이(6)와 무출 선생 후배의 아들들인 윤산하(10) 민하(6)의 귀여운 모습.

무출 선생의 딸 김덕이(6)와 무출 선생 후배의 아들들인 윤산하(10) 민하(6)의 귀여운 모습. ⓒ 김교진

이날 무출 선생의 아이와 동네 아이들도 어른들을 도와 농사일을 하였는데 이들은 모두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왔으나 부모들의 귀농 결심으로 어느 날 시골아이가 되었다.

흙 묻은 옷을 입고 있는 것이 도시아이들과는 다른 모습이었으나 자연 속에서 맘껏 뛰어놀 수 있는 자유가 이들에게는 있다.

이 아이들은 여느 아이들과 달리 학원에도 다니지 않고 집에서 컴퓨터 게임도 하지 않는다. 바로 자연이 바로 훌륭한 학원이고 놀이터인데 일부러 돈 내 가면서 학원을 다니거나 눈 나빠지는 컴퓨터 게임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전교생이 60명밖에는 되지 않는 작은 학교이다. 도시 같았으면 한 반 정도밖에 되지 않을 학생수지만 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한 학년 학생수가 10여명밖에는 되지 않고 교직원수가 13명 정도나 되기 때문에 선생님들은 자기 반 학생을 잘 알고 있고 철저한 개인지도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아이들은 집 부근의 학생수가 많은 학교 대신에 집에서 멀지만 작은 학교에 다니고 있다. 작은 학교라고 하지만 시설은 도시의 초등학교와 다를 것이 없었다. 요새 작은 학교가 없어지고 있다는데 아이들을 잘 가르치려면 작은 학교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좋을 것이다.

a 마을 창고에서 도리깨질을 하고 있다

마을 창고에서 도리깨질을 하고 있다 ⓒ 김교진

이날 서울에서 무출 선생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 생명운동 공부모임의 회원인 김수진씨와 조병의씨가 보리타작을 같이 했다.

20대에 귀농할 계획을 갖고 있다는 두 사람은 귀농지를 알아보거나 농촌 생활을 경험하기 위하여 우리나라의 농촌 여기저기를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이날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힘든 보리타작을 하게 되어서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전혀 기계를 쓰지 않고 사람의 힘만으로 농사짓는 것을 고집하는 무출 선생의 철학이 보리 수확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서 탈곡기나 다른 장비를 쓰지 않고 도리깨와 대나무를 휘둘러서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도시 사람들에게는 무척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두 사람은 전혀 힘든 내색을 하지 않고 묵묵히 일만 하였으나 다음날 몹시 피곤해 했다는 슬픈(?) 뒷소식이 들려왔다.

올해 무출 선생의 보리밭에서 나온 보리를 팔아봐야 5만원 정도 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보리를 심고 수확하는데 들어간 돈만 해도 50만원이 넘는다고 한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돈이 되지 않는다고 보리를 베지도 않고 밭에서 썩혔을 텐데 무출 선생은 보리 한 알 한 알은 하늘이 준 선물이므로 잘 걷어서 모셔야 한다며 정성스럽게 베어서 말리고 타작하였다.

남들은 밭에다가 돈이 되는 작물만을 심는다는데 그는 큰돈이 되지 않는 주곡농사를 고집하고 있다. 그는 사실 농사지어서 먹고 사는 진정한 농부는 아니다. 그의 아버지와 동생이 농사를 짓고 있으니 그는 농사보다는 지역사회를 위해 문화 예술을 보급하는 일에 열심이다.

그가 시골에 내려오면서 사둔 땅과 시골집은 그와 뜻이 맞는 사람들이 귀농하면 언제든지 빌려주어 문화 공동체를 만들 공간이다.

그가 현재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서산시내에 만들고 있는 문화공간이다. 사람들과의 소통의 장을 마련하기 위하여 만들고 있는 문화공간이 정작 그가 하고 싶은 일이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그곳에 와서 이야기하고 차도 마시고 풍물도 하고 춤도 추는 그러한 곳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물론 사람들이 문화공간을 이용하는 데 비싼 돈을 받을 생각은 없다고 한다. 돈을 내도 좋고 내지 않아도 좋다고 한다. 최소한의 유지비만 나오면 되기 때문에 입구에 작은 복전함 정도만 놓아두려고 한다는 것이다.

a 일을 끝내고 막걸리를 마시고 있다

일을 끝내고 막걸리를 마시고 있다 ⓒ 김교진

일을 끝낸 후 무출 선생 집 마당에서 삼겹살을 구워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외국인 부부는 돌판에 삼겹살을 굽는 모습을 보며 상당히 놀라워했다. ‘incredible’을 연발하였다. 무엇이 그리 놀랍고 믿을 수 없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무출 선생이 외국인 부부에게 한국의 시골집(흙집)이 생태적인 이유를 영어로 설명했다. 더듬더듬 많이 막히는 영어였지만 외국인들에게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일을 마치고 난 후에 마신 막걸리 맛은 참으로 좋았다. 농촌에서는 이렇게 마당에 앉아서 나무를 때며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는 여유가 있다. 도시의 갇힌 아파트 안의 거실에서 먹는 밥맛은 이보다 못할 것이다.

그러나 농촌 인구는 계속 줄고 있고 도시는 팽창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들의 삶도 점점 황폐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농촌은 없어지고 도시만 남게 될 앞으로의 사회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해진다.

이날 집 주인인 무출 선생은 막걸리 한 잔을 마신 후 구성진 목소리로 그가 지은 노래를 불러주었다.

하눌로 살유

어--화-- 어--화-- (구슬펴 늘인 상여가락으로)

푸른뫼 맑은물도 오라쳐 팔고 제 놈의 벌이로 성을 쌓아

어--화-- 어--화--

감치는 뫼결을 짓누르고 아파트둥치들이 마음들 각단내

어--화-- 어--화---

깊은산 속살을 파내어서 뼁끼칠 자동차 팍팍쿵 덮쳐나

어--화-- 어--화--

어진 벗님들 돈돈에 꼬여 우리는 멀고 갈갈이 흩바람

어--화-- 어--화--


(고개 넘는 상여 힘진 두마치로)에-라- 에-라-

자동차 대굴빛 그 눈에 박아줘

에-라- 에-라-

찻길의 공구리 그 몸에 입혀줘

에-라- 에-라-

나르는 봉다리 그 입에 다 먹여

에-라- 에-라-

밤낮없는 테레비 그 마빡에 달아줘

에-라- 에-라-

만드는 그눔에 실컷 메-겨 터지도록 메-겨

어-화 어---화 어리설 줄줄 보내어 주어

이제 저는 이날을 휘덮은 돈 놀음 저들을 장사지냅니다. 적잖이 쌓였던 돈과의 정분을 끊는 것도 맨 쉬운 일이 아니지만, 상여소리 목 놓아 부르면서 그와 한데 했던 날들을 시원히 털어 버립니다. 내로라하는 틀과 꽉 잡아둔 길을 따라서 저희는, 돈벌이 머슴으로 길들여지고, 이제는 그 벌이에 바쳐져 벌이로 파는 것들을 사 쓸 줄만 아는 판이 되었습니다.

제곁에 널린 것을 가지고 쉽게 해 쓸 수 있는 것도, 사서 입고 먹고 써야 되는 것으로 몸 배었습니다. 절로 타고난 힘을 스스로 부려 쓰지 않고 사 쓰고 또 사서 부리고 있는 겝니다. 그래 가면서 우린, 힘 중에 돈심을 우러러 보게 되고, 타고난 사람 힘을 제 스스로를 깔보는데까지 이르렀습니다.

사람의 힘이 헐한 게 아니더라구요. 저는 가진 것들을 좀씩 놓을 밖에 없게 되었죠. 지난해 어릴적 자란 스산으로 가며, 덧입고 덧먹고 덧짓고 사는 것들을 줄이게 되었습니다. 더는 가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며 뜻밖에도 한줌을 덜 때마다, 한 아름씩 떠안기는 제힘을 깨치게 되고, 주욱 그 맛을 보고 있습니다. 참으로 씽씽한 힘입니다.

그 힘은 질기고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르지 않는 하눌된 힘에 샘을 대고 있는 거지요. 하나된 사랄로 춤추고 노래하는 하눌이 우리며, '내'가 아니고 또 무엇인가요? 사랄은 그치지 않습니다. 멈추지 않습니다. 줄을 대고 잇대어 피어납니다. 막히면 뚫고 나섭니다. 누르면 업어치고 일어섭니다. 시시로 고달프고 겨운 게 있지만 그럴수록 그 속심은 똘똘이 뭉칩니다. 묻히면서도, 불씨를 더욱 또렷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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