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들이 살면 천국 아닌가요?

다시 찾은 한나의 집

등록 2004.09.27 23:12수정 2004.09.28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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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아담하게 지어진 한나의 집 전경

아담하게 지어진 한나의 집 전경 ⓒ 송영한

파란지붕을 보았니?- 천사들이 사는 나라

추석 하루 전날, 한나의 집(구리시 사노동 544-3, 원장 김용순)을 다시 찾았다. 지난 5월 한나의 집이 한창 건축중일 때 임시숙소로 쓰던 성광교회 교육관에서 정신지체 장애우들을 만난 뒤 꼭 4개월만이었다. 이제는 60여평의 어엿한 보금자리를 일구어 20여명의 '천사'들이 서로를 섬기며 살아가고 있었다.

첫 탐방 때 새집에 입주하면 꼭 방문하겠다고 다짐했던 원장님과의 약속이 여태껏 마음의 빚으로 남아있었기에 이번 만남이 더 기다려졌었다.

구리 퇴계원 고속도로 사노동 나들목을 빠져나와 구리시청 방향으로 300m 쯤 오다가 우회전 하라는 원장님의 말을 듣고 아직도 시골 정취가 남아 있는 좁다란 자연취락 마을길을 따라 500m쯤 산기슭으로 올라가니 파란색 지붕을 얹은 아담한 컨테이너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마당에 들어서니 필자를 알아보는 여러 천사들이 손짓을 하며 반갑게 맞아준다. 김용순 원장님은 “집들이 할 때 초청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며 연신 필자의 손을 잡고 흔든다. 사정을 알고 보니 예전에 받았던 뇌수술 예후가 좋지 않아 방사선 치료를 받느라고 입주식 때도 계시지 못하고 병원과 친척집을 전전하며 치료를 하다가 며칠 전에야 이곳으로 오셨다고 한다.

나은 정 보다는 기른 정

a 한나의 집 새로운 마스코트 은혜

한나의 집 새로운 마스코트 은혜 ⓒ 송영한

“원장님 은정이 어디 있지요?” 준비해간 약간의 선물과 성금을 전달하고 필자는 제일 먼저 은정이를 찾았다. 은정이는 4개월 전 젖먹이 상태로 강보에 쌓여 퇴행성 뇌성마비를 앓고 있던 갓난쟁이다. 순간 원장님은 "내가 방사선 치료 받느라고 돌볼 사람이 없어서 그 어린 것을 다른 곳으로 보냈어요"라며 말을 잇지 못한다.


이어서 원장님은 “은정이를 보내던 날 우리 내외는 물론이고 온 천사들이 울고불고 난리가 났었다”면서 “그걸 보면 역시 낳은 정보다는 기른 정이 더 무섭더라”며 속내를 털어놓는다.

원장님은 요즘 은정이에게 쏟았던 정을 대신 은혜(여·4)에게 쏟고 있다. 은혜도 역시 퇴행성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아기천사로 친부모의 버림을 받았지만 한나의 집에서는 귀여운 막내로 양부모인 원장님 내외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고 있다.


선한 사마리아인 같은 이웃들

비록 컨테이너 건물이지만 건평 60평이 되는 한나의 집은 넓은 거실과 7개의 방 그리고 주방과 욕실로 꾸며져 있어 20여명의 천사들이 지내기에는 넉넉하다고 한다. “예전에는 자원봉사자들이 와도 발 디딜 틈이 없어 불편했는데 이제는 넓어서 좋다고 모두가 내 일처럼 기뻐해 준다”며 자원봉사자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다.

a 항상 선한 이웃들이 있기에...

항상 선한 이웃들이 있기에... ⓒ 송영한

한나의 집에는 인터넷 동아리 파랑새를 비롯하여, 마.따.사(마음이 따듯한 사람들), 선한이웃, 나눔터 등 4개 팀이 한 달에 한 번씩 교대로 찾아온다. 이들은 천사들의 목욕을 시켜주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기도 하며 옷과 침구를 세탁해 주기도 하는 등을 노력봉사를 하고 있다.

동행했던 임동근 위원장님은 이 말을 듣고 “제가 운영하는 늘푸른산악회에 봉사팀을 만들어 저희도 한 몫 하겠습니다”라며 즉석에서 시원시원하게 약속 하신다.

“이곳 주민들도 심성이 참 좋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주위에 장애시설을 세우려고 하면 데모를 하고 갖은 방법으로 방해를 하는데 이곳 주민들은 한나의 집을 건설할 때부터 지금까지 협조를 아끼지 않고 많은 도움을 주신다”며 "아직도 따스한 정이 남아 있는 마을이 이곳 사노리 마을"이라고 원장님은 고마운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집이 큰 만큼 걱정도 큽니다

원장님은 요즘 또 다른 걱정 때문에 잠을 못 이룬다고 한다. 애초에 부지마련과 건설비용이 추가되어 상당액의 빚을 진 것도 걱정거리이지만 그보다 더 큰 걱정은 비용 때문에 컨테이너로 건축이 된 관계로 장애인복지건축법상 소방법에 걸려 2005년도 까지 법인화를 하기가 힘들어 졌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복지부에서 ‘미인가 시설 지원책’이 발표되어 외벽과 내벽을 다시 증개축할까싶어 관계자들과 상의 하여보았으나 6천여만원의경비가 소요된다고 해 포기했다.

“저희 같은 경우는 단지든지 그룹홈이든지 다 해당이 되는데 정 소방법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곳을 팔고 좀 더 시골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법인인가를 받지 못하면 모든 운영을 독지가들에게 의탁해야 하고 관할청으로부터는 1년에 화재보험 보조금으로 100여만 원밖에 지원을 받지 못해 사실상 운영하기가 어려우니까요.”

게다가 요즘은 어려운 경제사정 때문에 독지가들의 지원도 거의 끊긴 상태여서 더욱 운영이 어렵다고 말한다.

천사들이 살면 천국 아닌가요?

하지만 김 원장은 어떤 경우에도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도시든 시골이든 어디를 가더라도 우리 천사들만 있으면 그곳이 바로 천국이라는 마음으로 끝까지 맡겨진 사명을 감당 할 것”이라고 결연한 표정으로 말한다.

은혜와 빠이~빠이를 끝으로 취재를 마치고 돌아서는 기자의 가슴에는 '우리사회에 아직도 국가가 책임지지 못하는 소외계층이 사실상 존재하고 그 부분을 사랑으로 감당하고자 하는 봉사자들은 여러 가지 실정법에 얽혀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는 모순적 구조가 되풀이되는 현실'이 못내 답답한 체증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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