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감싸고 있는 타라나키 산정철용
차가움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 부드럽고 평화로운 모습과 예각의 날카로움과는 거리가 먼 그 완만한 능선으로 인해, 나는 해발 2518m라는 타라나키산의 높이가 좀처럼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것은 타라나키산이 그 주위에 비교가 될 만한 다른 산들이 없이 너른 벌판에 혼자서 솟아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1775년에 있었던 타라나키산의 마지막 화산 폭발을 목격했을 마오리들은, 이 산이 이렇게 외따로 높이 솟아 있고 맑은 날에도 구름 속에 잠겨 있는 이유에 대해서 아주 낭만적인 해석을 내리고 있어 흥미롭다.
타라나키산은 통가리로산을 이기지 못한다
마오리 전설에 따르면, 아주 오랜 옛날에는 뉴질랜드 북섬의 높은 산들이 북섬 한가운데에 있는 타우포 호숫가 근처에 함께 모여 있었다. 이 산들은 작고 아름다운 산인 '피항아'를 사랑했는데, 산중의 산이라 불리는 '통가리로'와 '타라나키'도 마찬가지였다.
마침내 이 두 산은 피항아를 차지하기 위한 대혈투를 벌이게 되고, 며칠 동안 계속된 싸움에서 통가리로가 최후의 승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패배로 인한 분노와 사랑을 잃은 슬픔에 괴로워하던 타라나키는 땅 속에서 온몸을 솟구쳐 해 지는 쪽으로 달려 나갔다.
이 때 충직한 친구인 '라우호토 타파이루'라는 바윗돌이 타라나키의 앞길을 인도했다. 라우호토의 인도를 받아 타라나키가 지나간 곳에는 깊은 골짜기가 패여 강물이 흐르게 되었는데, 그 강물이 바로 아직도 흐르고 있는 '팡가누이강'이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던 타라나키는 새벽 무렵에 서쪽 바닷가에 이르렀고, 지친 그는 그 곳에서 잠시 멈추고 잠을 청했다. 이 때 원래 이 지역에 서 있던 산들인 '포우아카이'와 '파투하'는 타라나키가 바다 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막기 위해, 잠이 든 타라나키의 발에 족쇄를 채워 그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도록 했다.
오직 라우호토만이 이 족쇄를 풀 수 있는데, 그는 아직까지 타라나키의 족쇄를 풀어 주지 않고 있다. 신비한 힘을 지닌 이 바윗돌은 지금도 타라나키산과 태즈만해 사이에 있는 작은 마오리촌 '푸니호 파'에서 타라나키산을 지켜 보며 서 있다.
이렇게 해서 타라나키산은 높은 산들이 무리지어 서 있는 타우포 호숫가 근처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서쪽 바닷가의 벌판에 외따로 혼자 서 있게 됐다. 그리고 아직도 잃어 버린 사랑 피항아를 그리워하며 눈물과 한숨을 삼키고 있어서, 타라나키산에는 맑은 날에도 구름과 안개가 걷히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이 전설은 화산 폭발이나 지진 등과 같은 지각 변동과 구름과 안개 등과 같은 기상 현상을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어서 무척이나 재미있다. 더욱 재미난 것은 이 전설에 나오는 것처럼 통가리로에게 패배하는 타라나키의 이야기가 실제 역사를 통해서도 몇 번씩이나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타라나키는 통가리로에게 사랑만 빼앗긴 것이 아니라 국립공원 지정에 있어서도 선수를 빼앗겼다. 1894년 뉴질랜드 최초로 통가리로 국립공원이 지정됐고, 타라나키산은 그로부터 6년이 지난 1900년에 가서야 두번째 국립공원(이 공원은 타라나키산의 영어 이름을 따서 에그몬트 국립공원으로 불린다)으로 지정되었으니 말이다.
연간 방문객 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통가리로 국립공원에는 매년 100만명 이상이 다녀가지만 타라나키산은 그 절반도 안 되는 30만명이 고작이다. 또한 통가리로 국립공원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일찍부터 세계에 그 이름을 널리 떨치고 있는 반면 타라나키산은 뉴질랜드 내에서만 조금 알아 주는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