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날, 널뛰기에 열중인 어린이들.한성희
눈이 초롱초롱 빛나며 관심이 집중되면 일단 첫 단계는 성공이다. 그럼 두 번째로 들어간다. 정자각에 데리고 올라가서 이곳은 올라오면 안 되지만 선생님이 여러분이 예뻐서 구경시키려고 특별히 올라왔다고 말하고, 소중한 문화재니까 문을 흔들거나 장난을 치면 안 된다고 하면 거의 모두가 얌전하게 자리 잡는다.
"여기는 옛날에 진짜 있었던 왕자님과 왕비님이 돌아가셔서 잠들어 계신 곳이에요. 이담에 왕비 되고 싶은 사람? 손 들어봐요."
"저요, 저요."
"그럼 왕자가 되고 싶은 사람?"
모두 빠짐없이 손을 드는 여자 애들과는 달라 남자어린이들은 쑥스러워서 몇몇만 손을 든다. 이어서 9살에 결혼하고 어쩌고 하면서 계속 질문을 던진다. 지금 몇 살? 7살? 9살? 그 나이에 왕자님은 결혼했어요, 놀랬죠? 그리고 10살에 돌아가셨다는 말 정도로 맺음을 하고 여기는 왕과 왕비님들이 계신 곳이고 소중한 문화재가 있는 곳이니 휴지 같은 거 함부로 버리지 말고 아껴야 한다고 끝낸다.
어린아이들에게 소중한 문화재에 대한 인식을 길러주는 정도만 심어준다면 성공이다. 그리고 ‘바이바이’를 하면 "선생님 안녕, 안녕" 하는 귀여운 음성들이 끝없이 따라와 계속 뒤를 보며 손을 흔들어야 한다.
초등학생들이 단체로 왔다면 그래도 좀 낫다. 제일 말 안 듣고 딴 짓 하는 건 중학생들 중 남학생들이다. 가뜩이나 국사 공부는 학교에서도 따분하고 골 아픈 과목인데 하는 표정이 역력하고, 여기에서 성종과 예종이 어쩌고 한명회가 어쩌고 영조까지 나오면 시들시들하다는 얼굴에 다른 곳을 보거나 거의 반응을 안 보인다. 그래도 장순왕후가 16세에 세자빈이 됐다는 얘기가 나오면 관심을 보이긴 한다. 사춘기 나이들인지라 결혼 얘기엔 눈이 번쩍 하나보다.
그래서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교 남학생들이 단체로 오면 처음부터 군기를 확 잡아야 한다. 우선 홍살문 앞으로 데리고 가서 마이크가 잘 들리느냐고 물어 주의를 환기시킨 다음, 왕과 왕비가 잠들어 계신 곳에서는 우선 문화해설 이전에 인사부터 드리는 것이 예의라고 모두 정자각을 향해 서게 한다.
"차렷! 경례."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하고 나면 흩어졌던 신경이 좀 긴장된다. 인사를 하게 하는 실제 이유는 왕과 왕비의 능에 절을 하게 하려는 목적이 아니다. 문화재에 대한 예의와 경각심을 갖게 하려는 의도다.
그리고 임금님과 신이 걸어간 ‘참도’를 설명해주면 서로 걸어본다고 야단들이다. 이 정도면 슬슬 느긋하게 시작해도 된다. 흥미와 재미가 있을 때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솟고 애정이 생기지 않겠는가. 역사와 문화재에 대한 애정은 관심에서 비롯되고 애정으로 발전하며 그것이 평생 간다는 것이 내 믿음이다.
"귀신이 들어가는 문이라면서요?"
해설을 하다보면 웃지 못 할 일도 더러 생긴다. 능이 시작되는 홍살문 입구에는 능에 대한 간략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대개 이곳에서 시작해서 정자각으로 가는 것이 순서다. 홍살문이 서 있다는 것일 뿐 사방으로 잔디밭이 훤하게 트인 정자각은 어느 곳에서든지 출입이 가능하다.
홍살문에서 해설을 마치고 참도를 지나 정자각 쪽으로 가려고 할 때, 갑자기 젊은 여인이 저쪽에서 잔디밭에서 놀고 있는 아이 이름을 마구 부르며 허둥지둥 달려왔다. 새파랗게 질려서 헐레벌떡 달려온 여인은 잘 놀고 있는 아이 손목을 확 낚아챈다.
아이가 다친 것도 아닌데 무슨 일이 생겼나 의아해서 바라보니, 아직 홍살문을 들어서지 않은 내 앞으로 아이를 손목을 잡은 채 끌고 가다가 숨을 헐떡거리며 겁에 질려 홍살문을 가리킨다.
"얘가 이 문으로 들어갔어요."
"????"
"이 문, 귀신이 들어가는 문이라면서요?"
"네?"
귀신이 들어가는 문? 맙소사. 홍살문을 홍문, 신문이라고도 하며 신이 들어가는 문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 자릴 떠났나보다. 신이 들어가는 문이라니 귀신만 들어가는 문인가본데 자기 아이가 홍살문을 통과하는 것을 보고 혼비백산해서 잔디밭을 가로질러 정신없이 달려온 모양이다. 그 순간, 어이가 없어 기가 막혔지만 하도 겁에 질린 어머니의 모습에 웃을 수도 없었다.
귀신이 들어가는 문이 아니라 임금님이 들어가는 문이고 예전 같으면 아무나 들어설 수도 없는 문이었다고 일러주니 안심한 듯한 아이 엄마의 모습이 나중에 생각하니 왜 그리 우습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