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

금성출판사 <근·현대사> 집필자들 "권철현 의원, 공개토론하자"

등록 2004.10.05 21:49수정 2004.10.06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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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종 교수는 "언론도 그 교과서를 한번만이라도 읽어보고 보도해 달라"며 "(무책임한 발언에) 언론이 장단을 맞추지 말라"고 사실확인에 기반한 보도를 언론에 요청했다.
김한종 교수는 "언론도 그 교과서를 한번만이라도 읽어보고 보도해 달라"며 "(무책임한 발언에) 언론이 장단을 맞추지 말라"고 사실확인에 기반한 보도를 언론에 요청했다. 오마이뉴스 권우성

권철현 한나라당 의원이 '반미·친북·반재벌 교과서'로 낙인찍은 금성출판사의 <한국 근·현대사> 집필진들은 5일 저녁 언론에 배포한 의견서를 통해 권 의원의 주장에 대해 "색깔논쟁의 재연"이라고 규정하면서 교과서를 정치적 이용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권철현 의원의 주장에 대한 금성출판사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집필진들의 의견'이라는 문서에서 "권 의원이 교과서 서술의 전체적 맥락을 무시한 채 자의적으로 일부 부분만을 발췌하거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정한 역사인식을 가지고 교과서 서술을 멋대로 해석한 다음, 마치 이를 일반적인 역사인식인 양 호도하고 국정감사라는 형식을 통해 언론에 흘려 보도해 이 교과서를 사용하는 수많은 교사와 학생에게 심각한 우려를 낳게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부언론, 무책임한 발언에 장단 맞추지 말라"

또한 이들은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는 정해진 검정절차와 여러 차례의 검토를 거쳐 간행되어 고등학교에 사용되고 있다"며 "그런데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치적 의도로 마치 교과서가 특정 이념을 선전하고 있는 양 선동해 교과서를 사용하는 교사나 학생들은 물론 온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고 일부 정치인과 언론의 부당한 행태를 지적했다.

이들은 "교과서를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이와 같은 선동적인 행태는 특정 언론을 통해 이전에도 이미 몇차례 행해졌으나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다"며 "이번에는 국회의원이 국정감사라는 국회의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를 이용해 같은 내용을 재탕하고 있다는 데서 그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 <월간조선> 2004년 4월호는 '경고! 귀하의 자녀들이 위험한 교과서에 노출돼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싣고 6종의 고교 근·현대사 검정교과서를 비교분석해놓았다.

이날 저녁 8시께 대표집필자인 김한종 한국교원대 역사교육학 교수는 서울시교육청 국감장을 직접 방문해 "이미 두번이나 논란이 됐던 내용이 왜 이렇게 반복되는지 납득할 수 없다"며 "교과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김 교수는 "언론도 그 교과서를 한번만이라도 읽어보고 보도해달라"며 "(무책임한 발언에) 언론이 장단을 맞추지 말라"고 요청했다. 김 교수는 "권 의원은 우리의 의견서에 대해 공개적으로 답변해야 한다"며 "권 의원과 공개석상에서 토론할 생각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국감에서 축소되고 있는 역사교육의 정상화가 많이 논의되기를 바랐는데 교과서문제 때문에 그런 부분이 묻혀 당혹스럽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집필진, 7쪽짜리 의견서 통해 권철현 의원 주장 조목조목 반박


집필진들은 7쪽에 이르는 '의견서'를 통해 교과서 내용과 권 의원의 주장, 집필진 의견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먼저 이들은 '미군은 억압적 점령군, 소련군은 순수한 조력자로 묘사했다'는 권 의원의 주장에 대해 "교과서에서는 소련군도 점령군 행세를 했으며 김일성 집권을 도왔다고 서술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또 '6·25 전쟁에 대해 남침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군사적 충돌로 정의했다'는 지적에 대해 "(권 의원이) 교과서 내용을 필요한 부분만을 끌어다 자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며 "군사적 충돌이라고 표현한 것은 6·25 전쟁 자체가 아니라 그 이전에 38도선 등에서 일어났던 충돌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북한의 천리마운동을 우호적으로 기술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천리마운동이 북한 주민의 노동력을 최대한 동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되었다고 서술되어 있다"며 "천리마 운동이 한때 북한의 경제건설에 커다란 역할을 하였음은 북한사 책들에 대부분 서술되어 있다"고 반박했다.

또 '주체사상을 미화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교과서에는 주체사상을 비판적으로 보는 관점과 긍정적으로 보는 관점을 적은 글을 하나씩 제시하고 있다"며 "그런데 한쪽 자료만 제시해놓고 주체사상을 미화한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권 의원이 '정부의 공식적 통일방안보다 재야·운동권의 좌파적 통일방안을 훨씬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고 지적한 것에 대해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 뿐 아니라 남한 정부의 공식적 통일방안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 대해서도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며 "남한 정부의 통일정책에 대해서는 별도의 연표까지 제시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의견서에 대해 권 의원이 공개답변을 해줄 것을 요구했다.

"권철현 의원, 공개토론하자"
[일문일답] 대표필자 김한종 한국교원대 역사교육학 교수

ⓒ오마이뉴스 권우성
다음은 대표필자인 김한종 교수의 모두 발언과 일문일답이다.

"먼저 교과서문제로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 이번 기회를 통해 다시 한번 얼마나 조심해서 역사교과서를 써야하는지 책임을 느낀다. 이것은 교과서다. 학생이 보는 것이다. 그동안 역사교과서는 정치적으로 이용돼왔다. 또 이 교과서는 이미 두 번이나 논란이 된 바 있다. 책이 완성되기도 전에 현 정부-전 정부 논란이 있었고, 올 4월 <월간조선>이 어제 권 의원이 주장한 내용과 비슷한 기사를 실은 바 있다. 왜 이렇게 반복되는지 납득할 수 없다.

교과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아 달라. (책 내용은) 한 글자나 한 단어만 가지고 보는 게 아니다. 그런데 심한 경우 서술어는 빼버리고 앞부분만 떼거나, 또 부정적 자료와 긍정적 자료를 모두 실어놓으면 부정적 자료만 떼서 인용하는 경우가 지겹도록 많다. 일부만 떼지 말았으면 좋겠다. 자의적으로 떼서 옮기지 말아 달라.

언론은 그 교과서를 한번만이라도 읽어본 뒤 보도해 달라. 불쑥 보도한 다음에 사실이냐 아니냐고 물어오면 어떡하느냐. 오늘 대대적으로 보도했는데 제가 지금 얘기하는 게 무슨 소용이냐.

제 개인사관으로 교과서를 쓴 게 아니다. 교육과정을 보고 쓴 것이다. 권 의원이 확인했는지 모르겠지만 두산출판사 역사교과서의 경우도 금성출판사와 거의 비슷하다. 물론 서술하는 표현이 좀 다를 수 있다. 자기 견해를 교과서에 넣은 사람은 없다. 또 80년대 많이 쏟아진 근·현대사 연구업적을 반영해 쓴 것이다. 정말 친북·반미로 일관했다면 폐기해야 할 것이다.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다수의 현대사 책을 검토하기 바란다."

- 지난 4월에 <월간조선> 심층보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야 논란이 되는 이유는?
"제가 묻고 싶은 질문이다. 문제가 됐더라면 그때 언론이 문제삼았을 것이다. 하지만 언론에서 별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 보도하지 않은 것 아닌가? 똑같은 내용인데 호들갑을 떨며 보도하고 있다."

- 권 의원의 발언에 대해 어떤 대응을 할 것인가.
"저희 집필자들의 의견서에 대해 공개 답변해 달라. 공개토론도 괜찮다."

- 권 의원을 만날 용의는 있나.
"둘이 만날 일이야 없겠지만 공개석상이라면 응하겠다. 공개석상에서 토론할 수 있다. 전국 고교의 절반 정도가 이 교과서를 채택하고 있다. 교과서는 교사가 선택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 전국에 친북·반미로 물든 교사가 그렇게 많다는 얘긴가."

- 오늘 일부 언론에 이 문제가 대서특필됐을 때 심정은?
"솔직히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적 목적으로 교과서를 이용하지 말아 달라. 왜 이렇게 반복되는지 모르겠다. 언론이 걸러주기 바란다."

- 학부모 등으로부터 항의받지는 않았나.
"전혀 없었다. 다만 일선교사들이 학부모들로부터 무슨 얘기를 듣지 않았을까 우려스럽다. 이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야 한다."

- 교과서 문제로 현재 국감이 파행을 거듭하고 있는데.
"저는 이번 국감에서 역사교육 축소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번 교육부 국감에서 역사교육의 정상화가 논의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교과서문제 때문에 그런 부분이 묻혀 당혹스럽다."

- 필자들이 다 모여서 논의한 것인가.
"각 지역에 떨어져 있고 여행간 사람도 있었다. 일부만 모이긴 했지만 (미참석자와는) 전화통화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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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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