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수많은 보고서는 어디로 갔을까?

처음 리포트를 돌려받고 난 뒤의 감동

등록 2004.10.08 04:12수정 2004.10.08 14:32
0
원고료로 응원
최근 경기 침체와 청년실업이 계속되면서 대학생들은 이중 삼중의 노력을 해야 합니다. 외국어를 비롯하여 취업을 위한 공부는 물론, 학점 관리를 위해 수강하는 과목 공부도 소홀할 수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를 대비하는 시험 공부만큼 신경 쓰이는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리포트'입니다.

각 전공별로 다르겠지만 제가 재학 중인 국어국문학과는 많은 수업이 발표로 진행됩니다. 한 학기에 한두 번, 개인별 또는 조별로 자신들이 노력한 결과물을 수강생들 앞에서 발표하고 토론을 진행합니다. 또, 발표 외에도 추가로 제출해야 하는 리포트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정된 시간 내에 여러 개의 리포트를 준비하다 보니 일부 학생들은 남의 논문이나 서적, 인터넷에 있는 각종 문서를 슬쩍 베끼는 일도 종종 생기곤 합니다. 또, 초임 교수님이나 시간강사분들의 수업 시간에는 리포트를 제출하라는 말에 야유가 터져나오기도 합니다.

짧은 내용의 리포트거나 촉박하게 준비하는 경우에는 한두 시간 걸리는 경우도 있지만, 긴 분량의 리포트를 성실하게 준비하려고 할 때에는 족히 며칠씩 걸리곤 합니다. 학과별로 차이가 있겠지만 한 학기에 제출하는 리포트가 10여 개 이상 되다보니 시간이 여간 많이 걸리는 게 아닙니다.

발표의 경우에는 교수님들의 평가가 별도로 이루어지지만 리포트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릅니다. 본인이 제출한 리포트가 어느 정도의 평가를 받았는지는 모른 채 지나가 버려 성적이 나오면 각종 추측이 난무합니다. "아마 리포트에서 학점이 좀 깎인 것 같아" "좀 늦게 제출하긴 했지만 내가 노력한 만큼 성적이 나왔는데…"

그런데 '이 강의의 리포트만큼은 열심히 써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번 주 강의 시간에 교수님은 지난 주 학생들이 제출한 리포트를 다시 들고 오셨습니다. 곧이어 교수님은 한 명 한 명 학생들의 이름을 호명하며 리포트를 돌려 주셨습니다.

돌려 받은 리포트에는 교수님의 정성이 듬뿍 담겨 있습니다.
돌려 받은 리포트에는 교수님의 정성이 듬뿍 담겨 있습니다.박성필
리포트를 돌려 받은 학생들이 작은 탄성을 지르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곧 알 수 있었습니다. 교수님은 각 학생들의 리포트마다 평가와 더불어 고치면 좋을 부분, 심지어 오탈자까지 고쳐 놓으신 것입니다.


잠시 후, 교수님의 말씀이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의 리포트를 검토하는데 열서너 시간이 걸렸어요…." 지난 해 이미 정년 퇴임하시고 연구에 매진하면서 명예교수의 자격으로 출강하고 계신 그 교수님은 학생들의 리포트를 한 줄도 빠짐없이 읽고, 모든 리포트에 손수 평가를 적어 놓으셨던 것입니다.

그 강의가 끝난 후, 학생들의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교수님, 정말 대단하시지 않아?" "생각치도 못 했는데…". 다양한 반응이 나왔지만 공통된 의견은 리포트를 되돌려 받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는 것과 교수님이 직접 뭔가 평가를 적어 놓은 경우는 처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대학가에서는 리포트를 두고 여러 낭설들이 떠돌기도 합니다. "어느 교수님은 리포트 안 읽으신다던데?" "리포트를 선풍기로 날린다는 소문도 있어." 사실 학생들 사이에서 이런 소문이 떠도는 것은 대부분 학생들이 리포트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그 교수님의 강의에는 4개의 리포트가 더 남아 있지만 학생들은 '교수님의 정성 때문이라도 열심히 써야겠다'는 것입니다. 돌려받은 리포트를 들여다 보고 있으니 그 동안 여러 교수님께 제출한 수십개의 리포트의 행방이 궁금해집니다. 그 수많은 리포트는 어디로 갔을까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2. 2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3. 3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4. 4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5. 5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