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공 사전에서 '서민'은 없었다

[取중眞담] 공익성 망각하고 수익성만...국감서 맹비판 받아

등록 2004.10.13 14:58수정 2004.10.14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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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위치한 대한주택공사 본사.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위치한 대한주택공사 본사. ⓒ 오마이뉴스 이성규

[기사수정 14일 오전9시15분]

주택공사에게 서민은 '말많고 불만많은' 불편한 존재였다. 주공 임직원들의 이같은 인식은 지난 12일 국정감사장에서 여지없이 드러났다.

주공은 최근 임대료 거부파동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임대료 5% 자동인상 규정과 관련해 똑부러진 해답을 내놓지 않았다. 그렇다고 좀더 인하하겠다는 방침을 밝히지도 않았다. 오히려 "임대주택을 지으면 적자"라며 투덜대기만 했다. 중산·서민층, 영세민들의 주거안정 보다는 수익성이 우선이라는 인식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12일 국감에서 임대료 5% 자동인상 규정의 부당성과 고리의 전월세 전환이율 문제점을 지적한 한나라당 의원들의 집요한 질문에 홍인의 주공 부사장은 이렇다할 확정적 답변을 내놓기를 거부했다. 다만 "검토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한시적 사장 대행'의 직분 때문에 즉석에서 결단을 내리기는 힘들었다는 점을 고려한다고 해도 홍 부사장의 태도는 서민에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다는 점만은 분명했다.

이는 정갑윤 한나라당 의원의 질의에 대한 답변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국민은행의 서민임대주택 자금 융자는 이자가 5.5%이지만 주공은 전환이율을 12%를 적용하고 있는데 서민들에게 엄청난 고리의 이자를 적용하는 것 아니냐"라는 정갑윤 의원의 질문에 홍 부사장은 "임대차 보호법에서 시중 월세 전환이율을 14% 이내에서 하도록 돼 있다"는 법조항을 들이댔다.

적용하는 전환이율이 높을수록 월세 임대아파트의 전세환산 가격이 낮아져 주공이 최근 발표한 임대료 동결 혜택을 받기 힘들어진다. 이 때문에 주공 임대아파트 입주민들은 전월세 환산율을 국민은행 서민주택자금 대출 수준으로 낮춰줄 요구해 왔다. 그러나 홍 부사장은 현행법상 12%를 적용하는 것은 위법행위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정당성을 홍보한 것이다.


홍 부사장의 이같은 답변에 다른 의원들도 들고 일어났다. 한선교 한나라당 의원은 "임대료 체납율이 증가하는 곳이 서울 지역인데, 이렇게 높은 이자율을 주공이 적용하면 서민들은 임대료 인하 혜택을 절대로 볼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강래 열린우리당 의원도 "공공성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공기업의 공공성 회복을 강조했다.

홍 부사장은 임대료 분쟁을 조절하기 위한 이른바 '참여형' 공동대책기구 구성 제안에도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홍 부사장은 "임대료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주공과 주공임대아파트 입주자 대표, 지역실정 잘 아는 시민단체 대표가 가칭 '임대료 산정 위원회'를 구성할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에 "그것까지는 생각을 못했지만 검토해 보겠다"고만 답했다.


기가 막힌 것은 주공임대아파트 입주자 대표들이 꾸준히 제안해 온 이 방안에 대해 홍 부사장은 "생각을 못했다"고 한 것이다. 이는 주공이 입주민들의 요구를 한번도 귀담아 듣지 않았음을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하거니와 참여정부가 자부해 마지 않는 '참여' 방식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낸 발언이기도 하다.

일부 직원들의 태도는 더 가관이다. 국정감사 내내 기자실에 머물며 '해명로비'에 나선 주공 일부 직원들은 하루 종일 "임대아파트는 지으면 그대로 적자"라는 말을 입에 담고 다녔다. 이는 임대아파트 사업 자체를 서민들에 대한 '시혜성 사업'으로 보고있음을 의미한다.

그들 누구도 주공의 설립 목적이 "이 법은 대한주택공사를 설립하여 주택을 건설·공급 및 관리하고 불량주택을 개량하여 국민생활의 안정과 공공복리의 증진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주택공사법 제1조에 있음을 언급하지 않았다. 주공 직원들의 머릿속엔 수익성만 존재할 뿐 공공성은 사라진지 오래였음을 실감케 했다.

하지만 제 식구 챙기기에 있어서 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앞장섰다. 조경태, 박상돈 열린우리당 의원이 지적한 바처럼 주공이 진행 중인 100억원대 이상 공사 31곳 가운데 24곳의 감리단장은 주공 출신 인사였다. 홍 부사장은 "내 소관이 아니다", "어느 정도 전문성이 인정됐기 때문 아니냐"는 말로 피해 갔지만,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어 보였다.

구조조정 차원에서 퇴직한 직원을 얼마 지나지 않아 재채용하는 사례도 있었다. 이낙연 민주당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지적한 바에 따르면 주공은 산하 기관인 주택도시연구원 소속 18명의 고급 간부를 퇴직시킨 뒤 다시 부설 연구원에 재고용하는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회피했다.

뿐만 아니라 재채용된 연구위원 18명이 계약직임에도 불구하고 주공은 57∼58세까지 계약기간을 보장함과 동시에 연봉도 퇴직전 수준과 비슷하게 지급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 홍 부사장은 "직원들의 사기가 저하돼 있었고 분위기도 침체돼 있어 그런 차원에서 쇄신방안을 마련했다"며 "그런 내용을 가지고 전직을 한 사람은 임금피크제를 적용해 연봉을 깎고 있다"고 했다. 사실 관계가 틀리지는 않지만, 사기 고양차원에서 어쩔 수 없었다는 얘기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편법 재채용 방식을 도입하고도 홍 부사장은 '바람직한 것이냐 아니냐'를 묻는 이낙연 의원의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다 "불가피한 사항이었던 것으로 우리들도 검토를 해 보겠다"고만 답했다.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 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정부가 주공이 누려왔던 특권과 혜택, 그리고 그들의 기득권을 빼앗는다면(그럴리야 없겠지만) 주공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모할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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