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斷腸記)- 35회

등록 2004.10.15 08:03수정 2004.10.15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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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 장 연속되는 살인(殺人)

전연부가 전문가답게 일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처리한 덕분에 저녁 시간이 될쯤 해서 손가장 내의 사내들에 대한 조사는 대충 마무리되었다. 갈유와 함께 있던 전연부는 아직 실마리를 잡지 못한 듯 고개를 가로 젓고 있었다.


“갈대인. 의심스런 자들은 적지 않으나 이 사건과 관련된 자는 없다 해야겠지요?”
“그거야 전영반이 전문이지. 헌데 의심스런 자들이라니.....?”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곳에 있는 것 같아 하는 말입니다.”
“간세(奸細) 같은 것을 말함인가? 여기는 손가장이야. 자네가 있는 관가와는 다르지. 이곳에서 무어 그리 캐낼 일이 있다고 그런 자들을 풀어 두겠나?”

정말 모르고 하는 말일까?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일까? 전연부는 말하는 갈유의 표정을 살폈지만 아무 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일개 하인이 격공장(隔空掌)을 익힌 흔적이 있고, 어떤 자는 엄지와 검지가 특이하게 발달했습니다. 암기를 잘 다룬다는 뜻이지요. 그 외에도....”
“허... 이 사람...범인을 잡으라고 했더니 쓸모없는 것만 유심히 보았군. 자네와 노부 두사람은 이번 사건의 범인만 잡으면 되는 거야. 그 나머지는 손불이에게 맡겨 놓으면 되겠지.”

사실 남의 집에 와서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은 별로 좋은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곳 손가장은 천관으로서도 유심히 주시하고 있는 곳이다. 갈유는 자신의 말에 별로 탐탁치 않다는 표정이다. 궁금했지만 자신도 이 문제에 대해 굳이 더 파고 들어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는 사람이다. 그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그 담천의가 하는 청년에게 대인께서 처방해 주셨습니까?”

아침을 먹을 때 갈유가 한 말 때문이었다. 이상하게 그는 담천의란 청년에게 신경이 가고 있었다. 굳이 천관의 일을 뒤틀리게 했다고 관심이 가는 것은 아니었다.


“새벽에 잠깐 보았네. 산책하다 보니 정원에 나와 있더군. 그렇지 않아도 애에게 시키고 직접 상세를 살펴 보지 못해 마음에 걸렸는데 진맥까지 하고 탕약을 주었지.”
“담소협이란 사람... 꽤 잘생긴 인물이죠?”
“아침에 보니까 더욱 훤앙하더만. 그간의 피로를 풀었던 모양이야.”

전연부는 갈유의 입에서 원하는 대답이 나오자 말을 이었다.

“그 정도 용모라면 여자들도 한눈에 반하겠죠? 송소저가 마음에 두는 것처럼..”
“그럴 수 있지.”

아무 생각없이 대답하던 갈유가 갑자기 전연부를 똑바로 바라 보았다.

“자네 혹시...그를 범인으로 생각하고 있나?”

갈유가 정색하며 묻자 전연부는 계면쩍게 웃었다.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저는 지금껏 사건을 조사하면서 누구나 범인일 수 있다고 생각하며 조사를 하지요.”
“이 사람...”
“하하...갈 어른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 일행 모두도 아니라고 할 수 없지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치 사람 마음은 모르는 법이다. 갈유도 더 이상 탓할 수는 없었다. 담천의를 홀로 정고헌으로 안내한 것은 언수화였으니 사실 외부인으로서는 담천의가 가장 혐의가 짙다. 하지만 부상 당한 몸을 치료하면서, 그것도 손가장에 처음 온 담천의가 내원에 있는 상화각까지 찾아갈 수나 있었을까?

“괜히 해 본 말입니다. 현재로서는 내부인의 소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읍니다만 살인 동기가 모호해서요. 갈대인께서도 보셨듯이 만일 수화란 여인이 정부(情夫)를 두고 있었다면 어제와 같은 때에 그녀의 방으로 끌어들였을까요?”

“글쎄...? 그 상대 사내가 갑자기 찾아왔다면 다른 날과 다를 바 없잖은가?”
“갑자기 찾아와서 방사를 하던 중에 죽였다? 죽일 정도라면 그 동안 두사람 간에 문제가 있었을 것이고 어젯밤에도 다툼이 있었을 텐데... 하다 못해 팔목이라도 잡은 흔적이 남아 있어야 할 게 아닙니까?”

그도 그렇다. 남녀간의 일이 아무리 이성적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라 해도 죽이려고 마음 먹었다면 그 전조가 나타나야 한다. 하지만 시신을 검시한 결과는 전혀 그러한 흔적이 없고 죽는 그 순간까지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모르고 죽었다.

“노부의 일행과 관련된 일일까?”
“표물일까요?”

말을 해 놓고도 두 사람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자신들이 말을 해 놓고도 말이 안되는 소리였기 때문이었다. 표물이나 일행을 노리고 저지른 일이라면 그녀를 왜 죽여야 했을까? 단지 그녀가 일행을 안내한 여인이라서...?

문제는 그것이었다. 도대체 언수화를 죽인 목적이 있어야 사건이 해결될 기미가 있을 것인데 살해의 동기라던가 목적이 없었다.

“시비(侍婢)를 조사하는 것이 빠르겠지요?”
“그렇군. 자꾸 방사 중에 죽은 시신이라 우리가 너무 서둘렀어. 오랜 관계가 있는 사내라면 언씨의 시비가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지 않을까?”

그 때 때마침 그들의 방으로 담천의가 들어섰다. 그가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저녁이 다된 시각이었던 것이다. 그는 제일 먼저 갈유를 찾았다. 자신에게 이런 뜻밖의 기연(奇緣)을 준 갈유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두 분이 함께 계셨군요.”
담천의는 두 손을 모으며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갈어르신의 덕으로 몸이 완쾌되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연관도 없는 불초 소생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그의 모습은 확실히 달라졌다. 어제 저녁에 본 그 모습이 아니다. 갈유는 그의 변화된 모습을 보며 지긋한 미소를 띠웠다. 분명 변한 것 같은데 어디가 변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단지 옷차림이 변한 것 때문은 아니었다.

“자네가 범인이 아닐까 전영반이 생각하더군.”

그는 아직 살인사건이 발생했는지조차 모르는 상태다. 다만 자신 때문에 출발이 늦어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말에 전연부는 어색한 웃음을 띠웠다.

“범인이라니요...?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되묻는 담천의를 처음부터 살피던 전연부 역시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담천의의 모습은 처음 보았을 때의 모습과 확실히 달랐다. 그의 기저에 있는 음울함은 사라지지 않았으나 느낌은 사뭇 달랐다.

“저렇게 말하는 것도 범인과 똑같지 않나?”
웃으며 말하는 갈유의 말에 퍼득 상념에서 깨어난 전연부가 같이 웃었다.

“그렇지요. 범인은 항상 모른 척하지 않습니까?”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자네 규아와 같이 있지 않았나?”
“아침에 대인께서 처방했다는 탕약을 준 이후로 보지 못했습니다.”
“그럼 자네는 여태까지 운기만 하고 있었단 말인가?”

갈유가 새삼스러운 듯 물었다. 그러고 보니 점심을 할 때에도 그가 보이지 않았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소생이 게을러서....”

아님을 안다. 그는 아마 탕약을 먹은 후 필사적으로 몸속에 있는 영약 기운을 자기껏으로 만들려 노력했을 것이다. 아마 그의 변한 모습은 그것으로 인한 것일 게다.

“허허... 몸이 성치 않은 사람이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일게야.”

갈유는 담천의에게 일어난 일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실을 남에게 알릴 필요는 없다.

“사람이 죽었네. 바로 어제 저녁에 자네를 정고헌으로 안내해 준 여인말이야.”
“예...?”
“하루 종일 난리를 쳤지. 여기 계신 전영반이 애가 많았어.”
“젊은 저야 그렇지만 대인께서 수고가 많으셨지요.”

담천의는 어제 자신을 안내해 준 여인을 떠올렸다. 쾌활하고, 남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여인이었다. 서글서글한 눈매에 방향이 나는 육감적인 여인이기도 했다.

“어제 자상하게 챙겨 주셨는데...”

그녀는 목욕물부터 옷까지 모든 것을 빠짐없이 챙겨 주고 갔었다. 그런 그녀가 죽었다니 믿지 못할 일이다.

“결국 우리가 고생하고 있는 동안 담소협은 편히 쉬고 있었구려.”
전연부의 말은 물론 비난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도 담천의와 다름이 없었다.

“무슨 일이던 시키시지요. 도움이 필요하면 돕겠소이다.”
담천의는 미안한 듯 포권을 취했다. 그것을 본 갈유가 탁자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이 집에 변변한 도움은 못 주었어도 저녁이나 들러 가세. 오후 내내 뛰어 다녔더니 배가 출출하군. 저녁이나 들고 시비들을 조사해 보지.”
“그러시지요.”

그 말에 전연부도 시장끼가 느껴졌는지 입맛을 다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때 문을 열며 갈인규가 방으로 들어왔다.

“아버님.”
“그래.. 오후 내내 보이지 않더니.....?”

갈유는 말을 하다가 갈인규의 안색이 이상한 것을 보며 말을 끊었다.

“무슨 일이 있느냐? 경모(景母)의 상세가 심상치 않더냐?”

언수화의 시신을 보고 아침에 정신을 놓을뻔 했던 경여를 떠올리며 갈유는 갈인규의 걱정거리를 지레짐작한 것이다.

“그게 아니고... 소규헌(少葵軒)에 사체(死體)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어...”
“뭐....사체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

갈유와 전연부의 얼굴색이 급변했다. 소규헌은 이집 안주인인 경여(景茹)가 “작은 규아가 머무는 곳”이라 직접 이름붙인 갈인규의 거처다. 그곳에서 사체가 나왔다니 놀랄 일이었다.

“어서 가보자. 죽은 사람이 누구냐?”
갈유는 갈인규를 앞세우며 방을 나섰고 전연부 역시 급히 뒤를 따랐다.

“담소협도 같이 가겠소?”
영문을 모르고 서 있는 담천의에게 말을 건넨 것은 전연부였다. 그는 사정도 자세히 알지 못한 채 그들을 따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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