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의 풍경> 표지
즐겁게 읽었다. 막힌 문 하나가 열린 것처럼 속이 다 시원하다. 추상성으로 가득 찬(?) 난해한 법률 용어를 남발하지 않고, 초보 선수(?)가 이해하기 쉽게 일반인들이 흔히 사용하는 말로 풀어준 덕에 머리에서 쥐도 나지 않았다.
또 가식 없이 털어놓는 글을 통해 높은 울타리를 치고 살아가는 법조인들의 세계가 어떤 곳인지 그 신비한 영역(?)에 대해 희미하게나마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법으로 밥을 먹고 살아가는 법조인들 또한 나와 똑같이 때와 허물이 많은 사람(?)임을 알려준 저자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일반인들과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법률가들이 자신들만의 세상에서 고유한 특권을 누리는 출발점이다. 법률가들은 일반인들이 모르는 언어로 가득 찬 법전 해석 권한을 독점함으로써 권력을 누린다. 언어가 쳐준 장벽 덕분에 보통 사람들의 진입이 차단됨으로써 법률가들의 기득권이 보호받게 된다.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신성한 언어로 치장된 경전을 만들고, 사제들이 그에 대한 해석 능력을 독점함으로써 권력을 장악하는 구조는 제게 매우 익숙한 것이다... - <헌법의 풍경> 중에서
글쓴이는 정의를 찾기 위한 새로운 수단으로 '올바른 절차를 통한 합리적 대화'를 강조해 설명했다. 가끔 TV 토론회 등에서 출연자들의 대화를 보면 접촉점이나 공통분모를 찾아가는 대화보다는 싸워 승패를 갈라보자는 식이다. 경청은 없고, 높은 언성만 있다. 우리는 TV 안이나 바깥 길에서나 왜 이렇게 목소리를 높여 싸우려고만 할까?
...대화는 "나만이 절대적인 진리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자각에서 출발한다. 대화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임으로써 내 생각을 발전시켜 나가는 재미있는 작업이다. 이런 대화의 장에서 법이 해야 하는 일은 정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대화의 규칙 또는 절차를 보장해 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절차의 핵심이 되는 것은 개방성과 민주성이다...
제주 4·3 사건, 실미도 사건을 사례로 들면서, 법학의 중요한 출발점이 '국가를 통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라는 주장이 정신을 번쩍 깨웠다.
국민을 규제하고 통제하는 수단으로써 법, 기득권을 옹호하고 대변하는 법, 권력을 맛보고 누리는 법률가들만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을 위한 법, 사람을 살리는 법이 아닌 사람을 죽이는 법, 죄와 악의 법, 법의 탈을 쓴 불법, 국가 권력의 괴물화 가능성에 대해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
...국가를 사랑하는 것을 강조한 나라보다는 국가를 통제하는 것에 관심을 가진 나라가 그나마 덜 나쁜 나라가 될 수 있었다. 히틀러가 공산당, 노동조합, 사회민주당 등 반대세력을 완전히 격퇴하는 데 소요된 기간은 불과 3개월이었다. 어떤 개인의 범죄도, 어떤 깡패조직의 범죄도, 국가가 괴물로 돌변하는 순간 만들어낼 수 있는 참극과는 경쟁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제주 4·3사건도, 실미도 사건도 모두 국가 권력의 조직적인 개입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인혁당 간첩 조작 사건', '부림 사건'을 언급하며 권력의 손발이 된 법률가들을 지적하는 부분에서 법률가들이 무섭게 보였다. 사실 그런 사건들 속에 법률가들이 깊이 개입되어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법복을 입은 사람의 양심이 그러하다면, 도대체 법은 무엇이며 시민은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하나?
...지난 세월 동안 고문과 조작에 관여했던 우리 법률가들은 중세의 종교재판관들 수준의 책임감도 지니지 못한 파렴치한 사람들이다. 잘못한 사람은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는데, 참혹한 고문의 희생자들이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미는 이 장면이 제 눈에는 그리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
국가가 제 정신을 찾은 후에도 괴물의 수족이 되었던 법률가들이 우리나라처럼 떳떳하게 잘 살고 있는 사례를 찾기란 쉽지 않다.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없다. 역사 앞의 반성과 공개만이 고문 재발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법조계라는 세계는 절대로 '가족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았다. 사실 법조계만이 아니더라도 어느 집단이든 지나치게 '가족적'이 되어 울타리를 치고 끼리끼리 뭉치며 이웃(?)을 소외시키는 게 좋은 현상은 아닐 게다.
.,.절대로 가족적이어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법조계다. 검사는 국가를 대표하여 범죄자와 싸움을 벌이는 존재다. 변호사는 무엇보다 의뢰인을 위해 싸움을 벌여야 하는 존재다. 판사는 법리에 의해 냉철한 판단을 해야 하는 고독한 존재다. 이들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바로 독립성이다...
김 교수는 우리 법조계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공개하면서 법조계의 변화를 위해 사법 개혁 방안 세 가지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하나, 미국식 로스쿨 도입을 통한 사법 교육의 개혁. 둘, 법조 일원화를 통한 사법 구조의 개혁. 셋, 배심 제도 등의 도입을 통한 시민 참여의 확대다.
...전국적으로 다양한 색깔을 지닌 로스쿨의 존재는 순수 혈통주의 시대를 접고 비로소 똥개 법률가 시대로 들어가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거다.
새로운 시대의 도래는 변호사들에게 청지기의 윤리를 요구한다. 더 이상 특권을 누리는 계층이 아니라 변호사 자격증을 잠시 맡아 시민에게 봉사하는 청지기들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잡다한 혈통을 가졌지만 주인인 시민에게 충성을 다하는 새로운 청지기의 등장을 저는 우리 법조의 희망이라고 부르고 싶다...
죄가 있는 것이 분명한 사람을 검찰 마음대로 풀어줄 수 있다는 사실, 이런 검사의 막강한 권력이 실존(?)함을 문자로 확인했을 때 놀랍기도 하고 황당했다. 솔직히 기소편의주의, 기소독점주의, 기소유예라는 낯선 단어들의 깊은 뜻(?)이 뭔지 책을 읽고야 알았다.
...1994년 10월 29일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으로 12·12 군사쿠데타의 주모자였던 희대의 살인마들은 법망에서 벗어났다. 전두환, 노태우 일당에 대한 기소유예는 철저한 수사에 따른 것이 아니었을 뿐 아니라 법률적 평가도 아니었다. 철저히 정치적인 판단이었을 뿐이다. 검찰은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의 고문 경관인 문귀동에 대해서도 기소유예 처분을 내림으로써 기소유예가 공권력의 탈을 쓴 강간범에게도 얼마든지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사상의 자유, 종교의 자유를 다룬 부분에서는 내 편협함, 옹졸함을 재확인했다. 내 기준을 앞세워 다른 사람의 사상과 종교를 품지 못하고 적대감까지 가졌던 것을 반성했다. 진실의 파편, 일부분을 붙잡고 있는 마당에 내가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정해 주는 것이 사상의 자유라 할 수 있다. 그게 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핵심이기도 하다.
저는 가끔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들의 처벌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보수적 기독교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중국에서 기독교인들을 탄압하는 공산주의자들의 모습이 저렇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 자기 종교의 자유를 지키려고 하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다른 사람의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지켜주는 데 적극적이어야 한다...
그동안 시민의 기본권에 대해 너무 무지했음을 실토한다. 진술거부권, 말하기 싫으면 안 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 만약 경찰이나 검사가 뭔가를 추궁하면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 그 자리에서 몽땅 무엇이든(?) 자백하고 실토해야만 하는 줄로만 알았다.
...피의자는 지금부터 언제든지 하기 싫은 말을 안 할 수 있다. 경찰이나 검사가 묻는다고 해도 얼마든지 말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인권이 제대로 보장된 나라의 수사기관이라면 처음부터 피의자는 없다고 생각하고 수사하는 게 옳다. 수사기관은 자백 위주의 사고를 멈추고, 달리 증거를 확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이 법 앞에 평등한 세상,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누구나 꿈꾼다. 그러나 현실은 차별이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이다. 돈과 배경과 지위를 앞세운 특권의 깃발이 휘날린다.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지역, 출신국가, 출신민족,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상황, 인종,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 지향, 병력 등 차별 현상의 상당 부분이 국가 권력과는 전혀 관계 없는 사적 생활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차별철폐를 위해 우선 할 수 있는 일로 저는 차별 금지 소송의 증가가 우리 의식 개혁의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바람처럼 '국가 권력의 괴물화'를 막는 법의 소극적인 역할을 넘어, 시민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옹호해 주는 법의 새로운 역할을 기대해도 될까?
<헌법의 풍경>을 읽은 뒤, '국가보안법'을 프린트해서 끝까지 훑어보았다. 분량이 얼마 되지도 않는 이 법에는 '사형'이라는 낱말이 왜 이리 많나? 아무리 체제가 다른 남북이 대치한 분단 상황이라지만, 이건 사람을 죽이는 법이다. 죄와 불법에 꽉 묶인 세상이다.
옛 법, 사람을 억압하는 법, 죄와 사망의 법(?)에서 만인이 자유롭게 되어 인권을 존중받고 생명력 넘치는 삶을 사는 날, 만인이 웃는 그 날이 속히 와야 한다.
헌법의 풍경 -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 개정증보판
김두식 지음,
교양인,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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