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송 우거진 바닷가 노을과 조개구이 내음

등록 2004.10.22 11:10수정 2004.10.22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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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에서 바라다 본 목선과 을왕리 해변의 정경 ⓒ 박상건

용유도는 서울에서 가까워서 좋고, 가는 길 또한 막힘이 없어 좋다. 친구나 가족과 함께 주말여행 코스로 딱 좋다. 섬은 섬이로되 승용차를 타고 시종 달릴 수 있는 섬이다. 영종도에 국제공항이 생기면서 서울과 영종도는 다리가 놓였고 다시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도 방파제를 이어 긴 해안도로 서로의 혈맥을 잇고 있다.

용유도는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고즈넉한 섬이었다. 용이 바다에서 헤엄치는 모양새를 하고 있어 용유도라 부른다. 실제 항공사진을 보면 영종도에서 바다를 향해 용이 꿈틀대며 승천하는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용유도이다.

구한말 운양호사건과 일제 강점기 때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의 발자취를 읽을 수 있는 충혼탑, 독립만세 기념비 등이 남아 있기도 하다. 용유도는 지형이 산골짜기처럼 패여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골짜기 모양을 중심으로 하여 동서로 구릉지가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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뻘과 모래가 조화를 이룬 용유도 해변만의 독특한 풍경 ⓒ 박상건

시골 언덕배기 정도의 높이에 채소를 가꾸는 밭이 있고 소나무와 상수리나무 군락이 있다. 남서쪽 해안은 백사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갯벌과 섞이어 쉽게 무너지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질펀하지도 않는 중용의 바다 정신을 지니고 있다.

가족끼리 오순도순 대화하며 사색할 수 있는 한적함

이런 해변의 정취를 맛보기 위해서는 바로 용유도 해변으로 가지 말고 용유도 초입에서 왼쪽 방향으로 들어가면 만나는 조용한 거잠포 해변을 가보아야 한다. 무의도와 실미도를 갈 때 이곳을 거쳐 선착장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용유도를 찾는 이 보다는 무의도로 오고 가면서 이 해변을 만나게 돼 쉽게 놓치는 경우가 많다.

거잠포 해변은 용유도에 속하는 데 완만한 해변을 따라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다. 아주 한적한 해변이다. 가족끼리 마주 앉아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노을을 구경하는 맛도 일품이고 방파제를 타고 무의도에서 나오는 사람과 승용차 행렬을 바라보는 일도 이색적인 구경거리이다.

병풍처럼 둘러 퍼진 해송 숲에서 조개구이를 맛보며 담소를 나눌 수 있고 맨손으로 농어와 숭어를 잡을 수 있는 한 그물 고기잡이 대회가 열리기도 한다. 그해 여름 무의도와 실미도를 다녀오면서 이곳에서 숯불에 조개를 구우며 노을을 감상한 적이 있다. 노을 속에 갈매기들이 하루의 모든 것을 훌훌 털며 살풀이춤을 추고 있었다. 그렇게 붉게 바다를 채색하는 모습이 참으로 애잔하면서 감동적이었다. 물새와 파도가 노을에 섞이어 살아 파닥이는 모습이 비장하기까지 했다. 그 때 그곳에서 이런 시를 썼다.


거잠포 해변에서 조개를 굽는다
뒤집어져 굳게 입 다문 조개가 아가리를 벌린 것은
오랜 침묵을 두 동강 낸 참나무 숯불 때문이었다
이녁을 태워 조개의 마음을 읽어간 숯불이
제 속 다 태운 후에 조개는 비로소 속살을 열었다
속살 구워내고 껍질을 버리면서
내가 버려야 할 껍데기 하 많으랴
나 한번쯤 먼저 마음 연 날 얼마이랴
매운 연기 휘젓는 파도 소리를 따라가니
노을에 젖어들고 있다

떠나야 할 때 떠날 줄 아는 노을 속에
온몸 태워 빨려 들어가던 저 파도소리
비워야 할 때 비울 줄 알고
미세한 생애까지 최후까지 물보라 치던 파도소리가
내 눈빛 수없이 감아 돌리며 젖어간다
이 바다, 갯바람 풀무질에 뻘겋게 쇳물 튀고 있다

-(박상건, ‘거잠포에서 조개를 구으며’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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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속에 잠긴 용유도 앞바다와 연인의 모습 ⓒ 박상건

그렇게 한 구절의 시를 메모하여 젓갈을 우리듯 생각이 익을 때까지 수첩에 적어 놓고는 다시 큰 길로 나와 좌회전하여 용유도 을왕리 해변으로 향했다. 해변으로 들어가기 전에 다시 왼쪽 방향이 선녀바위로 가는 길이다. 이곳은 잠진도보다 더욱 고요한 해변이다. 해변의 사색을 즐기고 싶다면 이곳을 가볼 필요가 있다. 낚시터로도 각광받고 있다.

누구나 시인이 되는 아름다운 포구와 바닷가 풍경

을왕리는 선녀바위 길목에서 볼 때 오른쪽 방향이다. 영종도에서 볼 때는 직진 방향이다. 이정표가 있음으로 크게 헷갈리지는 않을 것이다. 소나무 숲을 지나면서 초등학교 분교가 나오고 바로 바다를 낀 수많은 횟집거리가 등장한다. 이곳이 을왕리 해수욕장이다.

을왕리는 용유도 중심 해변이다. 썰물 때 폭 200m의 넓은 모래밭이 펼쳐진다. 도시의 방랑자들이 이 백사장을 해방구 삼아 모처럼 기지개를 활짝 펴고 함성을 내지른다. 툭 트인 바다의 풍경에 빠져 모처럼 자연 속에 동화되어 간다. 이곳에서는 모두가 베토벤이고 슈베르트이며 키이츠이고 하이네이다. 갯바람이 세지 않고 수심이 야트막해 파도가 높지 않고 잔잔하게 다가선다.

어느 어촌의 풍경처럼 뻘밭에는 조개가 있고 망둥어가 뛴다. 녹슨 닻들이 처박혀 있고 방파제 쪽에 목선 몇 척 그리고 깃발이 휘날린다. 이 바다에서 보는 낙조가 장관이다. 잠진도에서는 시계방향으로 2~3시 방향에서 노을이 떨어지지만, 이곳에서 12시 방향 그러니까 정면에서 노을의 대단원이 연출된다. 노을이 지는 그 사이에 문득, 스위스 알프스 초원에서 길게 불어 대던 알프호른의 연주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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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에 물든 녹슨 닻과 저녁 먹이를 찾아나선 물새 가족들 ⓒ 박상건

주말이면 다소 북적이던 이 바다에서 노을이 연출해 내는 잔잔한 분위기를 잊을 수 없다. 다시 용유도 오른쪽 끝에 섬모퉁이가 있다. 절벽 위에 아담한 레스토랑이 있는 곳이다. 그곳이 큰 장군이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쓴 채 멀리 바다를 내려다보는 모습을 하고 있다는 장군 바위가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를 용유도의 수호신으로 부르고 있다.

서울에서 가까운 거리에서 있으면서 아직 천연의 해변을 간직하고 있는 용유도에는 국제공항이 생기면서 공항 직원들이 숙식하며 출퇴근하고 있고 대학생들의 엠티 장소로도 각광받고 있다. 섬치고는 대중교통편도 괜찮은 곳이다. 그래서 야영장, 숙박시설, 편의시설이 잘 되어 있는 셈이다. 지난 86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어 매년 8월께 해양축제가 열린다.

주말 단위로 가족단위 여행은 물론 청소년들의 자연학습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사랑받는 섬임에는 분명하지만 인천국제공항과 더불어 국내 최초 해상관광호텔이 들어서고 카지노호텔, 위락단지, 골프장 등이 들어선다는 이야기도 전해진 가운데 찬반 의견이 맞서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은 천혜의 자연경관을 간직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세상사 날로 변모하는 일을 막을 수는 없는 것이고 갈수록 인산인해를 이루다보면 천연의 갯내음은 서서히 사라질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니 더더욱 어촌다운 이 해변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챙겨두는 일을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을왕리 언덕을 넘어서면 또 하나의 해변, 왕산해수욕장이 나온다. 아주 한적한 바닷가이다. 정겨운 포구를 낀 작은 어촌의 모습이 풍경화로 다가선다.

조개 굽는 내음에 깊어가는 노을과 파도소리

우리 가족은 포구의 맨 끝자락에 있는 조개구이집에서 조개를 구웠다. 마을 공동체에서 비닐하우스를 쳐서 시작한 이곳은 지금은 멋진 하우스로 변신해 있었다. 기름 드럼통을 개조해 장작더미를 지폈다. 타닥, 탁탁 장작 타는 소리가 좋았다. 살다보면 맺힌 답답함들, 그런 옹이들이 불꽃으로 튀어 허공으로 터져 오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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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유도 특산물인 싱싱한 조개들 ⓒ 박상건

저마다 옹기종기 모여앉아 그렇게 조개를 구우며 사랑과 우정, 가족애를 나누는 모습들이 정겹기만 했다. 어쩜 모두가 말은 하지 않아도, 그렇게 자연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순간만은 자연의 존귀함과 고마움에 푹 빠져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모두가 장작의 불꽃 속에서 영원히 잊히지 않을 사랑과 꿈과 희망을 영혼의 불꽃을 피워 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용유도의 저녁은 저물어갔고 조개 굽는 냄새는 연기로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연기는 노을 속으로 나부끼고 포구의 어둠에 섞여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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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창에서 낚시를 하는 가족들 모습 ⓒ 박상건



미니상식/바지락에 대하여

조개 맛에 푹 빠진 나머지 집에서 먹을 바지락을 사오는 경우가 많다. 갯사람들이 ‘바지락’이라고 부르는 이 조개는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조개이다. 모래나 진흙이 섞인 곳에서 산다. 어린 조개일수록 부풀어 오른 정도가 약하다.

번식기에는 생으로 먹는 것을 피해야 한다. 이 시기에 여러 노폐물에 중독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산란기는 4~7월이다. 그래서 여름에는 데쳐 먹고 겨울에는 생으로 먹는 편이다. 국을 끓이기 전에는 하룻밤 정도는 바닷물이나 소금물에 담가두어야 한다. 바지락이 입을 벌려 자기가 먹은 음식 노폐물, 펄, 모래 등을 토해내기 때문이다.

바지락에는 타우린, 글리산, 알라닌 등이 많아 시원한 맛을 낸다. 그래서 술꾼들이 좋아하는 편이다. 예로부터 간이 약해 쉬 피로해하고 황달기가 있는 사람이게 바지락은 간의 특효약으로 통했다.

자연산과 함께 양식이 쉬워 최근에는 연안에서 많이 양식하기도 한다. 수출용 통조림 원료로도 각광받고 있다. 서해안 그리고 사할린섬, 일본, 중국, 타이완 등지에 널리 분포한다.

용유도로 가는 길

1. 대중교통
① 인천공항 리무진(무의도/실미도/을왕리해수욕장 연계버스)
② 인천역 앞 광장→버스이용→월미도 선착장→영종도행 여객선(10분소요)
③ 용유도행 버스(2, 15, 23, 45, 51, 101, 550번 소용시간 50분)
④ 선녀바위해변은 을왕해수욕장 입구에서 하차, 좌회전하여 도보(15분소요)

2. 승용차
① 서울 올림픽대로(김포공항 방면)→방화대교→인천국제공항→영종대교→용유, 무의도
이정표→용유도
② 서울 방화대교→노오지 I.C→북인천 I.C→잠진도선착장→용유도
③ 경인고속도로 종점→인천항 사거리(우회전)→월미도 제2선착장→영종도행 여객선(승용차 적재 가능. 소요시간 15분)→영종도 선착장→해안선 도로→용유도
④ 인천 국제공항고속도로→영종대교→영종도→용유도 방향으로 직진

3. 교통 문의
용유동사무소 032-886-3612/용주해운) 032-762-8880~2/용일여객 032-886-6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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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언론학박사, 한국기자협회 자정운동특별추진위원장, <샘이깊은물> 편집부장,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위원, 한국잡지학회장, 국립등대박물관 운영위원을 지냈다. (사)섬문화연구소장, 동국대 겸임교수. 저서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섬여행> <바다, 섬을 품다> <포구의 아침> <빈손으로 돌아와 웃다> <예비언론인을 위한 미디어글쓰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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