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그림입니다. 책을 싼 비닐 안에는 '이 책을 빌려 읽고 아주 좋았다고 한 동무가 타자로 쳐서 꽂아 준 시 쪽지'가 들어 있습니다.창작과비평사
<1> 고단한 마음을 채워 주던 책
1939년에 창간되어 30년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두 개의 문예지 <문장>과 <인문평론>이 각각 2년 내외의 활동을 하고 나서 폐간되자 우리 문단은 완전히 노골적인 친일-어용문학 일색으로 되어 버렸다. 민족이 어떻고 계급이 어떻고 하며 떠벌리던 이광수, 박영희, 최재서 등 많은 문인들이 일제 식민주의의 종으로 전락하여 황군위문, 학도병 입대권유, 황도문학 등에 발벗고 나섰을 때, 그것은 일제하 식민지 문학의 허구적 본질을 극명하게 폭로한 것이었다. 30년대 문단을 화려하게 누비던 휴머니즘, 행동주의, 주지주의, 고발문학, 풍자문학, 전통론, 순수문학들은 이렇다 할 저항도 없이 공중분해되거나 지하로 잠적하고 말았다 .. <염무웅-민중시대의 문학, 창작과비평사(1979)> 77쪽..
다른 동무들은 입시공부에 한창 바쁘던 고등학교 3학년 때입니다. 새벽별을 보고 학교에 가서, 저녁별을 보고 집으로 가던 그때는 머릿속에 가득 들어차는 시험 지식이 지겹고 싫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학교→집, 집→학교'라는 울타리를 훌쩍 넘었습니다.
인천에서 전철을 타고 서울로 갔습니다. 종각에서 내려 교보문고와 영풍문고를 다녀왔습니다. 엄청나게 꽂혀 있는 책을 신나게 구경하고는 걸어서 청계천 헌책방거리까지 갔습니다. 길가에 잔뜩 쌓아놓은 책을 보니 마음이 놓였습니다. 입시공부에 찌들고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으로 피멍든 가슴이 활짝 열리고 풀리는 느낌이었습니다.
두리번두리번 온갖 책을 뒤적이고 살피다가 <민중시대의 문학>이란 책이 있어 구경삼아 집어 보았습니다. 책을 조금 훑다가 눈이 번쩍 뜨입니다. 아! 세상에 이런 책도 다 있었구나, 이런 목소리를, 이런 생각을 담은 훌륭한 책이 있었구나! 하며 한 시간 남짓 서서 책을 읽다가 2500원을 주고 그 책을 샀습니다. 그때가 1993년 5월 22일입니다.
.. 시인 이육사와 윤동주의 죽음을 가지고 우리 문학과 문단의 민족적 양심을 대표하기는 너무나도 빈약하고 서글프다 .. <77쪽>.
저는 수학능력시험과 본고사를 함께 준비해서 치러야 하는 일이 반가웠습니다. 다른 동무들은 시험을 둘이나 봐야 한다며 짜증을 냈지만, 당시 처음 실시했던 수학능력시험을 빌미 삼아 '교과서 아닌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핑계를 둘러댈 수 있었거든요. 틈틈이 당해야 했던 소지품 검사 때마다 빼앗긴 '교과서 아닌 책'들 때문에 늘 억울했는데, '수능과 본고사 잘 보려면 이런 책도 봐야 해요'라는 말을 들이밀며 빼앗긴 책을 다시 돌려받았을 때는 아주 짜릿했습니다.
.. 오히려 그의 문학에 활력과 매력을 주었던 것은 '자유'라든지 '정의'라든지 하는 어떤 이름붙여진 목표가 그에게 확정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타협과 정체, 도취와 집착은 언제나 그의 적이었던 것이다 .. <220쪽> "김수영론".
교과서에서 또 문학 자습서에서 만날 수 있던 김수영님의 시는 고작 '폭포'이고 '풀'뿐이었습니다. 다른 시는 알기도 어려웠고 시험에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문학 선생과 국어 선생 가운데 <김수영 전집>이나 <시여 침을 뱉어라> 같은 책을 사서 읽어 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김수영뿐만이 아닙니다. 윤동주도, 김소월도, 이육사도, 한용운도, 김춘수도, 김광섭도, 신동엽도, 신경림도 읽으라고 말한 선생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박노해 시집을 읽으면 마치 빨갱이라도 되는 듯 나무랐으며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와 <금강>을 읽고 있으면 그 책을 빼앗아 가기도 했습니다.
참! 어이없는 일이었지만 그런 어이없음이 '일상'으로 감돌고 있던 곳이 학교였습니다. 그런 데가 고등학교였습니다. 넓은 사상과 철학을 꿈꾸고 가슴으로 껴안아서 참 사람됨을 갖추라고 말하는 선생 하나 없는 곳, '고3이면 죽었다고 생각하고 입시공부나 하라'던 곳이 대한민국 고등학교였습니다. 그런 팍팍하고 어두운 곳에서 숨죽여 지내다가 만난 <민중시대의 문학>이란 책은 달콤한 샘물이었습니다.
<2> 고등학생이라면 이만한 책은 읽어야 하는 것 아닌가?
.. 김정한의 문학은 결코 허무주의에 함몰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역사의 발전과 인간의 미래에 대한 신뢰를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땅의 이곳 사람들의 땅 아니랬지? 멀쩡한 남의 농토까지 함께 매립 허가를 얻은 어떤 유력자의 것이라고 하잖았어? 그러나 두구봐. 언젠가는 이 땅의 주인인 너희들의 것이 될 거야"라는 말은 진실한 감동을 주며 올바른 예술적 창조의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 <284쪽>
그 어떤 문학 자습서나 국어 선생도 이런 '문학 풀이'를 해 주지 않았습니다. 주제가 무엇이고 글감이 무엇이며 작품 이름이 무엇이고 작가가 언제 태어났으며 '무슨 주의로 글을 썼다'까지만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제가 배우고 싶었던 것은 이런 것보다는 "역사의 발전과 사람 앞날을 믿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 사상과 철학을 담은 책을 읽고 싶었고, 이런 철학과 믿음으로 부지런히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습니다.
고등학생이라면 가만히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에는 독립운동을 하고, 1960년에는 독재정권을 몰아낸 민주주의 운동을 펼친 고등학생임을 생각한다면 그저 참고서와 문제모음과 교과서와 감옥 같은 학교에만 매여 있을 수 없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동무들하고 비밀스런 모임을, 그러나 모임이라 할 수 없는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 모임은 서로 읽은 '교과서 아닌 좋은 책'을 돌려 읽고 토론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고등학생이 아니더냐!"하고 외치며 참된 고등학생이 되고자, 우리 사회를 읽을 줄 알고, 우리 문화를 느낄 줄 알며, 우리 철학으로 생각하고, 우리 땅에서 부지런히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런 모임에서 <민중시대의 문학>은 저와 여러 동무들에게 아주 좋은 길잡이 구실을 해 주었습니다.
.. 현대시에서 그 복잡성과 난해성만을 기계적으로 제거하려는 것은 정당한 일도 아니고 가능한 일도 아님이 명백하다. 그러나 여기서 비약하여 이 이론을 '실험적'이라 자칭하는 오늘의 현대시를 옹호하고 시를 현재의 그 상태대로 고착시키는 데 이용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논리의 비약이다. 역사는 다만 과거에로 되돌이킬 수 없는 것일 뿐더러 현재에다 묶어놓을 수도 없는 것이며, 시도 여기서 예외일 수 없다. 따라서 독자대중이 시에 가까워지는 동안 시 역시 대중에게로 전진해 나가는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 형평의 원칙에 맞는 일이다 .. <133쪽>.
사람은 책을 만들면서 더 큰 사람으로 발돋움하지 않나 싶습니다. 자기 스스로 발돋움하면서 일구어낸 살뜰한 책 한 권은 이제 막 사고를 키우는 저 같이 어린 학생에게는 소중한 햇볕과 물과 거름이 됩니다. 시험점수 외우기가 아닌 참된 문학을 즐기고 싶던 제 마음은 고등학생다운 고등학생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었고, 3년 공부를 마친 뒤에는 올바르고 떳떳한 어른이 되고픈 마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