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귀를 닮은 '사마귀풀'

내게로 다가온 꽃들(99)

등록 2004.10.24 21:31수정 2004.10.25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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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꽃을 찾아 떠난 여행길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꽃이 있습니다. 도감상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처음 만나게 되면 그 장소 역시 깊게 각인됩니다.

해서 그 꽃이 필 때쯤이면 다른 곳에 그 꽃이 핀다고 해도 처음 그 꽃을 만났던 장소를 찾아가게 됩니다. 다른 곳에서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피어있을지도 모르지만, 처음 만났던 그 곳이 잊혀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길 몇 번 반복하다 우연히 그 꽃이 더 아름다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그것도 아주 가까운 곳에서 말입니다.

김민수
나에겐 사마귀풀이 그랬습니다. 꽃을 찾아 떠난 여행길에서 이 꽃을 처음 만난 곳은, 집에서 차를 이용해서 대략 20분 거리에 있는 곳이었습니다.

사마귀풀이 혹시라도 일찍 피지 않았을까 몇 번을 가보았지만 사람들의 손길이 많이 탄 탓인지, 필 때가 지났는데도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걸어서 아주 가까운 곳에 사마귀풀 군락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곳은 습지라서 사진으로 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햇살이 좋은 날, 장화를 준비해서 그 곳을 찾았더니 사마귀풀꽃은 한낮에는 화들짝 핀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다음 날 아침 그 곳을 다시 찾아가 사진기에 담고는, 내년을 기약했는데 어느 가을 날 그보다도 더 가까운 곳, 장화를 신지 않아도 편안하게 사마귀풀을 담을 수 있는 곳을 만났습니다. 조금은 허망하더군요. 그동안의 고생이 허망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그걸 몰랐다는 것이 허망하더군요.

삶이란 그런 것이겠죠. 아주 가까운 곳에 모든 행복의 조건들이 다 있는데 늘 먼 곳에서만 찾으려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내 안에 있는 행복, 아주 가까이 있었던 행복의 그림자를 발견하면서 그동안의 삶이 허망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죠.


사마귀
사마귀김민수
사마귀를 닮아서 사마귀풀인가 봅니다. 선입견인지도 모르겠지만 그 모양새가 전체적으로 보면 사마귀를 닮았습니다.

사마귀는 역삼각형의 머리를 가지고 있는데다가 그 작은 머리의 절반 이상은 눈이 차지합니다. 게다가 날카로운 발하며, 쇠도 자를 것만 같은 강한 턱 그리고 남편은 물론 동족까지도 서슴없이 잡아먹는 사마귀의 속성 때문에 친근감이 가지 않는 곤충 중 하나입니다.


그래도 곤충에 대한 선입견이 없던 어린 시절에는 손에 난 사마귀를 없애준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사마귀를 잡아서 사마귀가 난 손등에 올려놓고 "물어라, 물어라!" 하고 얼마나 외쳤는지 모릅니다. 그래서인지 지금 손에는 사마귀가 하나도 없습니다.

사마귀 수컷은 짝짓기를 한 후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먹히는 비극으로 자신의 삶을 마감합니다. 그런데 더 가슴 아픈 일은 암컷도 알을 낳고는 기진맥진해서 죽어버린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과정들 속에서 이듬해 수백 마리의 사마귀들이 태어나는 것이죠.

김민수
닭의장풀(달개비)과에 속하는 사마귀풀이니 그 생명력이야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달개비 종류의 꽃들은 뽑아버려도 기어이 줄기마다에서 뿌리를 내고 다시 생명을 이어가거든요. 지난 여름 달개비차가 좋다고 하여 흔하디 흔한 것이 달개비(닭의장풀)니 달개비차나 만들어 보자고 정성스레 뜯어 햇살이 잘 드는 곳에 말렸습니다. 그런데 그만 바람이 불어 이들을 날려버렸습니다. 다 줍지 못했겠지요. 어느 날 보니 그 달개비가 날아가 잔디밭에서 꽃을 피웠습니다. 차마 뽑아버릴 수 없는 경외감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자연은 그렇습니다. 악조건이라고 불평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본모습을 피워내고야 맙니다.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을 그렇게 보여줍니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자연은 없습니다.

김민수
사마귀풀은 늦여름에 피어나 가을의 초입까지 피는 꽃입니다. 여름이 끝나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오면 곤충들도 서둘러 이듬해를 준비하는데 특히 사마귀는,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수컷은 짝짓기를 하고 난 뒤에, 암컷은 알을 난 후에 죽습니다.

그러니 이들의 마음을 담아 피어난 꽃이 사마귀풀이라고 상상을 해 볼 수도 있겠지요? 어쩌면 그 모양새만 닮은 것이 아니라 들판에 사마귀들이 자취를 감출 때쯤이면, 이 꽃들도 피기를 중단하고 이듬해를 준비하는 속내가 닮아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김민수
사마귀풀은 연한 보랏빛 꽃 잎 세 장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한 장은 수컷을 위한 것, 한 장은 암컷을 위한 것, 또 한 장은 그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태어날 또 다른 사마귀들을 위한 것이 아닐런지요.

사마귀풀의 꽃말을 붙여준다면 '짧은 사랑'이라고 붙여주고 싶습니다. 아침에 잠깐 피었다가 해가 뜨면 진다고 하여 닭의장풀의 꽃말은 '짧은 즐거움'입니다. 그러니 같은 달개비과의 꽃의 특성을 담아 사마귀들의 사랑을 닮은 꽃이니 '짧은 사랑'도 좋은 꽃말일 것 같습니다.

김민수
작디작은 꽃 잎 하나 하나에
너의 그 짧은 사랑을 담아
아침에 피어
한낮이 되기 전에 시들어 버리는 인생인데
절망한번 하지 않고
마디마디 끊어져도
마침내 다시 일어서는 꽃이여!

그렇게 살지 못함을
못내 부끄럽게 하는 작은 꽃
너의 이름은
사마귀풀

<자작시-사마귀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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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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