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여, 깊은 물로 소리 없이 흐르라!

[중국문화콘텐츠①] 한류의 먹힘과 막힘 그리고 새로운 흐름을 생각함

등록 2004.10.25 15:44수정 2004.10.26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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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거대시장은 우리에게 기회이자 치열한 경쟁의 장이다. 이미 우리나라의 최대 교역국이 된 중국시장에 우리 경제의 사활이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화산업 방면에서도 중국시장은 우리의 문화산업의 최대 승부처다.

중국인들의 뇌리에 자리잡고 있는 ‘한류(韓流)’가 우리에게 많은 이점을 가져다주면서도 또 한편 기성세대의 반감과 중국정부의 견제를 불러오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한류를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중국의 견제와 중화주의를 효과적인 호혜호익 전략으로 극복하는 고도의 문화산업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류, 그 작은 흐름에서 굽이침까지

중국인이 우리나라 문화를 처음 접한 것은 1988년 올림픽을 통해서다. 1992년 8월 24일 한중수교 이후 1993년 드라마 <질투>가 처음 CCTV를 통해 방영되었으며 1997년 6월 <사랑이 뭐길래>가 중국인들에게 선풍적인 인기(평균시청률 4.2%, 외국드라마 중 시청률 2위)를 끌면서 그 해 <광밍르바오(光明日報)> 한 기자가 쓴 기사에서 ‘한류’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여 문화영역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다방면에 널리 쓰이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류에는 분명 거품이 많고 과장된 부분도 없지 않지만 '시쉐이창리우(細水長流, 작은 흐름이 끊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굽이쳐 흐르다)'하며 강인한 생명력으로 중국 문화의 저변을 흘러온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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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타와 NRG 등 많은 가수들이 중국 젊은이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그들의 의상과 헤어스타일 등이 선풍적으로 유행하였다. ⓒ 김대오

1998년 클론의 '쿵다리 사바라'를 필두로 그 해 5월 H.O.T가 중국에서 음반을 발매하며 중국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영화 부문에서는 <엽기적인 그녀>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전지현은 예만[野蠻; 엽기적인]한 이미지로 각종 광고모델로 선풍적인 환영을 받았다. 이밖에도 많은 한국영화가 언론 및 지식인들에게 호평을 받는 가운데, 2003년 베이징에 멀티플렉스관이 건설되기도 했다.

2000년까지 중국에서 24편 이상의 드라마가 방영된 방송 부분은 2001년 대 중국 방송프로그램 수출로 248만달러 수익을 올리기도 하였다. 또 한중드라마 공동제작도 크게 활성화되어 <북경 내사랑>이 한중 양국에서 방영되었다. 이밖에 <명성황후>가 올해 5월부터 CCTV-8 방영되고 있으며 올해 하반기에는 <러브 하우스>가 CCTV-2에서 방영될 예정이다. 음반시장에서도 2002년 32종의 카세트테이프와 CD가 114만장이나 발행되었다.

2000년대 이후 한류는 온라인게임('미르의 전설'), 애니메이션(한중 공동제작 애니메이션 <스페이스 힙합 덕>; CCTV 방영), 캐릭터('마시마로'), 모바일 콘텐츠(벨소리 다운로드 서비스 1위) 등 문화산업 전반으로 확산되며 그 물줄기를 이어가고 있다.

한류의 먹힘과 막힘

한류는 그 자체의 문화적 파급효과에 그치지 않고 국가와 한국 기업 이미지 제고, 한국상품의 수출력을 높이는 데에도 크게 공헌했다.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된 데에는 한류의 영향이 크며 중국 진출 한국 기업들은 한류 스타를 십분 활용하여 많은 경제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2002년 안재욱을 광고모델로 하여 모니터 시장에서 필립스를 누르고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였으며 LG 드봉은 김남주를 CF 모델로 기용하여 화장품 시장의 70%를 점유하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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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금>이나 <명성황후>는 할리우드의 아류로서가 아니라 전통적인 우리의 문화 원형이 중국시장에서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게 한다. ⓒ 김대오

중국시장에서 우리 문화상품이 먹히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분석이 있다. 유교에 기반을 둔 문화적 동질성과 생활방식, 가치관이 유사하여 문화적 감성도 비슷하다는 점, 그래서 문화 할인율이 낮다는 점, 미국과 일본 문화에 대한 반감의 틈새, 제작수준이 높은 고전극에 비해 상대적으로 세련되지 못한 현대극의 틈새를 잘 활용했다는 점, 그리고 우리 문화상품의 탄탄한 구성력과 세련됨과 재미 등 경쟁력이 중국인들의 다양한 문화소비 욕구와 맞물리면서 중국인들에게 한류가 통할 수 있었다.

이런 점들은 중국인도 대체로 동의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또 한편 기성세대를 중심으로 한류를 단순한 할리우드의 아류로 폄하하거나 대중 유행문화에 국한된 일시적이고 소모적인 현상으로 간주하여 평가절하하는 분위기도 만만찮게 대두되고 있다.

특히 현지 한국 유학생들의 문란한 생활과 한류가 오버랩 되면서 한류는 향락적이고 사치스러운 자본주의 소비문화라는 인식도 생겨나고 있다. 여기에 중국정부도 한류가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득보다 실이 많다는 분석을 하고 다방면에서 견제와 제약을 걸어오고 있다는 점도 한류의 흐름을 더욱 갑갑하게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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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서 개봉되는 한국영화는 적지만 불법복제되는 다오반으로 많은 중국인들이 한국영화를 즐겨보고 있다. 이런 점도 향후 시장개척에 있어 발전적으로 활용해야 할 점이다. ⓒ 김대오

여기에 새로운 콘텐츠 개발에 소홀한 채 안일하게 중국시장에 진출하는 문화상품들도 문제다.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가 현지에서 ‘담비꼬리에 억지로 개꼬리를 이은(狗尾續貂) ‘한류의 한계’라는 혹평을 받으며 초라하게 막을 내렸던 것을 타산지석 삼을 필요가 있다.

차별화된 전략 없이 단순히 ‘중국의 문화상품보다는 나으니까’ 하는 식의 안일한 중국시장 진출은 백전 백패한다. 중국은 세계문화상품의 각축장이고 세계 최고 수준이 아니면 중국에서 결코 통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한류, 소리 없이 강하게

중국 경제의 급성장으로 소득 수준이 향상되고 소비구조가 변화하면서 중국의 문화적 욕구도 크게 늘어나 문화시장의 규모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2010년 상하이 엑스포 개최까지 비약적으로 성장해 갈 것으로 예상된다.

2003년 중국인의 문화소비비용은 725억달러로 전년대비 10% 성장하였고 2007년에는 1000억 달러 이상이 되어 문화 산업의 시장 규모면에서도 미국에 이어 세계 2위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우리의 앞마당에 놓인 이 황금어장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과제가 우리에게 던져져 있는 것이다.

한류가 중국 문화의 바다에 드높은 파고를 일으키며 파도치는 것도 좋지만 가시적 이벤트나 실속 없는 거품보다는 철저하게 실속을 챙기면서 소리 없이 중국인들의 뇌리에 우리 문화의 인이 박히도록 하는 전략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본다.

중화민족주의의 견제와 제약이 거대한 바위라면 한류는 그 본연의 물의 속성을 이용하여 그 바위를 껴안으며 돌아서 흘러가는 지혜와 슬기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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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우드가 중국의 문화원형을 <뮬란>으로 자기화한 것을 보면서 고구려역사에 관한 내용을 우리의 문화콘텐츠로 계발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 ⓒ 김대오

해적판인 다오반이 난무하고 법률적 보호장치도 미흡하여 투자환경이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장기적이면서 차별화된 전략을 가지고 중국문화시장 개척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베이징이나 상하이만 고집하지 말고 중국의 서부 대개발 등을 적극 활용한 차별화 된 거점 도시 공략도 필요하다. 또한 기획단계에서부터 중국인의 기호에 맞는 상품 계발도 고려되어야 한다.

우리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200만 조선족을 어우르는 문화콘텐츠 개발과 현재 문화방면에서 우호적 협력 관계를 활용한 공동투자와 공동제작 등도 중국시장공략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월트디즈니가 화무란(花木蘭)이라는 중국의 문화원형을 <뮬란>으로 제작하여 미국의 문화콘텐츠화한 것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문화콘텐츠사업은 매출대비 이익률이 높은 고부가가치산업이지만 리스크도 많다.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문화콘텐츠 인력양성과 기술, 자본 지원이 이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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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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