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용감방의 현주소

[현장보고] 18세기 감옥에 갇힌 21세기 사회

등록 2004.10.28 09:51수정 2004.12.02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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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트 1, 2, 3
일러스트레이트 1, 2, 3이우일
2년 전 여름 지방도시에 소재한 경찰서 대용감방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만난 한 유치인은 "대용감방의 내부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얘기를 꺼냈다. 의료, 식사, 위생 등 분야별로 질문을 하면 그 유치인이 답변하는 형식으로 면담이 진행됐다. 당시까지 나는 대용감방의 처우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설마 그렇기야 할까!'하는 마음이 종종 들었다. 간혹 그 수용자가 거짓말하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면담을 마친 후 관련 기록을 검토하고, 담당 경찰관과 대화를 하면서 수용자가 말한 내용을 하나 둘 확인하게 되자 대용감방이 또 하나의 인권 사각지대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교도소보다 열악한 대용 감방

통상 경찰수사가 종결되고 검찰에 사건을 송치하면 재판이 진행되어 형이 확정될 때까지 교도소나 구치소에 미결수의 신분으로 구금되는 것이 형사사법의 일반적인 절차다. 그런데 인근 지역에 교도소나 구치소의 시설이 없는 경우 경찰서 유치장을 대용감방으로 지정한다. 미결수의 신병은 1심 재판이 종결될 때까지 최대 6개월까지 대용감방에 유치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그 자체로 아이러니가 되고 있다. 대용감방에 수용된 유치인은 행형법에 따른 처우의 적용을 받아야 할 미결수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유치장에 근무하는 보호관은 행형법상의 미결수 처우를 실시해야 한다. 그렇지만 경찰서 유치장에 마련된 대용감방은 행형법상의 처우를 실시할 시설도 없을 뿐더러, 교정 이념이나 처우에 관하여 익숙한 경찰관 또한 없다.

대용감방의 모호한 상황은 당장 유치인의 관리자이기도 하며 또한 인권을 보호해야 할 유치인 보호관의 처지까지 애매하게 만들었다. 대용감방 보호관은 경찰관들의 대표적인 기피 근무지다. 보통 2~3명의 적은 인원으로 100여 명의 유치인들을 보호하는 것 자체도 힘들지만, 유치인들로부터 고소를 많이 당하기 때문이다.

일반 교도소보다 시설이 열악하기 때문에, 처우 개선 요구를 들어줄 수 없는 경찰관들은 처우개선 요구를 수용하지 않은 이유로 처벌을 당하는 것이다. 따라서 경찰은 법무부의 업무를 경찰이 대신해 수행한다는 불만을 갖고 있다. 그러나 법무부는 경찰의 관리 소관인 유치인들에 대하여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다.


경찰과 법무부 양측은 서로 자신들의 업무가 아니라며 책임을 미루는 상태에서 그동안 대용감방 유치인의 인권 문제는 외면당했던 셈이다. 2003년 6월 30일 현재 전국 14개(2004년 충주구치소와 통영구치소의 완공으로 현재 대용감방의 수는 11개)의 대용감방에는 852명(여성 98명 포함)의 유치인이 수용돼 있었다. 결코 적지 않은 인원이 인권의 사각지대에 유치돼 있는 것이다.

충청도의 한 경찰서에서 확인한 대용감방의 열악한 인권 실태는 결국 대용감방시설 전반에 대한 실태조사로 확대됐다. 애초 진정사건이 접수된 대용감방 2~3곳을 조사하려 했으나 이후 관련한 진정이 늘어나 전국 8개 시설을 방문하여 조사했다. 대용감방의 유치인들이 제기하는 처우상의 문제점은 크게 의료, 운동, 식사, 수용관리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의료문제는 대용감방 근무 경찰관과 예산 부족에서 비롯된다. 대용감방은 경찰서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유치인을 적게는 30여 명에서 많게는 150명 정도까지 수용하고 있다. 반면 근무자는 의경을 제외하고 4~12명으로 3교대 근무를 실시하여 2명 내지 4명의 경찰이 유치장에서 근무한다. 이런 상황에서 유치인들이 검찰조사와 법원 공판 참석을 위해 출정 이송을 할 때는 타 부서의 경찰까지 동원해야 하는 실정이다.

따라서 유치인들이 의료 조치를 요청할 때 계호 인력이 부족해 즉각적인 조치가 곤란하다. 또한 의료비는 1인당 연 7600원이 예산으로 책정되어 있어 유치장내에 비치하는 소화제, 두통약, 반창고 등 응급약품 구매에 거의 전액이 활용되고 있다. 따라서 외부병원 진료시 자비 부담을 원칙으로 한다.

혼합밥에 국과 단무지가 전부

식사 역시 열악한 상황이다. 1일 식사비용은 현재도 2678원으로 끼니당 892.67원이다. 이 금액에는 연료비와 인건비가 포함돼 있어 실질적인 식사비용은 이보다 더 떨어진다. 보통 식사는 1식 2찬(국, 반찬)이 나온다. 따라서 면회객들이 차입해 주는 찌개 등 사식 구매가 없다면 혼합밥에 국과 단무지가 전부인 것이다.

이런 상황은 곧 유치장 내 위계를 형성하는 문제를 유발하기도 한다. 경제적 능력이 없는 유치인들은 6개월 동안 국과 단무지만으로 식사를 하거나, 아니면 경제적 능력이 있는 유치인들의 도움을 받아 반찬 등을 함께 먹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경제적 능력에 따라 유치인들 간의 위계가 형성된다. 식사의 질은 따라서 교도소보다도 더 떨어지는 형편이다. 비슷한 식사비용이지만, 대용감방 유치인들은 대규모로 수용된 교도소 수용자들보다 재료비, 연료비와 인건비 등의 부담이 더 크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의 경찰서에서 매점과 식당의 운영을 직원 상조회나 민간에 위탁하고 있어 부실한 급식 제공의 책임을 회피하고 운영을 통해 이윤을 챙겨야 하는 민간업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대용감방의 유치장 시설은 기본적으로 규모면에서 조금 더 크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다른 일반 경찰서의 유치장과 큰 차이가 없다. 따라서 도주 등을 우려해 유치장 내에는 자연채광창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다.

하루 종일 햇빛 대신 형광등 불빛 아래 살아야 하는 것이다. 통풍은 환풍 장치를 통해 하고 있다. 이 같은 환경은 모포세탁 및 소독 등 위생 환경상의 문제를 유발한다. 그래서 유치인들은 피부질환 및 호흡기 질환 등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운동 역시 거의 할 수 없는 형편이다. 유치장설계표준규칙에는 "운동장은 유치장 주변에 햇빛이 잘 들고 주의 경비가 용이한 장소를 선택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공간부족을 이유로 실외 운동을 실시하는 경찰서는 단 한 곳도 없다. 따라서 유치인들이 할 수 있는 운동이라면 공판출정이나 검사조사, 외부진료, 면회 등으로 유치장 거실에서 나오는 경우에 하는 '걷기'뿐이다.

여성 유치인, 인권 침해 더욱 커

이런 대용감방 시설의 열악함은 여성 유치인들에겐 더욱 인권 침해적인 요소가 많다. 여성 유치인은 경찰관의 24시간 관찰과 다른 남성 유치인의 시선에 전면적으로 노출돼 있다. 따라서 생리 및 탈의, 샤워, 용변시 등에 심각한 성적 수치심을 느낄 수밖에 없다.

여성 유치실을 별도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으나 거실 전면이 창살로 되어 있고, 남자 경찰관이 항시 거실 안을 관찰하며, 부채꼴의 유치장 거실 배치상 옆방의 다른 거실에서 여성 거실 안쪽을 볼 수 있게 돼 있어 별 의미가 없다. 따라서 화장실 용변 및 샤워 등의 별도 공간이 없어 칸막이 위에 상자를 쌓거나 얇은 커튼을 치고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위와 같은 대용감방의 실태조사를 토대로 국가인권위는 지난 7월에 대용감방의 처우 및 운영관련 정책에 대해 권고했다. 권고 내용은 경찰청과 법무부장관에게 대용감방의 운영을 조속히 법무부로 이관할 것과 함께 구체적인 실태 개선을 위해 △경찰청장에게, 대용감방 이관시까지 인권 침해 소지를 해소할 수 있도록 유치인들의 건강 및 보건의료를 위한 조치를 행할 것 △피의자유치및호송규칙 제30조제1항과 유치장설계표준규칙 제16조에 규정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일광욕과 외부운동을 실시할 것 △유치인에게 충분한 영양과 위생적으로 잘 조리된 음식을 제공할 것 △유치장내의 보건과 위생적인 환경 유지를 위하여 자연채광과 통풍환기가 가능하도록 유치장 시설을 개선하고, 피의자유치및호송규칙 제30조제1항에 규정된 약품소독 및 침구 등의 일광소독을 실시하고 정기적인 세탁을 통해 청결하고 위생적인 환경을 유지할 수 있도록 조치할 것 △여성유치인이 있는 경우 여성 근무자를 배치할 것을 권고했다.

18세기 영국의 존 하워드는 감옥의 상태를 폭로하는 책 < The State of Prisons in England and Wales >을 발간하여 교정 개혁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람이다. 존 하워드는 당시 감옥의 비참함을 대중에게 알리고, 감옥법 등의 개정을 통해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 낸 인물로 추앙받고 있다. 이번 실태조사를 통해 하워드가 폭로한 18세기 영국 등 유럽의 감옥 상태가 21세기 한국에도 남아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이제는 국가가 조속히 대책을 마련해 18세기의 감옥을 21세기 사회로 돌려놓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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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행하는 <월간 인권>의 주요기사를 오마이뉴스에 게재하고, 우리 사회 주요 인권현안에 대한 인권위의 의견 등을 네티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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