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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넓은 득량만 간척지 중간에 빨간 지붕의 집 한 채가 있다. ⓒ 서정일
전남 보성군 예당리 팔구 거대한 간척지가 있는 득량만. 넓이로 보나 쌀 생산량으로 보나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거대한 평야다. 가로 길이가 5km에 육박하니 걸어서는 몇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가을걷이가 끝나 황량한 이곳에 정확히 재보지는 않았지만 눈으로 봐 거의 중앙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 가옥 한 채가 있다. 빨간 지붕 탓에 더욱 눈에 띄는 홍일점 '중강슈퍼'. 일반주택이 아닌 과자 잡화 주류를 판매한다고 쓰여진 가게인 것이다.
의문점이 아닐 수 없다. 이 넓고 황량한 벌판에 누구를 위한 상점일까? 그 궁금증으로 문을 두드렸지만 인기척이 없어 무작정 기다려 보길 20여분. 멀리 오토바이 한 대가 나타나더니 가게 앞에서 섰다.
헬멧을 벗는 사람은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 "뉘시요?"하는 경계심 속에 인사말을 던지는 박시춘(86) 할아버지, 다름 아닌 중강슈퍼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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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간에 자리하고 있다해서 지어진 이름, 중강슈퍼 ⓒ 서정일
"여기도 마을이 있었지 한 50여 가구 있었는데 옛날에 모두 이사갔지."
자신을 터줏대감이라 말하는 박 할아버지. 40여년 가게를 운영하면서 운영이 잘 될 때도 있었다면서 배도 두 채나 가지고 있었던 지난날을 회상했다.
"6·25 때 쫓기는 경찰들을 저 앞 방파제에서 건너편인 녹동 풍리로 내 배로 많이도 실어다 줬네. 내가 실어다 준 경찰만도 한 만 명은 될 거야. 그 사람들 지금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하구만."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옛날 얘기를 물어보면 가장 먼저 끄집어내 놓는 이야기보따리인 6·25, 박 할아버지에게도 역시 6·25는 특별하게 기억되는 듯싶었다.
"20여년 전 수해로 이 일대가 모두 물에 잠기고 나락이 쓰러져서 방파제를 막았는데 그때 이후로 사람들이 모두 떠났지. 이 근처에 나 밖에 없잖아? 나는 자연을 이긴 거야"하고 껄껄 웃는 박 할아버지는 10여년 전에 상처하고도 그 외로움까지 이겨가며 이곳을 지킨 것이다.
"며칠 전에 가게 접었네. 집 앞으로 해안도로가 난다면서 집을 비우라고 하더군. 보상도 받았으니 이젠 순천으로 나가 살아야지. 사실 지금도 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종종 먹을 것을 사려고 오는데"하면서 말꼬리를 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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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토바이가 있어 외롭지 않다는 박 할아버지 ⓒ 서정일
아니나 다를까 집 근처엔 정비공사를 한다는 푯말이 크게 세워져 있다. 근처에 집은 없어졌지만 들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막걸리며 먹을거리들을 사러 왔었는데, 하는 섭섭함을 내 보였다.
험한 시국에도 커다란 자연재해에도 우직스럽게 가게를 지킨 박 할아버지. 행여 들판에서 일하다가 목이 컬컬해서 막걸리라도 먹고 싶은 농부들이 몇 km나 떨어진 가게로 가는 것보다는 가까운 이곳을 이용하면 좋지 않느냐며 중강슈퍼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던 터줏대감 박 할아버지도 이제 이곳을 떠난다.
넓은 벌판 중간에 자리하고 있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인 '중강슈퍼'는 며칠 후면 추억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들판에서 일하다 자전거로 막걸리를 사러오던 농민들은 따뜻한 웃음을 지어주던 박 할아버지와, 발품을 조금이라도 덜어주었던 중강슈퍼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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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안도로 공사로 가게를 그만두시는 박 할아버지 ⓒ 서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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