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斷腸記)- 45회

등록 2004.11.01 07:47수정 2004.11.01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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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들의 얼굴엔 점점 더 불안감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사실 전연부가 이 중의 하나를 골라 "범인은 너다"라고 한다면 그 누명을 벗기란 어려운 일이다.

“죄송합니다.... 조사한 것을 보고 받느라고....”


전연부는 일각도 되지 않아 금세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의 오른손엔 무언가 넣은 비단 보자기가 들려 있었다.

“미리 말씀드려야 했는데.... 여러분들이 오늘 일찍부터 이곳에 모이신 것을 틈타 여러분의 규방을 뒤지라고 했습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뭐라구요...?”
“세상에 어떻게 우리 방을...”

여인들의 태도는 각각이었다. 하지만 규방이란 함부로 남정네가 들어갈 곳이 아니다. 더구나 자신만의 공간이오, 자신의 개인적인 비밀이 숨겨져 있는 곳이다. 남정네가 본다면 낯뜨거운 것들도 있고, 자신의 은밀한 물건도 드러나 버리는 것이다.

시비들이야 체념한 얼굴들이지만 첩실들의 얼굴은 제각각이었다. 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여인도 있고 욕이라도 하고픈 표정도 있다. 전연부는 그들의 표정을 보면서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며 용서를 구했다.


“피치 못할 일이었습니다. 찾고자 하는 물건 외에는 건들지도 않았고, 그 외의 물건에 대해서는 전혀 본 적도 없도록 조치했습니다.”

안심하라는 이야기다. 아무리 비밀스러운 것이라도 이번 사건과 관련 없는 것에 대해서는 발설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는 다시 간효용을 바라 보았다.


“아까 간(簡) 작은 마님과 말을 나누다 그만 두었지요?”
“그... 래요.”

간효용의 얼굴색이 점차 창백해졌다. 그녀는 살이 약간 찐 편이고, 얼굴도 둥글둥글하여 화색이 도는 얼굴이었는데 두려움이 생기자 얼굴색이 창백해진 것이다.

“혹시..... 이 물건은 아시겠지요?”

그가 비단보자기에서 꺼내 들은 것은 미륵불상이었다. 옅은 자색을 띠고 있는 나무에 연꽃 봉오리에 올라선 미륵불이 새겨진 부조 형태의 미륵불상. 어제 언수화의 방에서 발견되었다가 사라진 그것과 똑같았다.

“그건.. 불상인데.. 본 적이 없는....”

흔히들 절에 다니는 여자들은 조그만 불상(佛像)과 염주(念珠) 등을 갖고 있게 마련이다. 전연부가 그녀 가까이 다가갔다.

“이건 미륵불상입니다. 헌데 본 적이 없다면 왜 이것이 간마님 방에 있을까요. 그것도 찾기 어렵게 장롱 깊숙하게 숨겨져 있었을까요?”

간효용은 이미 짐작으로도 저 미륵불상이 범인을 잡는 데 결정적인 단서가 되는 물건임을 깨달았다. 알지 못할 불안감이 현실로 들어나고 있었다.

“나는... 나는 그것을 장롱 속에 넣은 적이 없어요.”

그녀의 얼굴에 당혹감과 더불어 두려움이 떠올랐다. 전연부의 태도는 마치 자신을 범인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소첩도 부처님을 모셔두었어요. 그건 아미타불상이지 저게 아니에요.”

여염집에서는 아미타불좌상(阿彌陀佛坐像)이나 석가모니불좌상(釋迦牟尼佛座像)을 모시고 있는게 보통이다. 그녀는 급기야 두려움에 눈물을 터트렸다. 여자에게 있어 마지막 무기라면 눈물이다. 그 모습에 벼락같은 목소리가 대청을 울렸다.

“나는 너를 섭하게 대한 적이 없는데 네가 그런 것이냐?”

전연부가 말을 하기도 전에 이집 안주인인 경여의 엄한 목소리였다. 간효용은 온몸을 떨고 있다가 경여 쪽으로 무릎을 꿇었다.

“마님. 소첩은 모르는 일이옵니다. 억울하옵니다.. 흑.. 저는 정말 모르는..”
“닥쳐라.”

경여가 왜 손가장의 안주인인지 보여 주고 있었다. 왜소한 체구였지만 그녀의 기세는 그 방에 있는 남자들도 주눅이 들 정도였다. 전연부가 경여에게 고개를 숙이더니 다시 또 비단 보자기에 손을 넣었다.

“큰마님... 잠시 고정하시죠. 그리고...”

그는 보자기에서 조금 전 꺼낸 것과 똑같은 미륵불상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시선을 돌려 손불이의 여섯번째 첩인 윤소소를 바라 보았다.

“이것은 윤 마님의 침상 아래에 감춰져 있더군요.”

갑작스럽게 전연부가 그녀를 보며 말하자 파리한 그녀의 얼굴에 놀란 빛이 보였다.

“그... 그럴 리가 없는데..”
그 말에 전연부는 웃었다.

“그렇지요. 윤마님 침상 밑에 있을 리가 없지요.”
윤소소는 자신이 말을 잘못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급히 말을 이었다.

“내 말은 그것이..”
“맞습니다. 윤 마님의 것이지만 죽은 언 마님에게 주었다가 다시 심 마님 방 침상 밑에 넣어 둔 것이죠. 당연히 윤 마님 침상이 아닌 심 마님 침상 밑에서 발견되었죠.”

심마님이란 손불이의 마지막 일곱번째 첩실인 심월아(芯月雅)를 말한다. 그녀는 자신의 얘기가 나오자 화들짝 놀랐다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나는 모르는 일이에요.”

윤소소는 창백한 얼굴로 부인했다. 전연부는 이제 여유가 있었다. 그는 잡은 먹이는 절대 놓치지 않는 맹수의 본능을 가지고 있었다.

“본인은 이번 사건의 살인 동기가 무언지 궁금했지요. 살인 동기를 제대로 파악하면 사건의 절반이 해결되거든요. 하지만 이번 사건은 그 살인 동기가 모호했어요.”

그는 이제 윤소소를 보고 있지 않았다. 전부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았다.

“어젯밤 서소저와 송소저가 습격 받고, 표물을 뒤진 흔적을 보고는 깨달았습니다. 두 소저는 지금까지 열사흘이나 내용은 알지 못하지만 그 본래의 표물 때문에 누군가에게 계속 공격을 받고 쫒겼었지요. 이곳만큼은 안전하다고 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그들은 백련교도들이었거든요.”

좌중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범인으로 몰리고 있는 간효용도 울음을 멈추고 있었고, 윤소소도 입술을 깨물면서 아무 소리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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