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제도, 우리도 할말 있다!

2008년 대입제도 개선안에 대한 중3 학생들의 생각

등록 2004.11.02 15:16수정 2004.11.02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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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인적자원부가 발표한 ‘2008년 대학입시의 개정안’에 대한 교원·학부모·시민단체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교원단체가 기본적인 방향에서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보고 있는 반면, 전교조는 파행이라는 상반된 평가다. 학부모 단체인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도 기만적인 방안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번 개선안은 학생의 평가권과 평가도구를 고교교사와 학교수업에 되돌려주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것은 공교육에 내실화를 통해서 무너진 공교육의 권리를 되찾고 사교육비문제에 해답을 찾고자 하는 방향에서 나온 개정안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엇갈린 반응은 입시제도 본질의 문제에서 서로 다른 방향에서 분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2008년 대학입시 개정안 당사자인 중3인 학생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서로 다른 진로를 모색하고 있는 부천의 B여자중학교 중3 학생들을 만나 보았다.

오후 3시30분, 수업을 마치고 나온 학생들은 꽤 피곤해 보였다. 축 처진 어깨만큼이나 입시에 대한 부담감이 크다는 것이 느껴졌다. 부천역 근처의 피자집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여름에 기자와 함께 열흘 동안 영화를 만들어 본지라 무척 반가웠다.

a 정선혜 학생

정선혜 학생 ⓒ 김선경

“요즘 다들 힘들어 보여요. 부천이란 지역은 아직 평준화가 아닌 비평준화라 내신관리 때문에 다들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어요. 반에서 25등까지는 인문계, 그 다음은 실업계로 나눠지죠. 최근에 2008입시제도 개정안이 발표되면서 더 혼란스러워진 것 같아요.”

신나게 수다를 떨며 이야기 하는 정선혜(부천B여중3학년)양은 외고입시를 준비하고 있기도 해서 부담이 더 크다고 한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서 영어 공부를 하면서 11일에 있을 시험을 준비 중에 있다고 한다. 사실 의대로 진학하고 싶은 욕심에 외고를 썼는데 입시 개정안이 바뀌면서 아직 잘 몰라 혼란스러운 상태라고 한다.

“몇몇 선생님 말고는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하시는 말씀이 그냥 좋은 학교가라는 말만 하죠. 선생님도 잘 모르니까 물어 볼 사람도 없고 그래서 더 답답하기만 하죠. 왜 하필 우리 때부터 개정안이 실행돼서, 희생양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열 받기도 해요”라며 별다른 진로에 대한 생각이 없어서 인문계로 진학하겠다는 원은경(부천B여중3학년)학생의 말은 지금 중학교의 상황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였다.

21등 아래 학생들에게 강요되는 보충수업도 이런 입시제도에 대한 불안감과 함께 학생들의 생활을 조이고 있다. 고등학교에서 진행되는 불법적인 강제 야간자율학습과 비슷한 보충수업이다.

“호텔을 경영하는 것이 꿈이죠. 그 꿈을 키우고 싶어서 부천에 있는 상업계고등학교로 진학하려고 해요. 지금 혼자 공부하고 있는 일본어 공부를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더 열심히 해보고 싶죠. 다른 친구들보다는 진로에 대한 불안은 없는데 지금의 선택이 올바른지는 아직 잘 모르겠네요.” 말이 적고 수줍음을 잘 타는 박지애(부천B여중3학년) 학생은 입시 개정안에 대해 담담한 반면 자꾸 바뀌는 입시제도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a 토론중

토론중 ⓒ 김선경


수다 떨 듯이 이야기하면서도 진로와 학업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너무도 어른스러워 보였다. 이내 피자가 나오고 우리의 수다는 더 신이 났다. 이 친구들에게 2008년 입시제도의 중심사안 4가지를 던져주고 생각을 들어 보았다.

내신비중 강화

수능중심으로만 학생들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대폭 내신의 비중을 높임으로써 학생들의 평소 학업을 평가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선혜 “학교마다 변별력 없이 평가하고 있죠. 시험문제를 실제로 쉽게 출제하기도 해요. 학교선생님 말로는 상대평가를 한다고 하는데 아직 잘 모르겠어요. 수능도 준비해야하고 내신도 관리해야하고 더 부담이 되요. 만약에 중간고사 기간에 몸이 안 좋아 시험을 못 보면 어떡해요. 대학 못 가는 거 아닌가요. 더 학생들에게 부담만 주는 것 같아요.”
a 박지애 학생

박지애 학생 ⓒ 김선경


지애 “내신이 낮은 아이들은 대학에 못가는 건가요. 공부만을 강요하는 지금의 현실이 싫어요. 전 제가 공부하고 싶은 일본어를 더 하고 싶은데 할 수 없고, 내신 공부에만 매달리게 되죠. 내신을 강화시키면 학원에서 그것을 또 준비해줄 테고….”


심층면접·논술·적성검사 준비

수능 시험의 비중을 축소하면서 대학들로서는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심층면접 논술 적성검사 등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학교에서는 독서를 바탕으로 하는 사고력을 키울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이 부분 역시도 학생들에게 또 다른 입시에 대한 부담감일 수밖에 없다.


학생들은 대학별로 요구하는 적성검사나 면접 준비에 시간을 투자해야 할 것이고 그것을 담아낼 수 없는 공교육은 또 한 번 휘청할 것이다. 학원가에서는 발 빠르게 논술이며 면접에 관한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학생들을 맞이하고 있다. 공교육에서 당장 다음해부터 어떤 준비를 할 것인가. 학생들의 우려 또한 이 부분에 있다.

선혜 “책을 읽고 토론하는 수업은 참으로 좋은 것 같아요. 그리고 학생들이 독서하는 것은 바람직하고 그런 풍토를 만드는 것은 좋다고 생각해요. 근데 대학입시에서 만큼은 이런 분위기가 또 하나의 입시준비로 인식 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그리고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을 고등학교 때 갑자기 하는 것 또한 웃기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그런 독서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암기만을 강요하고서 이제는 또 이런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하니까 너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2007년부터 교과별 독서활동 학생부 공개

학생부에 교과별 도서를 선정하여 독서를 하게끔 하여 공교육에서 독서를 널리 권장해 사고력신장에 기여하기 위한 준비로 나온 안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지적할만한 문제는 학생들에게 어떤 잣대로 지침도서와 독서를 한 결과를 평가할 것인가와 독서를 많이 했다고 해서 가산점을 주는 논리가 과연 맞는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a 원은경 학생

원은경 학생 ⓒ 김선경


은경 “자꾸 생소한 제도가 생기고 무얼 준비하라고 그러는지 잘 모르겠어요. 독서라는 것을 강제적으로 강요하려는 느낌이 들어요. 자기가 관심이 있는 부분을 자유롭게 읽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걱정이 되요.”

수능비중축소(등급제 유지)

수능 비중이 대폭 축소된다고 한다. 이에 따라 학생부와 내신 그리고 수능으로 학생들의 대학입시에 대한 평가가 나온다. 또한 논술 면접 적성검사까지 대학 본고사와 같은 자체적인 평가가 높아질 것이다. 수능 비중 축소는 학생들에게 어떻게 다가 올 것인가.

은경 "수능 비중이 축소된다고 해서 수능 성적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이 공부를 덜 하겠어요? 그렇지는 않죠. 또 수능을 잘 보기 위해서 공부를 해야죠.”

주요 중심 사안에 대한 아이들의 생각은 대부분이 부정적이었다. 결국 입시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이 있지 않고서는 입시 개정안은 역시 미봉책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이들은 훨씬 더 부담을 갖고 있다. 당장 몇 달 뒤면 고등학생들이 될 아이들은 내신관리와 수능준비, 논술준비와 면접준비, 자신이 원하는 대학의 적성검사 준비, 교과별로 요구하는 책 읽기, 자신의 꿈과 기량을 뽐낼 수 있는 그런 개혁안은 없다.

아이들은 이런 학교에서 벌어지는 문제에 대해 깊은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학교교육에 관한 불만 베스트4를 뽑았다. 그리고 대안까지 마련해보았다.

학교 교육 이것은 싫다! 베스트4
학교교육에 대한 문제점을 살펴 보았다.

1. 말로만이 아닌 진정한 선택과목의 확대

7차 교육과정으로 바뀌고 더 많은 과목이 생성되었지만 학생이 원하는 수업을 듣는 것은 아직도 부족하다. 학교가 요구하는 수업을 듣기만 해야 되는 상황이다. 지애는 일본어가 무척 좋아 앞으로 그런 쪽의 일을 꿈꾸는 아이이다. 그런데 학교에서 제2외국어를 중국어와 독일어를 가르치는 학교로 진학하게 되면 그 과목을 배울 수 없게 된다.

은경이는 이 문제에 대해서 학교 수업을 12시까지만 하고 오후에는 자신이 배우고 싶은 수업을 신청해서 듣는 걸 방안으로 내놓기도 했다. 공부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진로와 꿈을 찾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과목을 자신이 선택하고 싶어 하는 욕심, 우리 교육은 그동안 이런 아이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오지 않았는가. 선택과목의 확대는 말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교육현장에서 실천되어야 한다.

2. 수능시험을 자격시험처럼

선혜는 수능시험이 인권침해요소라고 본다. 자신이 그동안 공부한 것을 단 하루에 평가하는 그 방식에 대해 너무 인격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수능을 나눠서 자신이 원하는 때에 볼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수능은 자격시험처럼 어느 정도의 소양만 되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평가하는 시험으로 작용되면 좋겠다고 했다.

3. 내신에 대한 압박

싫어하는 수업도 이제는 억지로 열심히 해야 한다. 체육수업에서 차등의 실력이 있어도 내신을 잘 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선혜 에게는 부담이라고 말했다. 시험기간에도 아프지 말아야 한다. 한 번 실수하면 그걸로 대학은 끝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4. 특별활동과 적성을 키우지 못하는 현실

지애는 학교에서 이 문제를 별로 대단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본다. 적성과 진로에 대한 고민 보다는 무조건 대학만을 가길 강요하는 풍토가 너무 싫다고 생각한다. 무조건 대학만 가고 그 다음에 진로를 생각하게 하는 지금의 현실에서 자신은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신의 노력이 없으면 또다시 대학이라는 공간에 짓눌려 자신의 꿈을 잊고 공부를 해야만 하는 것에 대해 큰 불만을 갖고 있었다.

/ 김선경


2008입시 개정안을 바라보면서 씁쓸함이 감돈다.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에 대한 물음이다. 학생들을 대학 선발 기준에 잘 맞게 적용시키기 위한 정책인가. 교육의 주체는 누구인가. 아직도 청소년은 어린 존재이고 배워야만 하는 학생인가. 학생은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개진할 수는 없는 건가. 자신들의 교육정책에 대해 제대로 된 말 한마디 없이 교육인적자원부에 따라 왔다 갔다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2004년, 수능이 끝나고 우리는 또다시 몇몇의 학생들을 세상과 이별 시켜야 하는가. 입시의 압박으로 인한 자살, 매년 아까운 아이들의 자신의 목숨을 끊는 고통을 택하고 있다. 학생 개개인의 문제인가. 아이들의 밝은 웃음을 지으며 다니는 행복한 학교에 대한 생각들, 아이들에게 평생 꿈에서만 가능한 이야기로 만들 것인가. 이제 우리의 노력이 필요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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