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 중대 연병장에서(앞 이 일병, 뒤 필자)박도
필자가 전방 소총소대장 때의 일이다. 1969년 초겨울 어느 날이었다. 날마다 땅거미가 질 무렵이면 한 차례씩 들르는 부식 차(트럭) 편에 한 녀석이 전입해 왔다. 그날 늦은 밤 중대 일일결산 시간이었다.
중대장과 소대장 4명 그리고 인사계해서 여섯 사람이 모여 하루 일과를 점검하고 다음 날 일과를 의논하는 자리인데 조금 전 전입해 온 이 일병을 다른 소대장이 모두 받지 않겠다고 하였다.
그는 남한산성에 있는 육군교도소를 갓 출소한 병사로 남은 군복무 기간을 마치려 우리 중대로 전출된 친구였다(지금은 이런 경우 곧장 불명에 제대 시키는 걸로 알고 있음).
소대장들이 그를 배구 볼처럼 넘기자 중대장이 내 눈치를 살폈다.
"제가 맡지요."
그러자 중대장은 내게 세심한 지시를 했다. 늘 행동을 주시할 것. 야간근무는 내보내지 말 것. 소대 전령 보직을 줄 것 등 시시콜콜하게 늘어놓았다. 건성으로 대답은 했지만 나의 통솔방법과는 다르다.
중대장의 지시대로 한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 다시 사고자로 만들 수 있다. 관심은 갖되 겉으로 드러나거나 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지난날의 과오는 불문에 붙이고 다른 소대원들과 똑같이 대해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었다.
그는 내 소대로 온 후 별일 없이 잘 지냈다. 나는 그에게 한번도 지난 전과를 묻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소대원을 통해 그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들려왔다.
비극으로 끝난 청춘남녀
그는 남쪽 바닷가 출신으로 군 입대 전에는 고기도 잡고 농사도 지었다. 원래 그의 병과는 기갑으로 전차 무전병이었다.
군 입대 전에 고향 마을의 한 아가씨와 장래를 약속하고 사귀었다. 군 복무 중 아가씨가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하늘이 무너져 버리는 배신감에 앞뒤 가리지 않고 부대장 권총을 훔쳐 품안에 숨긴 후 탈영했다.
그가 결혼식장에 도착한 때는 주례가 막 성혼선언문을 낭독할 때였다. 그는 품안의 권총을 꺼내들었지만 차마 신랑 신부는 쏘지 못하고 부르르 떨다가 천장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결혼식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그는 헌병대로 넘겨졌다. 그 후 2년 여 교도소 생활을 하고 남은 군 복무기간을 채우기 위해 우리 소대로 온 것이다.
그의 얘기를 듣고 보니 그 죄는 미울지라도 연민의 정이 갔다. 군 복무 중 사고는 대부분 여자 문제다. 한창 나이에 3년이란 공백은 여간한 각오없이는 넘기기가 힘드나 보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고 춘향이처럼 일편단심인 여자도 없지는 않다.
군인 신분으로 자주 외출할 수 없으니까 전방까지 면회 오는 열녀들도 더러 있다. 그런 경우 부대 부근 민가가 면회 장소가 되고, 하룻밤 촛불을 밝히게 특박도 허용해 준다. 그래서 그 무렵 전장 소대는 전속 면회집이 한두 집 있었다.
강바람이 몹시 불던 날 순찰 도중 경계 근무를 서고 있는 이 일병을 만났다. 마침 혼자 근무 중이라 말을 걸었다.
"고마워. 열심히 근무해 줘서."
"뭘요. 이제는 무사히 제대해야죠."
"이 일병 얘기는 다 들었지. 어때, 요즘 심경은?"
"후회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조금만 참았더라면 피차 상처가 크지 않았을 텐데."
"그 여자 후문은 들었어?"
"시집 간 지 얼마 안 돼…"
"…"
"…"
"어떻게 할 거야?"
"글쎄, 제대를 해봐야죠. 제가 그 여자를 너무 믿었어요. 결혼한다는 말에 참지 못하고…."
이 일병보다 내가 먼저 제대를 했다. 이제껏 이 일병의 뒷소식은 듣지 못했다. 아마도 세월이 약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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