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과 지성인의 참모습을 보여준 책

무함마드 깐수의 옥중서간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

등록 2004.11.02 22:48수정 2004.11.03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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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步千里>라는 이 책의 저자는 정수일이다. 그는 우리에게 무함마드 깐수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연변에서 태어나 중국 국비유학생으로 카이로대학에서 공부하였고 중국 외교부에 근무하던 중 북한으로 환국하였다. 평양서 교수로 지냈고 말레이대학에서 이슬람아카데미 교수로 있었다.

단국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나 취소되었고 단국대에 교수로 있던 중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5년간 복역하고 2000년에 출소하였다.


복역 중이던 1996년 9월 14일부터 2000년 8월 14일까지 부인에게 보낸 편지를 엮어 편찬한 이 책은 저자의 ‘쉬지 않고 달려온 긴 여로’를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다.

편지라 하면 개인사에 치우쳐 있을 것으로 판단되나 이 책에서 저자의 애정 어린 겨레혼과 투철한 민족혼을 보게 된다. 구구절절이 매 편지마다 보이는 저자의 애민애족의 정신은 독자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어 한시라도 책장을 덮지 못하게 한다.

문명교류학을 통하여 한반도의 위세를 높이고 민족의 정기를 되찾으려는 저자의 기상은 이 시대의 학문을 하는 모든 이에게 귀감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특히 가르침과 학문에 종사하는 이에게 매우 필요하다고 본다.

이 책을 통하여 많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추수감사절은 17세기 초 영국청교도들이 북아메리카에 이주하여 원주민을 몰아내고 첫 농사를 지은 해에 추수한 곡식에 칠면조를 잡아놓고 하느님께 감사한 일에서 유래된 것이라 한다.

즉, 토착 인디언을 몰아내고 그들에게서 빼앗은 땅에 농사를 짓게 보살펴준 하느님께 감사한다는 뜻이라 한다. 진정 하느님은 그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었을까? 지금까지도 하느님의 이름을 빌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해쳤는가? 그 과정에서 얻은 이익을 챙기고 그 영광을 하느님께 돌린다는 그들의 가식을 보면 같은 기독교인으로 자괴감이 든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저자의 학문하는 자세이다. “지식과 기능만을 가르치는 꼬장꼬장한 선생은 있으나 인생을 가르치는 후더분한 스승은 없고, 지식과 기능만을 배우는 박제화된 학생은 있으나 인생을 배우는 지덕겸비의 제자는 없다”하시며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청출어람(靑出於藍)으로 비유한다.


그는 학문과 지식을 구별하여 학문의 길을 설파한다.

“지식이란 임기응변의 방편이고, 세상만사의 근본을 다스리는 것은 오로지 학문에 의해서 가능하다.”
“학문하는 사람은 근엄하여 매사를 경계하고 신중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도량을 넓혀 자질구례한 일에 구애받지 않는 활달한 성품과 남의 기를 살려주는 부드러운 마음을 지녀야 한다.”


그는 특히 명예박사의 남발을 아주 잘못된 일로 보고 있다. 지식인과 지성인을 구별하고 학문과 지식을 구별하며 학문하는 자세를 바르게 가르치고 있다.

“지성인이란 시대의 소망을 자각하고 미래지향적인 이상 속에 시대와 사회에 지적 기여를 하는 지식인을 일컫는다”하며 객관적 지식만을 소유하고 초연히 살아가는 지식인과 구별하였다. 그는 대표적인 지성인으로 황현, 박은식, 이익, 최치원, 공자, 에밀졸라를 들었다.

저자는 단국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나 후에 취소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소개에 단국대 박사과정 수료로 나와 있는가 보다. 이 얼마나 치졸한 일인가? 어찌 학위 부여가 정치에 의하여 취소될 수 있는가. 학위란 그 논문이 인정을 받아 수여되는 것인데 정치적인 일에 연루되면 그 논문의 질이 떨어지는가? 어찌 한번 수여한 것을 취소할 수 있는가. 이 역시 회자되고 있는 국가보안법의 부끄러운 뒷모습을 보여준다.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

정수일 지음,
창비,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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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을 통해 사회를 분석한 <오지랖 넓은 수학의 여행>, 역사가 담긴 자전거기행문 <미안해요! 베트남>, <체게바를 따라 무작정 쿠바횡단>, <장준하 구국장정6천리 따라 자전거기행> 출간. 전 대전환경운동연합 의장, 전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장, 현 배재대 명예교수, 피리와 클라리넷 연주자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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