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미넴이 주연한 영화 <8마일>의 포스터자료사진
이 글들은 잠시 스쳐가는 발걸음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디트로이트의 깊은 구석을 드러내고 있다. 이중에서 ‘음’ 독자가 권한대로 <8 마일(8 mile)>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디트로이트를 넘어서는 리얼리티가 이 영화 속에서 구현되고 있다고 느꼈다.
영화 자체는 흑인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랩 장르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백인 래퍼로 성장한 에미넴(Eminem)의 얘기라고 한다. 8마일은 흑인이 밀집 거주하고 있는 디트로이트 시내와 백인 중산층이 거주하고 있는 교외를 남북으로 가르는 도로의 이름이다. 이 영화는 8마일의 남쪽 그러니까 흑인 밀집 지역에 사는, 그래서 백인으로서 역차별을 받는 에미넴이 랩 배틀(rap battle)에 도전하는 내용이다.
랩 배틀(rap battle)이란 관중들의 반응으로 승자가 가려지는 토너먼트 형식의, 촌스럽게 말해서, 노래자랑대회이다. 단순한 노래자랑대회는 아닌 게, 사전에 준비된 아무런 가사나 곡 없이 즉석에서 비트에 맞춰 가사를 만들어내 상대방을 공격해야 한다. 그래서 말로 하는 이종 격투기와 비슷하다. 호의적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관중들이 공감할 수 있는 현실을 가사에 담아야 한다는 점에서 노래가 아닌 웅변, 또는 암혹한 현실에 대한 고발로 들린다.
영화의 설정을 보면 엄마와 여동생과 함께 사는 에미넴이 그냥 집도 아니고 이동식 간이주택인 트레일러에, 그것도 주인 아니라 세입자로서 산다든지, 에미넴이 판형 공장에서 잔업까지 자청하면서 일하지만 독립할 수 있는 돈을 만지지 못한다든지, 남편 없는 여성이 이끄는 가정, 그리고 저임금 시간제 노동자의 실상이 잘 그려져 있다. 트레일러는 원래 여행용으로 개발됐지만 서민들의 트레일러는 움직이지 않는다.
에미넴은 랩 배틀에서 처음엔 흑인 관중들의 기세에 눌려 입도 뻥긋 못하고 물러났지만 나중에는 흑인들을 차례로 물리치고 결승전에 진출한다. 결승전에서 그는 상대 흑인 래퍼가 피부만 검을 뿐이지, 비싼 사립학교 출신이고 랩할 때만 8마일 남쪽으로 내려오는 위선자라고 공략해 관중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는다. 인종이 아니라 계급으로 편을 나누는 데 성공한 것.
흑인 래퍼는 그의 통렬한 고발에 말문을 열지 못하고 경기를 포기하고 만다. 에미넴은 공장으로 심야 잔업을 하러 발길을 돌린다. 랩 배틀에서 이겨도 저임금 노동자들을 기다리는 현실은 계속될 수밖에 없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이 점에서 굉장한 리얼리티를 획득하고 있는데 실제의 에미넴은 랩 올림픽에서 2등을 차지했고 음반 계약을 맺고 수백 만장의 음반을 팔아서 빈곤에서 탈출한다. 어느 쪽이 더 리얼한 것일까.
디트로이트의 희망지대 '포커스: 호프'
블루 아메리카의 마지막 편으로 디트로이트를 다시 언급하는 것은 에미넴과는 정반대의 궤적을 보인 또 다른 백인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다. 에미넴은 성공해서 8 마일을 벗어났지만 이 사람은 67년 7월23일 43명이 죽고 1500명이 다치는, 당시로서는 최악의 폭동이 이곳에서 일어났을 때 8 마일을 넘어서 남으로 내려왔다.
그녀의 이름은 엘리노 조사이티스(Eleanor Josaitis). ‘옥돌’이라는 독자가 봉사활동을 했다고 하는 ‘포커스: 호프(Focus: HOPE)’라는 시민 인권단체의 최고경영책임자(CEO)다. 올해 72세의 할머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