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용할 양식이 된 어린 새싹들

총각이 쓴 육아(育芽) 일기 2

등록 2004.11.03 13:51수정 2004.11.03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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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날(10월 28일), 애기들 우뚝서다


오늘로 애기들을 키우기 시작한 지 나흘째. 첫날에는 씨앗들을 각각 종이컵에 담아 물속에 만 하루를 보냈고, 둘째날에는 씨앗들에 뿌리가 생겨나 씨앗을 기르는 용기로 이사 시켰고, 셋째날 어린 아이 솜털처럼 작은 뿌리에도 무수히 많은 잔뿌리들이 생겨났습니다. 또 하루가 지난 오늘은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a 뿌리 내리는 거 보이시죠?

뿌리 내리는 거 보이시죠? ⓒ 정상혁

드디어 뿌리가 내렸습니다. 씨앗을 기르는 용기에는 작은 구멍이 많이 뚫려 있습니다. 그 용기 위에 흩어 뿌려놨는데 애기들은 알아서 구멍을 찾아 뿌리를 내렸습니다.

자, 키가 얼마나 자랐을까요? 키 큰 순서대로 정리하면 순무→알팔파→적무→청경채입니다.

청경채는 여전히 다른 셋에 비해 발육이 늦습니다. 그래도 지난 며칠 사이에 변화가 약간 있었습니다. 셋째날까지도 검은 색이 대부분이었는데 씨앗 껍질이 갈라진 틈으로 서서히 뿌리를 내밀기 시작하고 노란빛을 띠기 시작했습니다. 적무 떡잎을 좀 보세요.

a 청경채는 아직 멀었습니다. 청경채와 적무.

청경채는 아직 멀었습니다. 청경채와 적무. ⓒ 정상혁

이제 다들 제법 새싹 같이 보이는군요. 초록이 더해 가는 순무와 알팔파입니다. 이제 노란빛은 많이 사라졌습니다. 왼쪽 검정색 씨앗에서 나오는 것이 순무이고 오른쪽 노란 씨앗은 알팔파입니다. 이젠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a 알팔파와 순무. 잘 자라고 있습니다.

알팔파와 순무. 잘 자라고 있습니다. ⓒ 정상혁

이제는 물도 매일 갈아줘야 할 것 같습니다. 물 색깔이 하루만 지나면 굉장히 탁해지는데 냄새를 맡아 보면 그리 좋지 않습니다. 아마도 그 안에서도 무수히 많은 일들이 벌어지는 것 같습니다.

다섯째 날(29일), 적무싹이 꼭 하트 모양이네요


a 넷째날은 이만큼 자랐네요.

넷째날은 이만큼 자랐네요. ⓒ 정상혁

회사에는 햇볕 드는 곳이 마땅치 않아서 늘 제 책상 위 형광등 아래에서 우리 애기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굳이 다른 곳을 찾으려면 왜 없겠냐마는 늘 가까운 곳에 놓고 보고 또 보고 싶은 것이 솔직한 제 마음입니다. 이제는 제법 많이 자라서 그릇의 담을 넘어 훌쩍 자란 우량아(芽)도 보입니다.

a 새싹이 하트 두개를 겹쳐 놓은 듯합니다.

새싹이 하트 두개를 겹쳐 놓은 듯합니다. ⓒ 정상혁

한눈에 새싹 모양이 하트라는 걸 알 수 있지요? 너무나 예쁘죠? 한참 쳐다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습니다.

a 저 뒤로 보이는 적무 형들이 부럽겠지요?

저 뒤로 보이는 적무 형들이 부럽겠지요? ⓒ 정상혁

이번엔 미숙아(芽)가 얼마나 자랐나 살펴보겠습니다. 지금 키우고 있는 새싹 중에서 청경채만이 유일하게 다 자란 모습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더디 자라는 작물인지는 몰랐습니다. 인큐베이터가 있다면 좀 넣어 두면서 세심하게 보살피고 싶을 정도입니다. 이제 하루나 이틀 정도 후면 샐러드로 먹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섯째 날(10월 30일), 우리들은 자란다

청경채가 훌쩍 자랐습니다.

a 이제는 제법 새싹 같아 보입니다.

이제는 제법 새싹 같아 보입니다. ⓒ 정상혁

롱다리 적무에 비하면 많이 미치지 못하지만 점차로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a 적무의 붉음은 나날이 더해 가고.

적무의 붉음은 나날이 더해 가고. ⓒ 정상혁

적무 줄기는 나날이 붉어져만 갑니다. 처음에 싹이 돋아 줄기를 올리기 시작했을 때는 연한 핑크빛이 살짝 돌았는데 이제는 그 붉음이 점점 강해져만 갑니다. 매운 맛도 점점 더해지고 있을 겁니다.

마지막 날(11월 1일), 애기들, 나의 일부가 되다

a 이제 이만큼 자랐습니다. 작별의 시간이 다가옵니다.

이제 이만큼 자랐습니다. 작별의 시간이 다가옵니다. ⓒ 정상혁

오늘은 드디어 수확의 날입니다(집에서 쉰 31일 일요일은 세지 않았습니다). 청경채는 먹기엔 아직 좀 어리지만 양이 적어서 함께 수확하기로 했습니다.

주위에서 키워서 잡아 먹는다(?)며 잔인하다고 말합니다만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우리 애기들을 정성껏 키워서 먹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애기들이 몸으로 들어와서 저와 하나가 되는 것이지요.

드디어 점심 시간, 도시락을 꺼내 늘어 놓는데 그만 밥을 깜빡했습니다. 다행히 함께 도시락을 먹는 동료들이 십시일반 한 숟가락씩 덜어주어 평소 밥보다 더 많은 양이 모였습니다. 제 점심이 비빔밥인 줄 안 동료들이 자기들이 뺏어 먹을 몫까지 덜어 줬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비빔밥을 위해 특별히 그릇까지 들고왔습니다. 자, 이름하여 '새싹 비빔밥' 등장이요.

a 오색 새싹 비밤밥과 새싹 샐러드. 먹음직스럽죠?

오색 새싹 비밤밥과 새싹 샐러드. 먹음직스럽죠? ⓒ 정상혁

오른쪽은 조금 남은 자투리 새싹들로 만든 새싹과 적양배추 샐러드입니다.

적무는 제일 키도 크고 잘 자라기도 해서 매운 맛도 꽤 강한 편이었고 나머지는 아직 어려서 그런지 풋풋한 맛이 셉니다. 적무는 일주일 정도만 키우면 먹을 수 있지만 나머지 새싹들은 한 열흘은 키워야 제 맛을 낼 수 있을 듯합니다.

'웰빙'하면 언뜻 비싼 유기농 농산물을 떠올립니다. 회사에서 간단하게 키울 수 있고 나중에는 먹는 즐거움까지 주는 새싹 키우기에 여러분도 도전해 보세요. 어렵지 않습니다. 단, 새싹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느라 상사에게 눈치를 받을 수 있는 부작용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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