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황령산 봉수대(荒嶺山 烽燧臺) | | | | (미지정 국방문화유적) 소재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전포동 산50-1
봉수대는 갑오경장(甲午更張)을 계기로 1898년(고종 35년) 그 기능을 상실할 때까지 고려시대부터 사용되어온 군사적 목적의 중요한 통신시설이었다.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誌)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誌)에 의하면 황령산 봉수대는 1425년경(세종 7년)에 이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부산포를 지키는 해안초소 역할을 했던 황령산 봉수대는 간비오산 봉수대와 함께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연변(沿邊) 봉수대이다.
낮에는 짐승똥을 사용하여 연기(燧)로, 밤에는 불(烽)을 밝혀 신호하되 평시에는 1烽(燧), 적이 나타나면 2烽(燧), 국경에 근접하면 3烽(燧), 국경을 침범하면 4烽(燧), 접전하면 5烽(燧)을 올려 동쪽으로는 행운대의 간비오산 봉수대, 서쪽으로는 초량의 구봉 봉수대, 북쪽으로는 범어사 동북의 계명산 봉수대와 연결되어 최종적으로 서울 목멱산(지금의 남산)의 경(京)봉수대까지 그때 그때 상황을 전하는 부산 봉수망의 중심이었다.
각 봉수대에는 도별장 1명을 두고 그 밑에 별장(別將), 감고(監考), 봉군(烽軍)을 두었는데 황령산 봉수대에는 동래부에서 맡아 관리하였고 별장 10명, 감고 1명, 봉군 100명씩 배치되어 있었다.
우리 조상들이 외적의 침략 때마다 불을 지폈던 이곳 봉수대를 우리 민족의 향토수호의식과 국토방위정신을 후손들에게 알리기 위하여 1976년 10월 복원하였으며, 2000년 6월 훼손된 기능을 회복시키고 주변 정화사업을 실시하였다. / 봉수대 안내판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