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통령 누가 되든 미국의 본질에 변함없어

등록 2004.11.04 00:13수정 2004.11.04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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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땅, 우리의 선택은 아니지만 지금 우리에게 매우관심이 가는 정치 일정이 하나 있다. 그것은 미국의 대통령 선거로, 이번 대선도 지난 번 고어와 부시의 대결처럼 개표 종료와 동시에 당선자가 확정되는 것이 아닌 긴 법정싸움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한다.

지금 우리도 그렇지만, 미국의 대선은 언제나 전세계의 관심을 끈다. 소련의 붕괴이후 유일한 초강대국인 미국이기 때문일 것이며, 그 나라가 주도하고 재편하며 지배하는 세계질서 안에서 전세계 인구의 대부분이 살아가는 세상이고 보면 당연한 일이기까지 하다.

이번 대선도 거의 '내전'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뜨겁다. 독특한 선거방식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러저러한 부정이 벌어지고 있다고 하고, 누구를 지지할 것인가를 놓고 나라가 완전히 둘로 나뉜 것이 들린다. 그들 중 일부는 다시 한번 선거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만큼 골이 깊어간다고 사람들이 말한다.

세상 사람들은 공화-민주 간의 차이가 상당히 크다고 이야기한다. 보수 일관도의 공화당과 보다 개혁적인 민주당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기간의 여러 행적들을 살펴보면 그들 양대 정당도 세상에 각자의 정체성을 그렇게 표현해 왔고, 다양한 정책집행 과정에서 이런저런 대립각을 인식시키며 존재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우리 땅이 미국이 아니고, 우리가 미국 사람도 아니라는 입장에서 보면 그 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다. 우리 대한민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에서 중심에 존재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버림받아 저 구석에 처박혀 있지도 않은 어정쩡한 상황이다. 학자들은 이런 우리나라의 위치를 중심도 아니고, 주변도 아닌 '반주변'이라고 표현한다.

'반주변'이란 말은 있어도 '반중심'이란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회전체에는 단 하나의 중심만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기본적인 물리법칙인데, 세상살이 그것도 국제 질서에도 이 법칙은 그대로 통용된다. 미국은 국제 질서를 중심에서 사실상 '지배'하는 나라이다. 유럽이나 중국이 이에 맞서기는 아직 역부족이며, UN은 거의 종이 호랑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미국은 그 나라의 영토 이외에서 벌어지는 모든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대의'를 폭력적으로라도 관철시키는 나라다. 그리고 이것은 공화당이나 민주당 그 어느 당이 집권한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자국의 이익을 '모든 수단을 써서라도' 관철시키는 것이 바로 미국의 첫 째 가는 '외교적 신념'이라고나 할까?


방법 차이를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차이는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 집권기에도 미군의 '해외원정'은 있어 왔으며, 중남미의 여러 국가들에서 '친미 폭력세력'을 은밀히 지원하는 프로그램은 민주당 정부가 들어섰을 때에도 중단되지 않았다.

미군의 임무는 항상 전세계를 상대로 자국의 이해를 보존하는 것이다. 민주당 정권에서'다자주의'라는 좀더 유연한 관계를 구상하기도 하지만 결국 그 다자주의 역시 '덜 폭력적인' 세계질서 '지배방식'과 다름없다.


그리고 그들 민주당 정권들도 그동안 공화당과 함께 강력한 미국의 지배나 통제를 실현하는데 일조해 왔으므로 그들은 상호보완적인 관계지 '양립할 수 없는 사이'는 아니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클린턴까지도 테러리스트의 화학무기 공장을 폭격한답시고 수단 전체 인구의 1/2에 의약품을 생산, 공급하는 공장을 날려버렸다. 그리고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미국의 어떤 정부라 해도 미국 내 산업체계 전반을 바꾸지 않고서는 세계체제의 현재적 운영방식과 미래에 대한 전략을 수정하는 일은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자기나라 산업이 잘 돌아가도록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미국뿐만 아니라 그 어떤 나라도 예외가 되지 못한다. 그리고 주지하다시피 미국에서 제일가는 산업은 바로 군수산업이며 이는 전체 국내생산의 1/2을 넘어선다.

무리하게 단순화하여 말하자면 '평화'가 오래가면 미국의 불황은 심해질 것이고 '전쟁'이 오래가면 미국의 부유함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물론 이 부유함도 미국인 전체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기에 미국은 거의 '주기적으로' 전쟁을 치러왔다. 냉전 시기에는 엄청난 군사력을 보유하고 '동맹국'들에게 무기를 팔면서 국내 군수산업 시장을 유지해 왔다. '공적'이 사라진 이후에도 이라크-아프카니스탄, 그 이전의 이라크-동구권 내전을 비롯해 그 외 비공식적으로 소규모 군사분쟁에 개입해 왔다.

미국은 전쟁을 하나의 경제 해결책으로 사용하는 듯 하다. 소련 붕괴이후 미국이 긴 불황을 겪었던 것이 바로 그 예가 된다. '전쟁'의 부재나 '강력한 적대 세력'이 존재하지 않아 더 이상 '무장의 규모'나 무기판매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없었던 바로 그때 말이다.

이런 미국은 세계 체제의 중심에서 경찰국가로 행세하지만 그들의 국제질서 개입은 그리 경찰답지 못하다. 그들이 재생산하는 세계체제는 냉전시기 핵에 의한 공멸의 공포보다 오히려 더'폭력적'이며 암울하다. 미국과 '맞짱' 뜰 수 있는 공산주의 국가가 사라진 이후 미국은'테러'의 공포를 만들어냈고, 웬만한 나라는 이 테러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니까 말이다.

생각해보면, 노무현 정부가 국내에서 별의별 소리를 다 들어가며 이라크에 전투병을 파병한 것은 스스로 그 세계 체제의 일원이며, 그걸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확인시킨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그럼으로써 파병된 한국군의 위협과 혹시 모르는 테러를 국민들이 감수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이렇듯 미국의 산업구조 전체에 대한 재편이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미국의 대외전략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에 어떤 정부가 들어선다 해도 산업기반 전반을 변화시키는 모험을 감수할 리가 없지 않은가. 따라서 오늘의 미 대선의 승자가 누구로 결정되었는지와 상관없이 세계 불안은 계속될 것이다. 그 불안은 바로 '테러'가 될 것이며, 미국과 세계 체제의 하위 파트너들이 지금과 같이 행동하는 한, 아마도 그 테러의 위협은 좀더 강력해지고 더욱 일상적인 일이 될지도 모른다.

역설적인 일이지만,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는 99년 G-15 정상회담에서 항상 반공주의자였던 '미국의 반주변국'들에게 가장 큰 재앙은 역설적이게도 공산주의의 패배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지난 시대 미국의 여러 동맹국으로 존재했던 국가들이 지닌 '변절의 선택권'이 사라지자마자 미국의 우방국 원조가 급격히 줄었고, 그나마 남은 원조마저 대표적 깡패국가인 이스라엘로 집중되고 있다며 이런 말을 했다.

그의 말은 위협적인 적이 사라진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더 이상 자신의 하위 파트너 국가들을 '다독거릴' 필요가 없어졌다는 뜻이었고, 그에 따라 그 하위 파트너 각국이 생존하는데 지원받은 여러 '호의'가 사라졌으므로 어느 정도 '자립'을 이룰 수 없는 나라라면 심각한 생존의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하나의 예언과 같은 것이었다.

물론 부시 정부 밑에서 미국은 국내적으로도 '공공부문 축소'와 생활수준 하락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그 빈곤한 미국인의 삶일지라도 가정이, 마을이, 나라가 파괴되는 생사의 공포를 경험하지는 않는다.

전세계에 유일하게 남아 눈치볼 것 없고, 막강한 힘을 배경으로 대 테러 전쟁을 계획하는 미국의 생존방식은 부시가 당선되든, 케리가 당선되는 아마 계속될 것이다. 그것은 미국의 국내 자본이 요구하는 바이고, 나아가 전체 세계체제를 지배하는 미국의 요구이기 때문이다.

우리 그렇게 미국의 대선결과에 숨죽이지 말자. 그들의 행정부가 어떤 식으로 구성되든 그 정부는 마치 '죽음의 상인'과 같이 단순한 자본의 논리로 전세계를 위협에 몰아가는 인류 모두의 공적으로서, 그 역할을 언제나 충실히 해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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