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 통해 민주주의를 배우는 아이들

마산시 마산호계중학교의 참여형 축제문화를 들여다 보다

등록 2004.11.05 11:33수정 2004.11.05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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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과 곱게 물든 단풍의 축제, 오곡백과가 풍성한 결실의 계절 가을이다. 이맘때면 학교 현장에서도 1년간의 각종 교육 활동이 풍성한 결실을 맺는다.

마산시 내서읍 광려천을 지나 우거진 숲 속에 위치한 신설학교 마산호계중학교(교장 주종돈)에서도 지난 10월 26부터 27일까지 한 해 동안의 교육 활동을 뽐내는 학예제 '매송축제'가 열렸다.

21세기를 '참여민주주의시대'라고 하듯이 시민의 참여의식이 날로 중요해지는 시기에 "학교 현장에서는 교육공동체의 참여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미래의 주인공인 학생들에게 '참여'라는 가치가 어떻게 가르쳐지고 있는가?"하는 생각에서 이 학교를 들여다보았다.

다함께 참여하여 만드는 '톡톡 튀는 신세대 급훈'

"사랑으로 믿음으로" "허물자 마음의 벽" "꿈★은 이루어진다." "함께 해요." "사랑의 교실, 커가는 꿈" "모두가 하나를 위해, 하나가 모두를 위해"

마산호계중학교 교실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교실 정면에 부착된 기발한 급훈이다. '성실' '정직' 등 막연히 모범생을 강조하던 도덕적인 옛 급훈에 비해 훨씬 자연스럽고 친근감이 든다.

특히 대부분의 학급에서 담임교사가 급훈을 일방적으로 정하지 않고, 학생들의 열띤 '토론'을 통한 참여 속해서 정했다는 점이 더욱 인상적이다. 또 일부 반에서는 '급훈 공모전'이 열려 학생들의 치열한 아이디어 경쟁 속에 급훈이 정해지기도 했다고 한다.


1학년 교실의 뒷편 환경게시물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내 생각은요!"라는 코너. '인터넷 실명제' '두발 자율화' '청소년 휴대폰 사용' 등 학생들의 평소 관심사 중에서 수시로 토론 주제를 선정하여 뜨거운 찬반논쟁을 벌이는 곳이다. 자신의 생각을 의견쓰기나, 스티커 붙이기 등의 방법으로 자유롭게 표현하는 '참여마당'이다.

그리고 학생들이 평소에 친구, 선생님, 부모님께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학급 게시판의 '진실 토크'라는 코너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또 이 학교의 복도와 화장실 등 모든 공간에는 "너의 미소는 꽃보다 아름다워!" "괜찮아 넌 할 수 있어" "너의 하는 일은 꼭 잘 될 거야!" "난 널 믿어" 등 학생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말들로 가득하다.

이 심성순화 글귀들은 학교에서 교사들이 엄선하여 만든 것이다. 학생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려는 이 작고 세심한 교사들의 배려속에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진하게 느껴진다.

다함께 참여하는 학급 운영 '학급 역할 릴레이'

"제가 본 우리 반 역할짱 정소용은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본받을 점이 많은 친구입니다. (중략) 그리고 우리반 친구들은 모두 다 역할짱들입니다. 매일 자기의 역할을 열심히 하느라고 바쁩니다. 그런 친구들의 모습이 아름답고 빛나 보입니다. 그리고 친구들끼리 서로 도와주고 아껴주며 열심히 하는 친구들 서로 간의 우정이 따뜻해보입니다. 그리고 저도 친구들의 모습을 본받아 열심히 하고, 나의 나쁜 습관을 좋은 습관으로 바꾸어나갈 것입니다."('학급 역할 릴레이' 소감문 중에서)

학급 운영도 담임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운영하지 않는다. 모든 학급 구성원이 함께 참여하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이 학교의 대표적인 학생 참여 사례가 이른바 '학급 역할 릴레이'라는 프로그램.

2학년 1반에서 운영되는 이 프로그램은 학급의 칠판 지우기, 휴지줍기 등 크고 작은 일을 학급 구성원 38명 모두 참여할 수 있도록 38가지의 역할로 구분하여 매주 서로 돌아가면서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1주일간 교대로 역할 수행이 끝나면 학급회의 시간에 평가 및 반성의 기회를 가지고, 특히 한 주 동안 가장 책임감 있게 모범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한 학생을 '역할짱'으로 뽑고, 학급 역할신문에 특집기사로 보도하기도 한다.

역할 릴레이를 통해 아이들은 학급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구성원이 됨은 물론이고, 나아가 각자의 가정에서의 역할과 장차 사회에서의 역할도 다할 줄 아는 '어느 사회에서나 꼭 필요로 하는'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하는 좋은 프로그램으로 평가받고 있다.

학급 역할 릴레이 신문 "우리 반 역할짱" (2학년 1반). 역할을 1주일간 가장 잘 수행한 학생을 "역할 짱"으로 선정하여 역할 신문에 특집 기사로 만들고 있다.
학급 역할 릴레이 신문 "우리 반 역할짱" (2학년 1반). 역할을 1주일간 가장 잘 수행한 학생을 "역할 짱"으로 선정하여 역할 신문에 특집 기사로 만들고 있다.윤란자
이 프로그램을 창안하여 운영하고 있는 윤란자 교사는 "학생들이 역할 릴레이를 통해 학급 일에 대한 공평한 참여 경험을 가짐으로써 '참여의식'이 높아지고 있으며, 나아가 학급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가져야 할 '책임지기'와 남을 배려하는 마음,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식' 또한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라고 말했다.

이 반 학생들에게 학급 일에 대한 참여는 더 이상 지겨운 일, 하기 싫은 일이 아니라, '학교생활의 즐거움'이자, '재미있는 놀이'이다.

다함께 참여하는 역할극 수업 '왕따 재판'

지난 10월 25일 기자가 방문한 1학년 1반 교실에서는 생활국어 '판단하며 듣기'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인상적인 점은 요즘 학교에서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이른바 '왕따' 문제를 역할극으로 만든 '왕따 재판'이 벌어지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역할극 '왕따 재판'은 왕따를 시키는 입장과 당하는 입장을 모두 역할극으로 보여준 후, 학생 스스로 판단하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이 역할극을 보며 학생들은 '왕따 시키는 학생들의 주장과 근거에는 타당성이 있는가?' '왕따 당하는 학생들의 입장은 어떠한가?'에 대하여 보다 논리적이고 진지하게 생각하며 '스스로' 왕따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리고 있었다.

학생들이 준비한 역할극 '왕따재판'을 통해 왕따문제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며 판단을 내리고 있다.
학생들이 준비한 역할극 '왕따재판'을 통해 왕따문제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며 판단을 내리고 있다.유동원
이 역할극 속에서 왕따를 당하는 '형민' 역할을 맡았던 1학년 1반 정유경 양은 "평소에 왕따를 당한 적이 없지만 이 역할극을 통해서 왕따가 얼마나 나쁜지를 알게 되었다"며, "역할극을 하기 전에는 저도 왕따를 당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이 역할극에서 왕따 역할을 해보니 왕따의 행동에도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앞으로 서로 더불어 사는 마음으로 이해하여 '왕따'라는 말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 수업을 담당한 김도숙 교사는 "학생들이 이 역할극을 통해 자기 주변의 문제인 '왕따' 문제를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이해하고, '왕따'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올바르게 판단을 내리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며, 앞으로도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수업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사회 참여 기법을 배우는 '사회참여 체험학습'

같은 날, 2학년 6반 교실에서는 사회 과목 '시민의 사회참여의식' 단원 수업이 '사회참여 체험학습'으로 진행되고 있었는데, 학생들이 진지하게 '호계참여뉴스'를 방송하고 있었다.

앵커1: "호계 참여방송 김수지"
앵커2: "김서린 아나운서입니다."
앵커1: "요즘 학교에서 학교폭력과 금품갈취를 당하는 학생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강형래 기자가 알아봤습니다."
기자: "강형래 기자입니다. 우리 학교 100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본 결과 학교 폭력을 당한 적이 있는 학생이 9%, 금품갈취를 당한 경험이 있는 학생이 19%나 되었습니다."
앵커1: "무척 많은 숫자군요. 당하는 사람의 고통을 생각하면 이런 일이 1%가 된다고 해도 있어서는 안되는 일일 것입니다."


'사회참여체험학습'은 학생들이 모둠별로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모둠별로 그 문제점을 설문조사, 인터뷰, 관찰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조사하며, 모둠별로 실천할 수 있는 해결 대책을 세워 직접 모둠별 '참여' 활동을 펼치는 수업이다.

그리고, 더욱 흥미로운 것은 모둠별 참여 활동 결과를 '호계 참여방송'이라는 참여 뉴스 형태로 학급별로 발표하여 흥미를 더한 점이다. 모둠별 우수 참여 사례에 대해서는 '참여대상'이라는 시상이 뒤따르기도 하므로 더욱 학생들의 참여 열기와 흥미가 높았다.

학생들이 '아름다운 학교 공동체 만들기'를 위한 문제점을 찾아, 문제점을 조사하고, 해결방안을 찾아 실천(참여)한 후 그 결과를 "호계참여방송"이라는 뉴스로 발표하고 있다.
학생들이 '아름다운 학교 공동체 만들기'를 위한 문제점을 찾아, 문제점을 조사하고, 해결방안을 찾아 실천(참여)한 후 그 결과를 "호계참여방송"이라는 뉴스로 발표하고 있다.유동원
학생들은 주로 학교공동체의 문제점을 찾아 스스로 참여활동을 펼쳤는데, '학교폭력 및 금품갈취 추방' '학교 자원낭비 없애기' '깨끗한 호계중 만들기' '호계중 장애인 접근권 조사' '왕따 없는 학교 만들기' 등 모둠별 참여 활동 주제도 매우 다양하고 인상적이었다.

모둠별 참여 방법도 '왕따 근절을 위한 서명운동' '홈페이지에 글올리기' '포스터 만들기' '학교 방송을 통한 자원절약 홍보' '장애인을 위한 학교 시설 개선 건의서 보내기' 등 매우 다양하였다. 특히 왕따 추방을 위한 서명운동은 전교생을 대상으로 벌일 계획이라고.

학생들은 스스로 이러한 학교 문제 해결에 노력함으로써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과 의무, 참여의식, 공동체의식 등 올바른 민주시민의식을 '체험'으로 배웠고, 나아가 장차 민주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시민의 참여기법'을 자연스럽게 배우고 있었다.

교육공동체가 함께 참여하는 학예제 '매송축제'

이 학교에서 10월 26일부터 2일간 교육공동체가 함께 참여하는 '매송 축제'가 열렸다. '매송'은 학교 교목인 '매화'와 '소나무'에서 따온 이름으로, 학생 작품 전시회와 무대 발표, 체육대회를 모두 통합하여 실시하는 학교 축제다.

이번 행사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가정-지역사회-학교'의 교육공동체가 함께 참여하는 새로운 학교 축제 문화를 선도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학예제는 교육공동체 모두의 한마당 축제로 변화하고 있다.

이 학교 주종돈 교장은 "교육이 가정-지역사회-학교' 등 교육공동체의 참여 속에 이루어져야 하듯이, 학교 축제 문화도 교육공동체가 함께 하는 새로운 축제문화로 발전해야 한다"며 '참여'의 학교 축제 문화를 역설하였다.

이번 학교 축제에는 학생들이 평소 준비한 연극, 개그, 난타, 중창, 댄싱 등 28개 프로그램의 반별 '무대공연'과 공예, 디자인, 수예 등 다양한 분야 600여 점의 학생 작품이 다채롭게 전시되어 풍성한 결실의 계절 가을을 느끼게 하였다.

특히, 이번 행사에는 모든 반에서 1개씩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무대 위에 올렸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다. 반별로 함께 의견을 모아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함께 땀흘려 '준비'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공동체 의식과 참여 의식을 자연스럽게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1학년 4반의 경우 '사물놀이와 난다' 프로그램은 학생들 어머니들의 자원 봉사로 준비됐다. 어머니들은 퇴근 후 고단하지만, "학생들에게 우리 전통문화를 가르치게 되어 기쁘다"라고 말했다. 열심히 학생들을 지도하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학교와 학부모의 끈끈한 유대와 학생을 친자녀처럼 생각하고 정성을 다하는 학부모의 훈훈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한 학부모가 퇴근후 학생들의 축제 준비에 동참하여 '난타와 사물놀이' 공연 준비를 지도하고있다.
한 학부모가 퇴근후 학생들의 축제 준비에 동참하여 '난타와 사물놀이' 공연 준비를 지도하고있다.황원판
또 학부모 임미화 외 5명의 '사물놀이' 공연이 펼쳐질 때는 전교생들이 열광적인 환호를 보냈다. 학생들은 우리 전통문화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고, 학부모 참여로 학생들의 사기가 한 층 더 높아져 축제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학부모들이 '매송축제'에 참여하여 평소 준비한 사물놀이 공연을 하고있다.
학부모들이 '매송축제'에 참여하여 평소 준비한 사물놀이 공연을 하고있다.유동원
축제 둘째 날에는 학부모들을 위해 '청소년의 이해와 상담'이라는 주제의 초청 특강을 진행, 높은 호응을 받았다.

그리고 체육대회 또한 학생들의 많은 관심 속에서 실시되었다. 축구, 피구, 농구, 단체줄넘기, 릴레이와 전통 경기인 줄다리기, 제기차기 등의 다양한 종목이 흥미롭게 진행되었는데, 특히 교사와 학생이 함께 참여하는 '5인 6각 경기'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줄다리기 대회에서 전 학생이 힘을 모아 줄을 당기고 있다. 담임 선생님의 응원도 인상적이다.
줄다리기 대회에서 전 학생이 힘을 모아 줄을 당기고 있다. 담임 선생님의 응원도 인상적이다.유동원

'5인 6각 경기'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호흡을 맞추어 열심히 달리고 있다.
'5인 6각 경기'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호흡을 맞추어 열심히 달리고 있다.유동원

릴레이 경기에서 한 학생이 1등으로 골인하며 '환희'의 미소를 짓고있다.
릴레이 경기에서 한 학생이 1등으로 골인하며 '환희'의 미소를 짓고있다.유동원
이번 행사를 주관한 연구부장 이순희 교사는 "학예회는 우수 작품, 잘하는 학생 중심의 학예회가 아니라, 좀 서투르고 부족하더라도 다 함께 주인공으로 즐겁게 '참여'하는 구성원 모두의 한마당 축제문화가 되어야 한다"라며 소중한 '참여'의 가치를 배우는 학교 축제문화를 강조했다.

요즘 N세대 청소년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호계중학교 취재를 통해 "오늘날 젊은 세대들 대부분이 이기적이거나 무관심하다기 보다는, 시민참여 기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착한 선의의 사람들이다"는 말이 생각난다.

이번 탐방을 통해, 학교가 학생들에게 적절한 참여의 '기회'를 제공하고 참여 '기법'을 잘 가르칠 때, 학생들은 '참여 의식'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훌륭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무한한 가능성을 느낄 수 있었다. 이 학생들이 장차 스스로 사회의 주인으로 참여하여 만들어 갈 '아름다운 사회'가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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