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내도 며느리도 아니었습니다"

국제결혼 이주여성 인권침해 심각... 여성단체 실태조사 나서

등록 2004.11.05 21:29수정 2004.11.06 20:56
0
원고료로 응원
최근 베트남이나 필리핀, 중국 등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의 인권 문제가 제기되는 가운데, 국제 결혼을 통해 한국으로 들오는 이주 여성에 대한 인권 침해도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대구여성의전화'를 찾은 한 30대 재중 동포는 "국제 결혼으로 한국에 와 경북 지역에서 농사를 지으며 10년 가까이 살고 있지만 남편의 가정 폭력이 너무 심해 견딜 수 없었다"면서 결국 쉼터에 몸을 맡겼다. 이 여성은 "그동안 농사일과 가사 노동 뿐 아니라 폭력에 시달렸지만 어디에 도움을 청해야될지 몰라 그저 참고만 있었다"면서 "결혼을 했지만 나는 '아내'도 '며느리'도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이들 이주 여성들은 결혼 비자를 통해 합법적으로 한국에 오지만 2년 동안은 한국 국적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가정 폭력이나 성폭력을 당해도 보호받을 수 있는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는 상태다. 특히, 한국 국적을 갖기 전에 혼인이 깨지면 다시 자국으로 돌아가야 되기 때문에 그저 참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폭력을 행사하는 남성들은 대개 일반적인 결혼의 개념으로 이 여성들을 대하지 않는데, 여성들이 이혼하기도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를 악용하는 사람도 많다. 여성이 부족한 농촌에서 이주 여성과 결혼해 농사일과 가사로 노동 착취를 하거나, 중·고등학생 자녀가 있는 남성이 20대의 여성과 결혼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 여성들에 대한 시각은 '아내'가 아닌 '무급 가정부' 정도밖에 안돼 남편뿐 아니라 그 가족들에게도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게다가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한국에 온 여성도 많지만 오히려 가난 때문에 힘든 가정이 더 많아 빈곤과 폭력, 노동 착취 등에 시달리고 있다.

대구 여성의 전화에는 이런 여성들의 상담이 꾸준히 계속되고 있지만 한국 국적을 가지지 않은 여성의 경우는 아무런 법적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성폭력이나 가정폭력에 대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조차 모른 채 무방비 상태로 생활하는 사람이 대다수일 것으로 파악돼, 최근 이에 대한 상담 활동과 실태 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또, 이주여성노동자도 임금 차별과 성폭력에 시달리고 있어 이들에 대한 활동도 함께 이뤄진다.

a [대구 여성의 전화] 강혜숙(38) 교육부장.

[대구 여성의 전화] 강혜숙(38) 교육부장. ⓒ 평화뉴스

대구 여성의 전화와 성서이주노동자쉼터, 여성해방연대는 우선 베트남어, 인도어, 중국어 등으로 상담 포스터를 제작해 국제결혼이 빈번한 농촌과 이주노동자가 많은 지역에 적극적인 상담 홍보에 나서기로 했다.


또, 이주여성에 대한 상담과 지원을 강화하기 위해 대구 여성의 전화 내부에 '이주여성들의 인권을 생각하는 사람들' 소모임도 만든다.

대구 여성의 전화 강혜숙(38) 교육부장은 "지난해 국제 결혼으로 혼인신고 한 사람은 2만명 가까이 되는데 그 가운데 대구경북 지역의 이주 여성들은 어떤 상황인지 전혀 파악되지 않은 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면서 "국적이 있든 없든 그 여성들도 하나의 인격체로 인권을 보호 받을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강 부장은 또, "관련 단체들과 연계해 국제결혼을 한 이주여성은 물론 이주여성노동자 등에 대해 상담으로 실태부터 파악한 뒤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제도 마련이나 쉼터 문제 등을 점차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2. 2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3. 3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4. 4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5. 5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