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인 삼합이 맞아야 돈이 벌려라"

소작 투쟁의 발원지, 암태도와 자은도에서 만난 사람들

등록 2004.11.07 00:00수정 2004.11.0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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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6일, 목포 북항에서 아침 7시 20분 배를 탔다. 여객실에 앉아서 1시간 여를 졸다 보니 암태의 남강항에 도착했다. 신안의 다른 포구에 비해 주위에 상가도 없이 쓸쓸했다. 암태면 소재지까지 들어가는데 바닷가를 따라 너른 잡초지가 펼쳐지며 억새와 갈대만이 가을 찬바람에 시달리는 삭막한 풍경이 눈에 들어 왔다.

해는 빛을 잃었다. 갈대들과 억새들이 바닷바람에 한없이 고개를 조아리고 있다. 시퍼런 물결이 이는 길가의 호수가 이 가을을 더욱 을씨년스럽게 했다. 마음에는 한없이 외로움이 젖어 들었다. 나만 이렇게 가을을 타는 것일까. 옆에 있는 동료들에 가을을 타느냐고 물었더니 자신들도 가을을 탄단다. 가을은 이렇게 모든 이들을 숙연하게 하나 보다.


시베리아 연해주처럼 낯선, 암태도

암태도. 처음 들어오는 섬이다. 어찌나 풍경이 낯설던지 마치 저 북쪽 시베리아 연해주의 한 도시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암태도의 산들은 대부분 돌산이었다. 이처럼 바위가 밖으로 돌출되어 '암태'라고 한단다. 바로 인근의 섬이지만 자은도는 달랐다. 자은도에는 돌들이 숨어 있었다.

암태면에는 신안군의 섬 중에서도 염전이 별로 없었는 편에 속한다. 예전에는 땅콩을 많이 했고 지금은 대파를 많이 심는다고 한다. 암태, 자은도에는 고인돌이 많이 있다. 선사시대부터 이곳에 사람들이 살았다는 것이다.

오후에 우리는 암태도에서 자은도로 넘어 왔다. 암태도와 자은도를 잇는 다리는 하늘에 붕 떠 있는 하얀 무지개 같았다. 밤에 그 다리 위에 보름달이 걸쳐 있는 풍경은 너무 아름다웠다. 이 다리 이름이 자은, 암태를 딴 '자암교'라고 한단다.

섬으로 이루어진 신안군에는 섬을 잇는 다리가 네 개 있다. 비금과 도초를 잇는 다리, 팔금과 안좌를 잇는 다리, 자은과 암태를 잇는 다리, 아직 완공은 안 되었지만 팔금과 암태를 잇는 다리가 있다. 다리 이름을 짓는 데 비금과 도초간의 다리는 비금 사람들은 비도교, 도초 사람들은 도비교로 하자고 주장을 해서 결국은 섬 이름과 관계없는 '서남문대교'로 했다. 안좌와 팔금도 마찬가지다. 안팔교, 팔안교로 주장을 펴다 보니 결국 '신안 제1교'로 명명했다고 한다.


암태도의 남강항에 가서 팔금도와 암태도를 잇는 다리를 구경했다. 다리는 다 이어졌는데 암태 쪽에 마무리 공사가 덜 되어 있었다. 이제 이 공사가 마무리 된다면 명실 공히 팔금·안좌·암태·자은 네개 섬이 하나의 큰 경제권을 형성하게 된다.

암태도와 소작농 투쟁, 그리고 서태석

a 암태 소작농 투쟁사건 기념비

암태 소작농 투쟁사건 기념비 ⓒ 조갑환

'암태도'라고 하면 1924년 일제 강점기에 일어난, 지주 계급에 대항한 소작인들의 투쟁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당시 일본 정부가 저미가 정책을 쓰자 이에 지주 계급은 소작인들에게 소작료 인상을 요구했다. 이에 대항하여 소작인들은 투쟁했고 일본 정부는 지주 계급을 옹호했다. 소작인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목포까지 나가서 일본 정부와 싸워 결국 이겼다.

10월 27일. 암태·자은도에서의 2일째. 암태 소작농 투쟁사건의 기념비가 두 곳에 있다기에 기념비를 보기 위해 갔다. 최근에야 세웠다는 기념비는 암태면 소재지에 있었다. 소작농 사건 개요가 새겨져 있고 암태 소작인 투쟁의 주동자였던 서태석 외 농민들의 이름이 있었다. 서태석의 묘에 또 하나의 기념비가 있다기에 그곳으로 갔다.

서태석은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였다. 청년 시절에는 한의학을 공부해서 일대에서 한의사로 명성을 날렸으며 8년간 암태면장으로 봉직하기도 했다고 한다. 1910년 이후는 조국의 식민 통치를 눈으로 보면서 독립 운동을 하게 되었으며 3·1운동 1주기를 맞아 목포에서 관련 유인물을 돌리다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그렇게 국내외로 활동하면서 사회주의 사상을 접했다고 한다.

a 들에 피어난 야생화

들에 피어난 야생화 ⓒ 조갑환

그는 고향인 암태도에 돌아와서 소작인회를 결성하고, 주민들에게 독립과 민족 사상을 가르치다가 유명한 암태도 소작쟁의를 일으켰다. 이는 단순한 소작인들의 소작료 인상만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의 연장선상으로 평가 받고 있다. 하지만 서태석은 그후 무척 불행했다. 일제의 감시가 심해지고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병까지 겹쳐서 거렁뱅이로 살다가 1943년 동생이 살고 있는 압해도의 어느 들녘에서 벼 포기를 움켜쥔 채 죽어갔다고 한다.

서태석이 독립 운동을 하면서 사회주의 운동을 한 경력 때문에 그 후손들은 연좌제에 묶여 어떤 일도 할 수 없었고 지금은 뿔뿔이 흩어져 어디 사는지도 모른다고 한다. 반면 당시 지주들의 후손들은 아직도 상류 계층을 형성하며 떵떵거리고 살고 있다고 한다. 뚜렷한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요령 없는 우둔함을 말하는 것만 같아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1981년에야 세웠다는 기념비는 서태석의 묘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묘지가 많고 비석에 서씨들의 이름이 새겨진 걸로 보아 서씨 집안의 문중산인 것 같았다. 비는 아담하게 서 있었다. 비 주변에 빨간 구절초들이 80년 전의 사건을 아는지 모르는지 쓸쓸하게 피어 있었다.

a

ⓒ 조갑환

서태석의 비 앞으로는 암태에서 제일 넓다는 해당리 들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소작인들은 저 해당리 들판을 임차해 죽어라고 노동한 대가를 지주에게 높은 소작료로 바치면서 항상 가난하게 살았던 것이다.

밤에는 자은도로 넘어 와서 대흥장이라는 여관에 들었다. 오늘은 여관 앞에 웬 찐빵 포장마차가 있다. 포장마차라기보다는 집 대문 앞에 50대 초반의 남녀가 작은 포장을 치고 좌판에 도넛과 찐빵을 차려 놓았다.

나는 그분들이 이 곳 자은도 분들이려니, 농한기를 이용해서 저런 장사를 하는가 보다 생각했다. 그래서 남자분에게 말을 걸었다.

"어데서 오셨어요?"
"정읍입니다."

깜짝 놀랐다. 이곳 자은면의 동네 이름이 나올 줄 알고 물었는데 전혀 뜻밖의 지명인 전라북도 정읍이 나온 것이다. 그래서 빵 1000원어치를 사면서 어떤 연유로 이곳 자은도까지 왔냐고 물었다.

전국을 떠도는 빵장사, 영호남 부부

그들은 유랑극단처럼 떠돌아다니면서 빵 장사를 한단다. 울릉도, 완도, 진도의 섬들은 가보지 않은 곳이 없단다. 이곳 섬에서 무슨 돈을 벌겠냐고 도시에서 장사를 해야 돈이 벌리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도시라고 해서 꼭 돈이 잘 벌리는 건 아니란다. 그리고는 아주머니가 한마디 했다.

"천지인 삼합이 맞아야 돈이 벌려라."

옆에 있던 아저씨가 또 말을 거들었다.

"돈 벌려고 생각 않지요. 여행이라고 생각하며 못 벌면 못 버는 대로, 잘 벌리면 잘 벌리는 대로 자족하며 살지요."

a “천지인 삼합이 맞아야 돈이 벌려라.”

“천지인 삼합이 맞아야 돈이 벌려라.” ⓒ 조갑환

아저씨 말투가 경상도 말투였다. 고향을 물었더니 아저씨는 부산이고 아주머니는 전주여서 처가 동네인 전라북도 정읍에서 산다고 했다. 영호남 부부가 만나 전국을 누비면서 장사를 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가슴 가득이 훈훈한 봄바람 같은 것이 스며들었다.

그래서 사진 한컷 찍자고 부탁했다. 아저씨는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 데 아주머니가 의심의 눈초리로 "어데 쓸라고 그라요?"하면서 영 내키지 않는 표정이다. 잠은 어디서 자느냐고 물었더니 차에서 자기도 하고 민박을 하기도 한단다. 여관에 들어오며 카운터의 주인에게 빵을 하나 주었다. 주인이 빙그레 웃으면서 한마디 했다.

"저분들, 차에서 잔다고 하기에 여관에 방 빈 게 있으니 그냥 와서 주무시라고 했네요."

이렇게 섬에는 아름다운 인심이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빵장수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부부애, 여관 주인의 따스한 인심으로 가슴이 따뜻해졌다.

뭍으로의 꿈을 담고 배는 달린다

10월 30일 토요일에 암태·자은도를 나왔다. 암태의 남강항에서 오후 4시 20분 배를 탔다. 암태에서 목포로 나가는 막배여서인지 포구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암태 사람들이 목포로 나가는 통로는 이곳 한곳뿐이어서 모두 이곳에서 만날 수밖에 없다. 배를 기다리면서 무슨 행사를 하러 모인 사람들처럼 서로들 인사하고 애기를 나누고 즐거워했다.

배의 여객 선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무슨 축제의 뒤풀이 행사로 사교 모임을 하는 것 같았다. 둘레둘레 앉아서 화투치는 사람, 얘기하는 사람, 술 마시는 사람 등. 혼자 있는 사람 없이 다들 무리를 지어서 앉아 있다. 아가씨 한분이 화투판 구경을 하더니 개평을 뜯었는지 음료수를 사가지고 이쪽 저쪽 얘기 판으로 돌린다. 배 안은 왁자지껄하면서 흥겨움이 있는 축제판 같다.

서울의 지하철을 타면 전부 엄숙한 얼굴들이다. 말 붙이기도 어려운 살벌한 풍경들이다. 그러나 암태에서 목포행 배는 이와는 대조적이었다. 누구나 같이 앉아서 흥겨워 놀이하고 얘기한다. 이러한 배 안의 풍경이 목포까지 1시간 20분여를 지루하지 않게 한다. 배는 섬사람들의 고독과 애환을 싣고 뭍으로의 꿈을 향해 달리는 섬사람들의 발이요, 놀이마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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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행에 관한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여행싸이트에 글을 올리고 싶어 기자회원이 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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