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 콩과 농약 친 콩을 바꾸자고요?

속 앓이를 하다가 그냥 드리기로 했다

등록 2004.11.08 08:08수정 2007.06.15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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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집 할아버지가 와서 콩을 꼭 한 말만 바꾸자고 하셨을 때 많지도 않은 양이지만 나는 선뜻 대답을 못하고 어물거렸는데 할아버지는 그렇게 알겠다면서 가셨다. 그런데 오늘 다시 오셨다. 콩 다 골랐으면 바꾸자는 것이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나더러 어쩌란 말인가.


근 보름 동안 콩 고르느라 무진 애를 먹었다. 애를 먹었기로 내가 난감해 하는 건 아니다. 우리 콩이 많이 열리고 때깔이 좋다는 게 콩을 바꾸자는 할아버지 이유인데 내 고민은 다른 데 있었다.

할아버지가 콩밭에 농약을 뿌릴 때 나는 숨이 막히는 여름 땡볕 아래서 밭에다 땀을 뿌렸다. 할아버지가 큰 밭뙈기에 콩을 심어 일을 쉽게 할 때 나는 콩과 옥수수를 섞어 심고 가꾸느라 몇 배는 더 힘을 들였다. 할아버지가 당신 콩밭을 그냥 지나칠 때 제초제를 쓰지 않은 나는 세 번이나 밭을 맸다.

근 10년 동안 직접 씨앗을 받아 우리 땅에 딱 맞게 콩을 만들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키운 내 콩을 할아버지 농약 콩이랑 그냥 바꾸자고 하니 내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물거릴 수밖에.

도리깨로 타작을 다 끝내니 콩이 두 가마니가 조금 넘어보였다. 이때부터 콩 고르기 작업이 시작되었다. 거친 콩깍지나 잡초는 갈고리로 몇 번에 걸쳐 걷어냈지만 흙이나 콩 싸라기는 얼기미로 일일이 다 걸러내야 했다.

그 다음 일거리가 제일 오래 걸리고 힘든 과정이다. 방바닥에 신문을 깔고 콩을 한 바가지씩 퍼다 펼치고는 덜 익은 콩이나 잔 돌을 가려내는 것이다. 쥐 잡듯이 허리를 꺾고 삼팔선 긋듯이 이쪽저쪽으로 콩을 나누어내는 일이 여러 날 걸렸다.


할아버지 앞에서 내가 얼핏 생각 해 낸 것이 고작 한말은 안 되고 반에 반말만 바꾸자는 것이었다. 그것도 할아버지 콩이랑 바꾸지 말고 내가 심지 않았던 생강이랑 바꾸자고 제안했다.

할아버지는 노발대발 했다. 콩이 아직 밭에 있을 때부터 부탁했던 건데 딴 소리 하냐는 것이었다. 아래윗집에서 그걸 못주고 먼데 있는 딴 사람 주겠다는 것이냐고도 하셨다. 그리고 생강은 밭뙈기 채 다 팔고 하나도 없다고 했다.

시골에서 서로 곡식을 바꾸어 먹기도 하고 또 바꾸지 않더라도 조금씩 나눠 먹는 것은 흔한 일이다. 더구나 씨앗을 하겠다고 좀 바꾸자는데 그걸 마다하면 사람도 아니다.


일대일로 콩을 바꾸자니 내 땀과 노력이 아깝다는 것이 아니다. 유기농 콩의 진가를 알아주시기라도 한다면 여한이 없겠는데, 할아버지도 내 밭에 나는 풀을 볼 때마다 저주할 것이 아니라 농약을 그만치고 농사도 좀 줄였으면 좋으련만.

그래서 나는 콩을 반말만 거저 주기로 했다. 할아버지가 좋은 콩을 잘 키우시길 빈다. 내년부터 농약을 뒤집어 쓸 내 콩 자식이 여전히 안타까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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