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이 '노동자'를 해고시킨 까닭

[특별기획 - 농협, 무엇이 문제인가 ①] 교하농협 사태의 교훈

등록 2004.11.08 14:55수정 2004.11.09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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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민정부 이후 10여 년 동안 표류해 온 농업협동중앙회(농협)에 대한 개혁이 급물살을 타고 있습니다. 정부는 지난 7월 농협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하는 이른바 '농협개혁안'을 국회에 제출해 놓은 상태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세 차례에 걸쳐 농협 개혁을 위한 핵심과 문제점, 대안 등을 집중 점검할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a 서울 서대문에 위치한 농협중앙회 건물.

서울 서대문에 위치한 농협중앙회 건물. ⓒ 오마이뉴스 남소연


지난달 18일 농협중앙회에 대한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가 열린 서울 서대문구 농협중앙회 건물 앞에서는 작은 소란이 일었다. 올해초 조합 해산이 결정된 파주 교하농협 직원과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이날 국감에 맞춰 '고용 승계'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인 것. 이들은 교하농협의 해산 결정이 사실상 위장폐업이라며, 새로 출범할 조합에서도 자신들이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대로 교하농협의 위장폐업(자진 해산) 때문에 자신들이 직장을 잃었다면, 반대쪽에는 이들을 해고한 고용주가 있다. 잘 알려지다시피 지역농협의 주인은 조합원인 농민들이다. 그렇다면 교하농협 사태는 '농민'이 '노동자'를 해고시켜 버린 전무후무한 사건이 되는 셈이다.

왜, 무엇 때문에, 사회적 약자인 '농민'이 또다른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를 해고시켜버린 것일까? 조합원인 농민들과 노동자인 농협직원들간 갈등이 벌어진 교하농협 사태를 들여다보면, 최근 왜 다시 농협 개혁의 바람이 거세지고 있는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a 이달 새로 출범한 파주 신교하농협은 '개혁'을 놓고 농민들과 직원들간의 갈등이 일었다. 결국 주인인 농민들이 직원들을 내쫓는 결과가 발생했다. 지난 달 18일 농협중앙회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교하농협 직원들.

이달 새로 출범한 파주 신교하농협은 '개혁'을 놓고 농민들과 직원들간의 갈등이 일었다. 결국 주인인 농민들이 직원들을 내쫓는 결과가 발생했다. 지난 달 18일 농협중앙회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교하농협 직원들. ⓒ 오마이뉴스 김영균

교하농협 사태의 원인은 무엇보다 농협의 '방만한 경영과 고임금'에 있었다. 교하농협은 지난해 8월 총기 강도사건이 발생한 이래 올해 초에는 내부 직원에 의한 횡령 사건도 일어났다. 여기에 적자를 면치 못하는 경제사업과 직원들의 터무니없는 고임금이 조합원들의 거센 불만을 사게 됐다.

교하농협의 경우, 지난해 조합장의 인건비(급여 및 복리후생비)가 무려 1억1520만원에 달했다. 또 전무는 1억1434만원, 상무와 지점장은 1억644만원 등을 받았다. 어려운 농가와는 반대로 이들은 억대 연봉을 받아온 것이다.

사태가 이쯤되자 조합원들은 고임금을 하향 조정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농협직원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합원인 농민들이 자진해서 농협을 해산하고 직원들을 내쫓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교하농협 사태는 조합 자진해산 뒤 조합장을 명예직으로 하는 등 개혁 정관을 채택하고 '신교하농협'으로 재출범하면서 마무리됐다.


교하농협 사태를 통해 본 농협의 모순

하지만 전국에 퍼져 있는 1337개 단위조합의 현실도 교하농협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말하자면 교하농협과 같은 사태가 언제든지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지난 10월 18일 조일현 열린우리당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1337개 단위조합 중 조합장의 연봉과 업무추진비가 1억이 넘는 조합은 246개에 달했다. 단위조합 직원 연봉도 최근 2년 동안 1급은 1400만원, 2급은 1000만원씩 인상됐다.

2003년도 단위조합장 연봉 상위 10

순위

시도

시군

조합명

조합장 연봉

1

대구

대구

서대구

118

2

경기

구리

구리

108

3

대전

대전

남대전

104

4

부산

부산

사상

104

5

대전

대전

서대전

103

6

경기

성남

성남농협

102

7

서울

서울

서울북부

102

8

부산

부산

금정

102

9

경남

거제

신현

101

10

서울

서울

강동

100

(단위:백만원)
ⓒ 김영균
농협중앙회도 현실은 마찬가지다. 정대근 중앙회장의 경우, 연봉과 성과급, 경영수당 등을 포함해 2003년 한해에만 6억3500만원을 받았다. 같은 기간 3명의 대표(신용, 농경, 축산)도 많게는 3억원, 적게는 2억3000만원 가량의 보수를 수령했다.

이처럼 중앙과 단위조합 직원들의 임금이 인상된 반면, 같은 기간 일부 농민들은 억대에 달하는 부채 때문에 목숨을 끊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3월 경북 봉화군에서 발생한 박모(당시 51세)씨의 자살은 농촌 사회에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딸기와 수박 농사를 짓던 박씨는 문민정부 시절 '신한국인'으로 지정돼 대통령상을 수상했고, 이후 97년에는 새농민상, 과학영농부문 농림부장관상 등 농업 관련 주요 상들을 독차지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2003년 초봄, 박씨는 식구들이 나간 사이 농가부채를 비관하며 집안에서 농약을 마셨고 병원으로 옮긴지 8시간만에 숨졌다. 당시 박씨가 지고 있던 빚은 도합 2억8000여만원. 박씨의 죽음은 전국적으로 주목받은 '성공한 농민'조차 억대에 이르는 농가부채를 감당하기 힘들었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줬다.

교하농협 사태에서 보듯, 농협직원들에 대한 농민들의 불만이 터져나오는 것도 이처럼 '주인'보다 '머슴'이 더 잘사는 모순된 구조 때문이다. 2004년 현재, 전국 평균 농가부채는 가구당 2160만원에 달하고 있다.

조합장은 '억대 연봉', 농민은 '억대 빚'

고임금에 이어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도 농협의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2003년 금융권 전체 금융사고 496건(1639억원) 중 농협중앙회에서만 발생한 사건이 34건(284억8600만원)이었다. 농협중앙회만 놓고 봐도 은행권내 사고 발생 1위다.

여기에 단위조합에서 발생한 금융사고 49건(178억5600만원)을 합치면, 농협은 전체 금융권에서 금융사고 발생율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특히 농협 전체 사고발생 건수 83건 중 횡령이나 유용에 의한 사고가 절반 이상(48건, 463억원)에 이르러 농협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수준임을 드러냈다.

이처럼 직원들은 고임금과 횡령·유용 등으로 배를 불려가면서도 농민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극히 미미한게 농협의 현주소다. 올해 국감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1300여개에 이르는 전체 단위조합 중 경영실적 부진을 이유로 조합원들에게 배당하지 않은 '무배당 조합'이 94개에 달했다. 또 하다못해 조합원 전체 배당 금액이 조합장 연봉보다 적은 조합이 380개(무배당 조합 포함)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농협직원들의 고임금 문제나 도덕적 해이 등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61년 농협은행과 구 농협이 통합돼 종합농협으로 발족된 후 40여년간, 같은 문제는 지속적으로 반복돼왔다.

40년 묵은 고질... 농협 직원이 은행 직원인가

그렇다면 이토록 오래된 문제가 왜 아직까지 풀리지 않고 있을까? 그 원인은 종합농협의 조직적·구조적인 문제도 있지만, 전문가와 관계자들은 '그릇된 인식의 차이'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전농의 한 관계자는 "농협 직원들이 스스로를 농민들과 함께 커나갈 협동조합의 직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게 가장 큰 문제"라며 "농협 직원들이 스스로를 그냥 월급 많은 직장에서 일하는 은행원으로 인식하고 있는 이상 문제는 풀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농 관계자의 말처럼, 농협 직원들의 임금이 지나치게 높다거나 횡령 등 금융사고가 많다는 지적이 있으면 당장 농협 내부에서부터 반발이 거세다. 농협 직원들의 논리는 월급도 시중 은행의 60∼70% 수준 밖에 되지 않고, 그에 따른 복리후생도 타 은행에 비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또 전국 각지에 걸친 조직이 나름대로의 자율성을 가지고 사업을 하는 만큼 규모에 비해 금융사고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들의 항변이다. 농협의 한 관계자는 "농협 직원들도 봉급생활자인데, 더 좋은 직장에서 더 많은 월급 받고 살고싶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이같은 논리가 성립하려면 협동조합의 주인인 농민들과 직원들의 생활이 어느 정도라도 형평성에 맞아야 한다. 농협 직원들이 사실상 한 가족인 조합원과 직원들간의 '엄청난 격차'에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다른 직장의 풍족한 생활만을 바라본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황민영 협동조합연구소 이사장은 "농협 직원들이 스스로를 은행원이라고 생각하면 아무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며 "직원들이 인식을 바꿔 협동조합 활동가로서 신용사업보다 지도사업과 경제사업에 더 치중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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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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