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국장, 좋은 성분 다 모인 ‘보신 백화점’

햇콩으로 만든 청국장을 휴대용으로 말리다.

등록 2004.11.11 07:42수정 2004.11.11 14:14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청국장을 대 바구니에 짚을 깔고 아랫목에서 띄웠다.
청국장을 대 바구니에 짚을 깔고 아랫목에서 띄웠다.전희식
드디어 청국장을 다 만들었다. 군불을 바짝 때고서 콩을 푹 삶아 아랫목에 묻어둔 지 사흘 만에 뜨기 시작하더니 이틀쯤 더 아랫목에서 나무주걱으로 뒤집어 주니 완벽하게 청국장이 되었다. 청국장이 뜨면서 솔솔 나는 약간 역겨운 냄새는 내 코에 친숙해져서 아무렇지도 않았다. 더구나 이 냄새가 청국장을 청국장이게 하는 핵심인데 싫을 리가 있겠는가.


다른 해와 달리 올해는 이 청국장을 바짝 말렸다. 대 바구니에 깔았던 짚을 하나씩 떼어내고 삼베 보에 널어 깨끗하게 말려 병에 넣었다. 제법 큰 병에 세 병이 나왔다. 이제 손쉽게 가지고 다니면서 틈틈이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올 햇콩이 워낙 충실했고 청국장 만드는 일도 해를 거듭할수록 익숙해져서 말린 청국장을 몇 톨씩 한 입에 털어 넣고 꼭꼭 씹으니 고소한 맛이 아주 그만이다.

두고두고 청국장을 만들 콩은 마루에 엄청 쌓여 있다. 두어 가마는 팔려고 내 홈페이지에 내 놨다.

도리깨 콩 타작도 힘들었지만 풀씨나 흙을 체로 걸러낸 다음 밥상위에 콩을 좍 깔고 음악을 듣거나 티브이 보면서 구부려 잡티 가려 내느라 허리가 아팠다.
도리깨 콩 타작도 힘들었지만 풀씨나 흙을 체로 걸러낸 다음 밥상위에 콩을 좍 깔고 음악을 듣거나 티브이 보면서 구부려 잡티 가려 내느라 허리가 아팠다.전희식
특별히 올해 서둘러서 청국장을 만들고 더구나 말려서 먹기로 한 것은 지난달 티브이뉴스에서 청국장이 홍삼보다도 더 좋다는 이야기를 해서였다. 무심코 티브이를 보는데 진행자가 그러는 게 아닌가. 그 비싼 홍삼보다도 청국장이 더 좋다니 나는 귀가 번쩍 뜨였다.

아는 사람이 권해서 홍삼엑기스를 물에 타서 먹은 적이 있는데 박카스 병 꼭 반 만 한 홍삼엑기스 한 병이 3만4000원이나 한다는 것이었다.

그 뉴스를 듣기 전에도 청국장이 몸에 좋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홍삼보다도 좋다는 말에 당장 올해 청국장을 산더미로 만들어야지 싶었던 것이다. 몸도 예전 같지 않고 쉬 피로해지는데다 다들 성인병, 성인병 하니 그 예방에 특효라는 청국장을 1년 내내 먹어보자 싶었던 것이다.


올해로 꼭 10년을 유기농으로 농사를 지은 땅에서 콩이 큰 풍년을 맞고 있었다. 마침 우리 집에서 ‘길동무’ 보따리학교 가을학기를 했기 때문에 아이들이 여러 명 와서 농사체험 중이었다. 그때 도리깨로 콩 타작을 다 했다.

콩 타작 하면서 옛날에 곰보를 보면 ‘너 콩밭에서 엎어졌구나.’라고 놀렸다고 했더니 이 아이들이 곰보가 뭐냐고 되물었다. 천연두가 이제는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졌으니 모를 수밖에.


그래서 나는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라든가 ‘나뭇가지에 앉아 있어도 비둘기 마음은 콩 밭이다’라는 속담들을 가지고 애들이랑 놀았었다. 애들이 그 정도는 다 알고 있기에 ‘벼락에 콩 구워먹기’가 뭔지 아느냐고 했더니 아무도 몰랐다. 신이 난 나는 콩과 관련된 속담이란 속담을 다 동원했다.

잘 말려 병에 넣은 청국장
잘 말려 병에 넣은 청국장전희식
‘볶은 콩에서 싹 날 줄 아느냐’도 몰랐고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안 믿는다’라는 속담은 아는 놈도 있고 모르는 놈도 있었다. ‘콩을 팥이라 해도 믿는다’는 속담을 소개하면서는 사람에게 신용이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을 하기도 했다.

청국장이 청나라에서 유래했나 싶어서 인터넷을 찾아 봤더니 그게 아니고 고구려 때부터 먹었다는 기록이 나왔다. 한자말도 청국(淸國)장이 아니라 청국장(淸麴醬)이었다. 푸른색 누룩으로 된 장이라는 뜻이다.

원래 찌개용 청국장은 삶은 콩을 아랫목에서 띄운 다음에 절구에서 소금이나 고춧가루를 넣고 살짝 찧어서 보관하는데 나는 가져 다니면서 먹으려고 찧지도 않았고 아무것도 안 넣고 그냥 말렸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농(農)을 중심으로 연결과 회복의 삶을 꾸립니다. 생태영성의 길로 나아갑니다. '마음치유농장'을 일굽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2. 2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3. 3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4. 4 이런 곳에 '공항'이라니... 주민들이 경고하는 까닭 이런 곳에 '공항'이라니... 주민들이 경고하는 까닭
  5. 5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