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여기가 안양의 관악산이란 말인가!

건강과 화합을 위한 안양시민 등반대회

등록 2004.11.11 20:34수정 2004.11.12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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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등반에 나선 시민들

등반에 나선 시민들 ⓒ 김재경

선들선들 가을바람에 억새꽃 물결이 장관을 이룬 학의천 징검다리를 건너서 ‘제 18회 안양시민 등반대회’집결 장소로 향했다. 10월 30일 오후 2시, 안양종합운동장 보조구장은 미리 온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건강 증진과 시민 화합을 위한 간단한 기념식에 이어 등산코스는 종합운동장을 출발해서 삼림욕장-불성사-서울농대수목원-안양유원지까지 두세 시간 정도 소요될 거라는 안내방송이 흘러 나왔다.

a 산에 오르는 시민들

산에 오르는 시민들 ⓒ 김재경

동별로 질서정연하게 가족이나 이웃끼리 오순도순 정담을 나누며 걷는 모습은 정겨웠다. 엄마 따라 박달동에서 왔다는 7살 민영이는 “정상까지 올라가고 말 거예요.” 다부진 각오로 엄마 손을 꼭 잡는다. 평촌동에서 온 중년 아주머니들은 “불성사에 들려 부처님께 절이라도 하려면 어서 서둘러야지”라며 종종 걸음을 재촉한다.

도로변에는 샛노란 은행잎이 눈송이처럼 휘날리며 시민들을 환호한다. 시민들의 배낭과 등산복은 곱디고운 단풍처럼 울긋불긋했고, 길게 이어진 행렬은 개미 군단처럼 끝이 보이지 않았다.

찬 서리에 허옇게 말라버린 호박잎 사이로 코스모스 한들거리는 들녘에는 검푸른 배추포기가 탐스러웠다. 밭고랑마다 수북이 누운 고추 대는 농촌의 정취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안양농협 과천시지부는 관악산 입구에서 사과와 생수를 시민들에게 나누어주고 있었다. 긴 행렬이 잠시 정체되는 듯 했지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과와 생수를 받아들고 묵묵히 걸었다.


소나무 숲을 지나 하얀 들국화가 유혹하는 약수터에서 목을 축이고 정자에 걸터앉았다. “어이구 더는 못 가. 우리는 여기가 종착역이야.”라는 할머니들 틈에서 사과 한 입을 덥석 베어 물었다. 금세 상큼한 사과 향이 입 안 가득 퍼진다.

a 조심조심하세요

조심조심하세요 ⓒ 김재경

백발이 성성한 이수현 할아버지는 젊은이 못지않은 총총 걸음이다.
"건강을 위해서라면 죽기 살기로 걷는 거지 뭐. 한 달에 스무 닷새는 관악산과 삼성산을 걸어”라며 노익장을 과시하듯 빠르게 지나간다.


앞서 가던 중년 아주머니는 "봄이면 여기가 온통 꽃밭이야. 또 공기는 얼마나 좋다고, 천국이 따로 없어”라며 지난봄의 정취를 아쉬워했다. 말라버린 수세미가 매달린 터널이 보이고, 맨드라미. 미역취. 산수국. 옥잠화…. 팻말로 보아 여기가 자연 학습장인 듯했다.

금방이라도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드높은 하늘, 화창한 날씨 때문인지 상의를 벗어 들고 걷는 시민들의 모습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맨발로 걷는 길'이 보이고 울창한 소나무 군락지는 삼림욕장이었다.

부림동 한가람 단지에서 왔다는 디스크 환자는“허리가 뽀샤지는 것 같아요”라며 ‘사색의 쉼터로’ 발길을 돌린다. 더러는 음이온이 많이 나온다며 소나무 숲으로 발길을 옮기는 이도 있고, 하산하는 이도 있었다.

칡넝쿨 휘감은 나무처럼 가파른 산비탈을 아빠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의젓하게 걷는 꼬마가 있었다.
"아가야 힘들지." 말이 없다.
곁에 있던 엄마가 "아기들은 몸이 가벼워서 더 잘 올라가요. 오늘은 정상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는 세상의 묘미를 가르쳐 주고 싶어서 아빠랑 함께 왔어요"라며 꿈에 부풀어 있었다.

취재가 아니면 도중하차할 정도로 숨이 차올랐다. 빗물처럼 온 몸으로 땀이 흘러 내렸다. 헉헉 거친 숨 몰아쉬며 걷는 모습을 보고 “힘드시죠”서로 안부를 물으며 격려하는 모습은 이미 너와 내가 아닌 우리는 동지였다.

"건강을 위해서라면 기어서라도 올라가야지. 힘들면 여기 줄잡고 올라와요"라고 말하는 할머니의 굽은 등허리는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먼저 오른 팀은 힘겨워하는 필자와 노인을 향해 "아자, 아자, 파이팅!"을 외치며 정겹게 손을 잡아 주었다.

안영시 호계3동 김옥임씨는 "관악산은 말 그대로 악산이지요. 가면 갈수록 돌과 바위가 많아 험해요"라고 말했다. 난감해 하자 "뭘 그걸 가지고 그러세요.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히말라야를 정복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건 등반도 아니죠"라며 기꺼이 동반자가 되길 자청했다.

헉헉대며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갈림길에서 낙담하고 있었다. 천 길 낭떠러지의 위험을 모르는지 바위와 바위 사이 계곡을 곡예하듯 폴짝폴짝 뛰는 아이들이 있었다. "어이구 얘들아, 여기서 떨어지면 큰일난다"는 어른들의 만류에도 그저, 신명나는 아이들이다.

아이의 운동화는 벗겨지지 않게 끈으로 칭칭 감겨져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발 치수보다 손가락 마디 하나 정도 큰 신발이 벗겨질세라 칡넝쿨로 질끈 동여맸던 추억이 생각나서 피식 웃어보았다.

국기봉과 전망대 갈림길에 안내원이 배치되어 있었다. "저기만 넘으면 내려가는 길이 지그재그라서 힘들지 않아요"란 말에 새 힘을 얻었다.

성황당 같은 돌무덤이 보일 때마다 김옥임씨는 "여사님 잘 되시고, 우리 가족 만사형통하고, 우리 안양시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서…"라며 차례로 돌 3개를 얹어 놓았다.

이름 모를 열매들이 탐스럽고 억새꽃이 손짓하는, 가을 산의 활활 타오르는 단풍은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아름다운 정경을 카메라에 담으며 소나무 아래서 단감을 돌돌 깎고 있는 팀을 만났다. 막걸리를 나누던 그들은 동반자인 김옥임씨의 동지들이었다.

호계3동 새마을 회장인 남편과 부인이 정성껏 준비해 온 맛깔스러워 보이는 파김치와 알타리 김치를 얹은 잡곡밥 한술은 꿀맛이었다. 김치 특유의 감칠맛이 자꾸만 입맛을 다시게 한다.

a 돌무덤을 쌓는 김옥임씨

돌무덤을 쌓는 김옥임씨 ⓒ 김재경

동지를 만난 김옥임씨가 "오지 않으려다가 쉬는 날이라서 내복까지 입고 왔어요"라는 말에 모두 까르르 웃는다. "잘 오셨어요. 혼자라면 엄두도 안 나지만, 일상에서 벗어나서 이렇게 바람도 씌고 얼마나 좋아요" 서로가 격려하며 다독이는 다정한 이웃들이다.

"이젠 막걸리 통을 비웠으니 배낭이 훨씬 가벼워지겠는걸. 커피는 국기봉에 가서 마시자고…"라며 쓰레기를 주섬주섬 비닐 봉투에 담고 페트병을 납작하게 밟아서 배낭에 넣는다.

a 덩굴터널을 걷는 시민들

덩굴터널을 걷는 시민들 ⓒ 김재경

덩굴터널을 지나자 "깔딱 고개가 아니라, 행사코스는 여깁니다." 안내원이 갈림길에 서 있었다.
"얼마나 더 가야 하죠."
"그 걸음이라면 두어 시간은 족히 걸릴 겁니다."
떡 버티고 서 있는 집채만 한 바위덩이를 보며 털썩 주저 않고 싶어졌다.

그때, 헐레벌떡 뛰어 내려오며 "저기요. 키 작고 마른 아이 못 보셨어요. 박달동에서 엄마 대신 데려왔는데…"라며 허둥대는 부녀회원들을 만났다. 만나면 연락해 주겠다며 핸드폰 번호를 적었다.

건조한 날씨 때문인지 낙엽을 밟을 때마다 뿌연 먼지가 피어오른다. 수북이 쌓인 낙엽에 미끄러지며 잡게 된 나무 밑동마다 사람의 손길로 윤기가 반들반들 했다. 바위틈에 빼곡히 모습을 드러낸 새빨갛게 물든 담쟁이 넝쿨에 매료되어서 단풍잎 두 개를 땄다.

늙수레한 아저씨가 지나가며 "여러 사람들이 보게 그냥 두세요. 옛날 연애시절에는 단풍잎을 책갈피에 눌러 두었다가 편지에 담아 보내 주던 소녀가 있었는데…"라며 구성지게 부르는 옛 노래는 지친 심신에 청량제가 되었다.

우리는 "그 노랫소리에 떠나간 임이 다시 돌아오겠어요"라며 찬사를 보냈다. 아저씨는 넙적 바위에 앉아서 막걸리 병을 열었다. 샴페인처럼 품어져 나오는 막걸리를 보며 "으메~ 아이구 아까운 거. 관악산 신령님께 고수레 한 번 잘했네." 텁텁한 막걸리에 이끌리어 지나던 행인들까지 모여 들었다.

몸에 좋다며 토마토 주스를 따라주던 아주머니는 병 주둥이까지 날름날름 혀로 핥는다. 느릅나무와 헛개나무, 대추랑 생강을 넣고 달였다는 보온병의 따끈한 차를 홀짝홀짝 마시며 후덕한 산사람들의 인심을 느껴 보았다.

"내년 가을에 인덕원에서 백운 호수까지 코스모스가 만개하거들랑 내가 씨 뿌린 줄 아슈." 너털웃음을 웃는 아저씨를 뒤로 하고, 우리는 국기봉 깃대라도 만지겠다며 다시 암벽을 올랐다.

a 정상의 국기봉

정상의 국기봉 ⓒ 김재경

"으메~ 환장 허것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단풍은 온 산야를 활활 불태우는 한 폭의 동양화였다. 단풍과 어우러진 붉은 저녁노을을 보며 "진정, 여기가 안양의 관악산이란 말인가!" 저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사방에서 "야호! 야호!" 외치는 함성 따라 메아리가 화답한다.

태극기가 펄럭이는 국기봉에 서니 으스스 한기가 느껴졌다 "건강하세요"라고 쓰인 글귀를 읽으며 "제가 선견지명이 있어서 내복을 입고 왔나봐요"라며 김옥임씨가 배시시 웃었다.

a 관악산에서 본 석양

관악산에서 본 석양 ⓒ 김재경

"산 속에서는 어둠이 빨리 온대요"란 주변 사람들의 말에 우리는 행사 코스를 포기하고 하산을 서둘렀다. 낙엽에 미끄러지며 길옆으로 바윗돌을 붙잡고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는데, 인덕원 아저씨는 휙휙 날다람쥐처럼 날렵했다.

금세 사방은 어두워지고 후드득 낙엽 떨어지는 소리가 장대비처럼 요란하게 들린다. 어디선가 산짐승이라도 와락, 덤벼들 것 같은 두려움에 긴 막대기 하나를 주워들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더듬적더듬적, 찰팍 넘어지고 자빠지며 수차례 데굴데굴 굴렀다.

긴 막대기는 삭정이라서 여지없이 부러지고, 추위와 어둠의 공포 속에서 8시간 이상을 헤매다가 간신히 하산한 곳은 과천이었다.

고생은 했지만, 가슴 탁 트이는 불타는 산야와 석양에 지던 노을은 적잖은 흥분으로 안양시 등반대회의 묘미를 새롭게 내 가슴에 남겨 놓았다. '달리다시피 완주한 사람들은 과연 관악산의 극치를 얼마나 느꼈을까?' 하는 생각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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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 인간 냄새나는 진솔한 삶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현재,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이며 (사) 한국편지가족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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