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보고 작가님이라네? 허허..."

순천시 낙안면 최병수 할아버지의 뿌리칠 수 없는 돌탑인생

등록 2004.11.13 00:49수정 2004.11.13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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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낙안읍성을 품에 안고 옛 선조들의 생활모습 그대로, 지금까지 전통의 맥을 이어가며 살아가고 있는, 순천 낙안 민속마을을 찾아가다 보면 기이한 풍경 하나를 접할 수 있다.

어쩌면 마치 진안의 마이산의 돌탑처럼, 그러나 마이산의 돌탑과는 전혀 다른 형상들을 하고 있는 돌탑공원이 그것. 돌탑공원 아저씨라고 불리는 그 주인공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순천시 낙안면 독내리 낙안 면사무소 앞에 위치한 돌탑들을 보면서, 과연 누가 무슨 사연으로 이렇게 많은 돌탑들을 쌓은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밀려왔다.

우선 낙안 면사무소 총무계에 찾아가 그 주인공의 인적 사항을 물었으나, 전남 벌교에 사는 최병수씨라는 것 외에는 도대체 알 수 있는 길이 없었다.

114에 의뢰하여 겨우 주인공의 자택 전화번호를 알아냈고, 결국 주인공과의 전화 통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 주인공의 소재를 파악한 뒤 그분이 새로운 작업을 하고 있다는 섬진강 휴게소로 향했다.

a 돌탑쌓기에 열중이신 최 할아버지

돌탑쌓기에 열중이신 최 할아버지 ⓒ 김학수

영남지방과 호남지방이 만나는 곳, 섬진강 자락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그토록 궁금했던 전남 보성군 벌교읍에 사시는 최병수(61)씨를 만날 수 있었다. 할아버지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젊고 건강해 보였다.

지금부터 돌탑쌓기에 대한 그의 사연을 들어보기로 하자.


원래 최 할아버지는 벌교 읍내에서 부인 박희자(55)씨와 함께 옷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담배 한 개피를 피우시며 최 할아버지는 그동안의 이야기들을 구성진 남도 사투리로 시작한다.

"긍게 원래 내가 첨부터 이 돌탑을 쌓을라고 했던 것은 아니여! 긍게 지금부터 한 5년 전인가. 농사나 지어 먹을라고 거그 낙안에다 논을 쬐끔 샀제!"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러니까 5년 전 최 할아버지가 경작을 목적으로 낙안에 720평 정도 되는 땅을 구입했는데 경작을 준비하러 찾아간 어느 날, 건축현장에서 사용하다가 버린 자갈더미가 잔뜩 쌓여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디에 다시 가져다 버리기에도 그렇고 하여 고심 끝에 할아버지는 이 돌을 이용해 논뚝에 탑이나 한 번 쌓아 봐야겠다는 기발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그 돌멩이들을 활용해서 쌓기 시작한 돌탑이 바로 이 돌탑들인 것이다.

a 순천 낙안의 돌탑공원

순천 낙안의 돌탑공원 ⓒ 김학수

처음에는 그냥 재미삼아 하나하나 쌓던 탑들이 하나 둘 생겨나니 '보기에도 좋구나' 생각하셨단다. 그래서 이제 본격적으로 농사를 지으려고 논에 매실나무를 심었는데…. 어느 날엔가 이상하게, 꿈에 노인 한 분이 나타나서는, "자네! 어서 돌탑을 계속 쌓게나!"라고 말하고 사라지더라는 것.

"참말로 그 놈의 돌탑, 그만 쌓을라고 했제. 근디 꿈이 하도 요상혀서, 참말로 전라도 땅 다 돌아 댕김서 돌멩이 하나씩 주워서 모아다가 고생고생 해감서 또 몇 개의 탑을 쌓았제. 근디 우리 집사람이랑 주위 사람들이 영 이상허게 보는 것이여. 그래서 참말로 인자는 그만 쌓을라고 했는디, 그짓말 같지만 전번 때 그 노인이 또 꿈에 나타나드만. 혀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내가 탑을 쌓기 시작흠서로 건강도 좋아지고 정신도 맑아지더란 말여? 그래서 이것이 내가 해야할 일인가 보다 생각하고서는 하나둘 탑을 쌓다보니 지금은 그 숫자가 50여 개가 넘었지. 그러다 본게 사진찍는 사람들도 많이 오고, 관광객들도 와서는 탑을 이렇게 쌓으면 좋겠다, 저렇게 쌓으면 좋겠다 허는디… 여그다가 평생토록 돌탑을 쌓을 건디, 나는 내 방식대로 쌓을랑구만."

a 버려진 돌을 이용해 처음으로 쌓은 돌탑들

버려진 돌을 이용해 처음으로 쌓은 돌탑들 ⓒ 김학수

구성진 전라도 사투리로 말씀하시는 최 할아버지 입가에는 웃음이 번진다. 그랬다! 기자가 보기에도 최 할아버지는 자기만의 특색있고, 고집있는 작품들을 하나하나 만들어 가고 있었다.

처음, 버려놓은 돌멩이 처리 문제로 고심하다 쌓기 시작한 돌탑 하나하나의 의미가 최 할아버지에게는 너무나도 커다란 재산이 되어버린 지금. 뭇사람들은 찾아와서 비싼 값에 매각을 하라는 제의도 하고,또 어느 관공서에서는 기능직 공무원으로 채용할 의사가 있다고 제안하기도 했지만, 최 할아버지는 그저 웃음으로 묵묵히 답할 뿐이란다.

a 섬진강 휴게소에서 작업 중인 작품

섬진강 휴게소에서 작업 중인 작품 ⓒ 김학수

지금 최 할아버지는 남해고속도로 섬진강 휴게소에서 '화합상징 조형물'이라는 새로운 작품을 작업 중이다.

"서울도로공사 높은 분이 와서는 나 보고 여그다가 작품 하나 만들어 달라는구만. 나 보고 작가님이라네? 허허…."

최 할아버지는 도화지에 자신이 연필로 직접 그린 그림 한 장 놓고 작업에 한창이다. 최 할아버지만이 알아볼 수 있는 그림 한 장이, 여느 설계사의 설계도면 못지 않다. 돌 하나하나를 정성껏 쌓아올리는 할아버지의 당찬 모습에서 빛나는 작품 하나가 곧 완성되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a 직접 그린 종이그림과 작품내용

직접 그린 종이그림과 작품내용 ⓒ 김학수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음료 한 잔을 건네는 할아버지에게 앞으로의 포부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슬하에 1남2녀를 두고 계시는 최 할아버지는 자식들에게까지 이 굴레를 물려주고 싶지는 않단다.

다만, 진심으로 최 할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올 사람이 있다면 두 명 정도에게는 이런 탑 쌓는 기술을 가르치고 싶다고. 그리고 또 하나, 어느 후원자가 나타나서 함께 이런 길을 헤쳐나가 준다면, 세상을 다하는 날까지 이 세상에서 제일 큰 돌탑공원을 만들어 보는 게 최 할아버지의 꿈이란다.

부디 최 할아버지의 작은 소망이 이루어지길 빌면서, 머지않아 완성되어 동서화합의 장을 열게 될 섬진강 휴게소의 멋진 작품을 마음 속 가득 기대해 본다.

아울러 돌탑 하나하나에 얹혀져 가는 수천, 수만 개의 작은 돌멩이 하나하나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작은 의미를 한 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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