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머물렀던 숙소 간판. 조선족 자치주답게 한자보다 한글을 우선하는 점은 정말 높이 사고 싶다.김형태
우리가 묵었던 숙소는 백두산 입구에서 조금 내려와 자리잡은 '삼강호텔'이었다.
그러나 말이 호텔이지, 노후화된 시설에 배관이 엉망이어서 물에서는 녹내가 났고, 물이 빠지지 않는 양변기가 많아서 한동안 호텔 측에 항의하는 소동이 있었다. 아무래도 일 년 중 거의 세 계절을 비워두다보니 그런 것 같았다. 마치 우리나라 해수욕장 주변의 여름 한철 장사를 보는 것 같았다.
열쇠꾸러미가 카운터에 있어서 방문을 열 때마다 카운터까지 가서 부탁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따랐다. 현지 가이드가 여름이라 온수가 나오지 않을 거라 하여 그런 줄 알았더니, 몇 사람이 나서 이야기를 하자 저녁 8시부터 10시, 그리고 아침 6시에 잠시 넣어주겠다고 했다. 우리나라 여인숙 정도의 시설을 가지고 중국인들은 이 정도 시설이면 이 동네에서는 고급 호텔격에 속한다며 부풀려 말하고 있었다.
기왕지사 이렇게 된 것 우리는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하였다. 영화 속 별장이 아니라서 실망스럽긴 했지만, 풍경 좋은 산골의 민박집쯤으로 생각하자고 하였다. 그런 민박집에 침대까지 있다고 생각하니 그런 대로 기분이 유쾌해졌다. 사실 그랬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백두산 천지의 진면목을 보고 왔는데, 이 정도의 사소한 일로 인해 천지의 감흥을 깨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저녁식사는 비교적 잘 나왔다. 배가 고파서 그런지 맛도 괜찮았다. 그 동안 수없이 다녀간 한국인 관광객들 때문인지 한국인의 입맛에 맞추려는 반찬이 꽤 있어 보였다.
모두들 식사 후, 숙소로 들어가 정리하고 샤워를 마치고, 10시 정도에 1층 로비에 다시 모여 술 또는 차 한 잔씩 하며 대화의 시간을 갖기로 하였다. 중국 맥주는 과연 어떤 맛일까 싶어 시켜놓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데, 낮에 교통사고를 냈던 운전기사(리따꺼)가 도착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가 그 일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사고를 낸 기사도 걱정이고 차에 치인 사람들의 안부도 궁금했다. 저녁 무렵 걱정되어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연락이 왔는데,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았고 운전기사도 무사하다고 하였다. 정말 천만다행이다 싶었다.
가이드는 중국에서는 설사 교통사고로 사람이 사망하는 일이 생겨도 우리 돈 40만원 정도만 물어주면 모든 게 끝난다는 말도 덧붙였다. 40만원이 중국돈으로 적은 돈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인명을 너무 경시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지가이드가 통역을 담당했는데, 기사의 말은 짧고 가이드의 말이 긴 것으로 보아 이런저런 말을 덧붙이는 것으로 보였다. 우리 일행이 운전기사를 몹시 걱정하고 있다고 가이드가 전화를 한 모양이다. 그랬더니 운전기사는 그것에 감격해서 고마움을 표하러 왔다는 것이다.
조선족 가이드 아가씨의 풍부한 표현력과 마음 씀씀이에 감탄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은 괜찮은데 중국인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생각이 자리잡아가던 때에 모처럼 순수한 마음을 가진 기사를 보게 되니 마음이 흐뭇했다.
사실 처음에는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이니까 사람들 또한 돈도 모르고 시골사람들처럼 순박하고 착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선입견이었다. 결코 그렇지 않았다.(특히 북경은) 오랫동안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온 우리나라 사람들 뺨치게 장사수완이 뛰어난 그들이었다. 그러나 그 장사수완이라는 것이 고객을 만족시키고 감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우리를 씁쓸하게 하는 것이었다.
운전기사가 떠난 후, 우리측 가이드인 서 사장과 대화를 나누며, 내일부터는 준법 운행할 것, 용경협 관광을 추가했으면 좋겠다, 쇼핑센터에서 되도록 빨리 출발하기 등을 당부했다. 서 사장은 우리 모두의 의견을 수용하겠으며 북경에서는 더 이상 쇼핑센터에 들르지 않을 테니, 살 것이 있으면 이곳 연길에서 모두 사라고 말했다.
우리는 오늘 있었던 많은 일들을 반추했으며, 또한 내일의 여정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였다. 호텔 밖으로 나와 백두산쪽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하늘이 마치 낮게 보았던 천지의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천지의 감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초롱초롱한 별빛도 감상하였다. 우리가 보고 있는 별빛은 따지고 보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가까이에서 보는 별빛이라고 하였다.
백두산 밑이라고는 하지만 우리가 서 있는 자리(해발 얼마라고 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제법 높은 위치였다. 그래서 그런지 별들이 유난히 밝아 보였다. 그렇게 우리는 밤이 늦도록 별빛을 감상하며 소망도 빌어보고 동심의 세계에 빠져보기도 하다가, 낮에 보았던 천지의 감흥을 안은 채 숙소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