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방미발언 시비걸 일 아니다

[주장] 페리만도 못한 한국의 보수진영이여!

등록 2004.11.15 11:56수정 2004.11.16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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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 및 남미 3개국 방문을 위해 출국한 노무현 대통령이 12일 오전(한국시간 13일 새벽) 첫 기착지인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도착,  미국의 민간  외교정책단체인 국제문제협의회(WAC)가 주최하는 오찬에서 한 회원의 질문을 받고 있다.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 및 남미 3개국 방문을 위해 출국한 노무현 대통령이 12일 오전(한국시간 13일 새벽) 첫 기착지인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도착, 미국의 민간 외교정책단체인 국제문제협의회(WAC)가 주최하는 오찬에서 한 회원의 질문을 받고 있다.연합뉴스 김동진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 중 발언을 놓고 한나라당과 일부 보수언론이 쟁점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들은 특히 노 대통령의 발언이 "북한과 흡사한 것"이라며 색깔공세를 펴고 있다. 논리와 근거가 부족할 때, 색깔론에 의존하려는 구태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노 대통령이 13일 로스앤젤레스에서 한 북핵 발언은 간단하면서도 분명하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허용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이를 위해서는 대화를 통해 상호간의 우려 사항을 이해하고 입장 차이를 조율해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북핵 해법'으로 무력 사용은 물론이고 제재와 봉쇄, 그리고 북한의 붕괴 유도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러한 입장 표명은 2기 부시 행정부의 강경 기조를 견제하면서 한반도의 안전과 평화가 저해될 경우 가장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한반도 주민들의 의사가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보수진영에서는 한미공조를 위태롭게 하는 위험한 발언이라며 정치 공세를 퍼붓고 있다. 전여옥 한나라당 대변인은 "노 대통령은 변함없는 원칙이라는,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 핵보유를 용납할 수 없는 우리 외교의 기본적인 입장부터 천명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임태희 대변인 역시 "한마디로 지금은 한미공조가 어느 때 보다 중요한 때인데 대통령의 발언은 미국보다는 북한 입장을 이해하는 것으로 비쳐진다"면서 "이로 인해 한미공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국제통인 박진 의원은 "노 대통령의 발언은 충격적이며 폭탄과 같다"면서 "북한의 핵 보유를 '자기방어를 위한 합리적'이라고 말한 것은 북한의 핵 보유의 당위성과 정당성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은 또 "이는 6자회담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며 정부의 '북핵 불감증'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대단히 유감스럽고 핵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 발언"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한나라당의 비판은 논리적이지도, 사실과 부합하지도 않은 정치 공세에 불과하다. 먼저 노 대통령은 13일 연설에서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우리의 의지와 북한의 핵 보유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은 아주 명확하다"며 전여옥 대변인이 지적한 우리 외교의 기본적인 입장을 천명했다. 논평 쓰기에 앞서 노 대통령의 발언 전문을 읽어보았는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또한 한나라당은 목적과 수단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지고지순의 가치로 여기고 있는 한미공조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고, 특히 북핵 문제에 있어서는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따라서 미국이 한반도의 안전과 평화를 해칠 수 있는 무력 사용을 배제하지 않고 제재와 봉쇄를 추진하려고 할 때, 한국이 이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하면서 미국의 정책이 도를 넘어서지 못하게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페리만도 못한 보수진영이여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 가운데 한나라당과 <조선> <중앙> 등 보수언론이 가장 문제삼은 것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억제수단이라는 (북한의) 논리가 여러 상황에 비춰 일리가 있는 측면이 있다"고 언급한 부분이다.

이에 대해 보수진영은 마치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고 이를 정당화시키려는 것이라고 멋대로 해석하면서, 이것이 핵확산 방지를 최우선적인 목표로 내세우고 있는 미국과 충돌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북한의 핵보유 시도가 '억제력'으로서의 측면이 있다고 언급한 것은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핵무기를 갖지 않고서도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클린턴 행정부 막바지 때 북미관계의 전환을 가능케 했던 윌리엄 페리의 지적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는 1993~94년 한반도 위기 당시 미국의 국방장관으로서 북폭 계획을 주도했던 인물이자, 2기 클린턴 행정부에는 초당적인 지지를 받고 대북정책조정관으로 임명돼 미국의 대북정책을 재검토하고 그 유명한 '페리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페리는 1999년 5월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와 북한의 핵·미사일 보유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대북 인식 전환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북한을 위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북한은 우리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다고 여기고 있다"며 "미사일은 이러한 점에서 억제력으로서의 성격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러한 북한을 제대로 알 때 협상이 성과를 거둘 수 있다며, 이를 두고 "있는 그대로의 북한"과 협상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같은 페리의 발상의 전환과 이에 기반을 둔 클린턴 행정부 막바지 때의 대북정책은 북미관계 개선의 기본 전제였던 것이다.

페리의 권고가 아니더라도, 적대 관계에 있는 국가로 하여금 핵·미사일을 포기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그 국가의 안보 우려를 해소해줘야 한다는 것은 협상의 기본에 해당하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발언은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며, 이는 앞으로 기본에 충실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노 대통령, 흔들리지 말아야

우려되는 점은 한나라당과 일부 보수언론이 노 대통령의 발언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면서 이를 계속 정치 쟁점화할 경우 모처럼 무게중심을 잡은 한국 외교가 또다시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미국의 네오콘이나 보수언론이 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불만을 나타내면, 이를 국내의 보수진영이 침소봉대하면서 노 대통령을 압박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노 대통령의 '중심잡기'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기실 이번 방미 기간에 노무현 대통령이 밝힌 '북핵 해법'은 지난 20개월간 미국의 선의를 기대하면서 한미공조에 '올인'해온 외교정책에 대한 자기반성의 산물이자,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더이상 지체시킬 수 없다는 단호함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노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무력 사용은 물론이고 제재나 봉쇄, 그리고 북한인권법과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구상(PSI)를 앞세운 북한붕괴 유도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천명한 것은 대단히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노 대통령이 집권 초기에 부시와 코드를 맞추기 위해 사실상의 대북 제재를 염두에 둔 "추가적 조치"와 북핵문제와 남북경협을 연계시키는데 합의하고, 북한에 대한 무력 사용 위협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기여할 수 있다는 발언을 한 것은 미국 내에서 "한국의 반대 때문에 제재나 봉쇄는 실효가 없다"는 온건파의 입지를 약화시킨 결과를 낳았다.

비록 뒤늦은 감이 있지만, 노 대통령이 대북 제재와 봉쇄에 반대 입장을 밝힌 것은 2기 부시 행정부가 대북정책을 재검토하는데 한국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요인이 될 것이다. 또한 북한은 물론이고 중국·러시아·일본에게도 한국의 입장을 분명히 함으로써, 향후 한국이 6자회담에서 주도적이고 능동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닦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문제는 앞으로이다. 당장 강경기조의 부시 행정부를 설득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부시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불거질 수 있는 한미간의 이견과 갈등을 국내의 보수진영에서는 침소봉대하면서 마치 한미관계가 결딴이라도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곧 열릴 것으로 보이는 4차 6자회담에서 중국·러시아·일본의 '지지'와 북한과 미국의 '양해'를 이끌어낼 수 있는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약소국인 한국에게 있어서 설득력 있는 해법이 마련되지 않은 단호함은 오래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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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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