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호 없이 발행된 서울대 학보 '말썽'

전체 12개 면 중 9개면 파행 제작..학생기자들 자비로 제작-배포

등록 2004.11.15 18:45수정 2004.11.16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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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왼쪽은 정상, 오른쪽은 파행 파행제작된 <대학신문> 11월 15일자. 제호, 기고, 광고면 등 지면 절반이 백지로 비워둔 채 발행됐다. 왼쪽은 정상발행되던 <대학신문>과 오른쪽은 이번에 파행발행된 신문 1면. 붉은 색으로 둘러친 곳이 빠진 제호와 광고.

왼쪽은 정상, 오른쪽은 파행 파행제작된 <대학신문> 11월 15일자. 제호, 기고, 광고면 등 지면 절반이 백지로 비워둔 채 발행됐다. 왼쪽은 정상발행되던 <대학신문>과 오른쪽은 이번에 파행발행된 신문 1면. 붉은 색으로 둘러친 곳이 빠진 제호와 광고.


최근 발행된 국립 서울대학교의 학보인 <대학신문>(주간 이창복 교수)이 창간 52년만에 제호, 지령도 없이 발행되는 파행을 겪어 대학사회 안팎에 충격을 던지고 있다. 15일 발행된 <대학신문>(지령 표기되지 않음)은 전체 12개 면 가운데 3개 면을 제외한 10개 면에서 기사 내지 광고가 삭제됐으며, 9면의 경우 아예 백지로 발행됐다.

이는 일제하 총독부 검열로 당시 일간지들이 문제가 된 기사들을 빼고 이른바 '벽돌신문'(활자를 뒤집어 글자 대신 검은색 바탕으로 인쇄된 신문) 발행을 비롯해 80년 4월 일명 '사북사태' 당시 <중앙일보> 관련기사가 백지로 나간 일, 대학신문들이 과거 자유언론 쟁취과정에서 백지 신문을 냈던 경우 등에 이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동아일보는 74년 12월부터 4개월간 당시 박정희 유신정권의 언론탄압으로 광고면을 백지로 내보낸 적이 있다.

이번 파행사태는 서울대 총동창회 광고 정기게재 갈등에서 빚어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주간교수와 기자들 사이에 의견을 좁히지 못해 사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장한승 <대학신문> 편집장은 15일 오후 3시30분경 발행인 정운찬 서울대 총장과 면담을 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학생기자단은 주간교수 퇴진을 요구했으나, 정 총장은 "지금 결정할 수 없고 스텝과 논의해서 결정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 편집장은 15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정 총장 면담에서도 진전은 없었고, 주간교수는 기존 입장만 되풀이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간 교수 "사칙 따르지 않으면 마음대로 결정하겠다"

a <대학신문>은 11월 15일자 1면에 학생기자단 명의의 사과문을 게재했다.

<대학신문>은 11월 15일자 1면에 학생기자단 명의의 사과문을 게재했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오후 6시 현재 이창복 주간교수와 간사 3인,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교수 3인과 학생기자들이 참여하는 전체 편집회의를 열고 있으나 원활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날 오후 5시30분경 시작한 전체 편집회의는 "주간교수 방침에 따를 수 없다"고 항의의 뜻을 밝힌 학생기자들이 전원 퇴장한 상태이다. 속기담당 학생기자 1인만 남아 회의를 기록하고 있다.

장 편집장은 "'모든 권한은 주간에게 있고 의견이 충돌돼 합의가 되지 않으면 사칙에 따라서 결정하겠다'는 게 주간교수의 입장"이라며 "그것은 곧 주간교수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항변했다.


장 편집장은 "주간교수는 또 사칙을 따르지 않으면 나가도 된다고 했으며, 당장은 아니지만 신문이 정상 발행되지 않은 것에 대해 책임을 묻겠다고까지 했다"고 밝혔다.

장 편집장은 "그동안 편집회의는 관행상 편집장이 주관했는데 이날은 주간교수가 사칙을 들어 회의까지 직접 주재했다"고 말했다. 현재 대학신문 사칙에 의하면 "주간은 발행인을 보좌하여 본사의 전체 사무를 통할하고 발행인 유고시에는 그 직무를 대행한다"고 돼있다.

<오마이뉴스>는 이창복 주간교수 입장을 들으려 했으나 오후 5시부터 휴대폰이 꺼진 채 전화연결이 되지 않았다. 이창복 교수 사무실 조교는 "교수님은 퇴근했다"고 말했다.

지면 절반 비운채 1만부 발행... 학생기자들 자비 털어

이날 파행으로 발행된 <대학신문>은 거의 누더기 상태나 마찬가지. 1면 제호를 비롯 1·2면 광고, 4면 사설·관악시평. 5면 칼럼 '대학원에서' '자하연', 6·7·8면 일부 기사, 9면(학술) 전체기사 및 광고, 10면 광고, 11면 '독자에세이' 및 광고 등이 대거 빠졌다.

이로써 1952년 첫 발행 이후 주 1회 발행돼 지난주 1642호까지 발행된 대학신문은 지면 절반을 백지로 비운 채 '절름발이'로 1만부가 발행됐다. 더욱이 이날 신문은 신문사 예산이 아닌 학생기자 자비로 발행, 배포했다.

학생기자들은 1면에 "주간 교수와 학생기자단은 신문제작 방침에 대해 합의하지 못해 대학측은 15일자 신문인쇄를 중단시켰고, 학생기자단은 자비를 털어 신문을 자체 발행한다"는 안내문을 별도로 실었다.

파행 발행, 총동창회 행사광고 일방적 지시에서 발단

한편 <대학신문>에 따르면 이창복 주간 교수는 이 날짜 신문에 지난 달 열렸던 서울대 총동창회 행사광고를 실을 것을 지시했으나 편집장 등 기자들이 이를 거부해 13일 오후 주간교수 직권으로 신문인쇄가 전면 중단됐다.

장 편집장은 "주간교수가 지난 9월 일방적으로 총동창회 광고를 매주 싣겠다고 통보했다"며 "이미 4차례에 걸쳐 광고가 나갔다, 그런데도 기사인지 광고인지 구분도 되지 않은 내용을 무료로 기한없이 광고인 양 싣는 것은 편집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주간교수는 "광고면 활용은 주간 권한이고 이에 따라 광고면을 통해 동창회 소식을 전하려 했을 뿐"이라며 "주간 제작방침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판단해 인쇄를 중단시켰다"고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a 파행발행된 <대학신문> 11월 15일자 2, 3면.

파행발행된 <대학신문> 11월 15일자 2, 3면.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a 파행발행된 <대학신문> 11월 15일자 4, 5면.

파행발행된 <대학신문> 11월 15일자 4, 5면.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a 파행발행된 <대학신문> 11월 15일자 6, 7면.

파행발행된 <대학신문> 11월 15일자 6, 7면.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a 파행발행된 <대학신문> 11월 15일자 8, 9면.

파행발행된 <대학신문> 11월 15일자 8, 9면.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a 파행발행된 <대학신문> 11월 15일자 10, 11면.

파행발행된 <대학신문> 11월 15일자 10, 11면.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a 파행발행된 <대학신문> 11월 15일자 12, 1면.

파행발행된 <대학신문> 11월 15일자 12, 1면.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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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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