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시신이 썩으면 어찌하오리까?

[조선의 국장제도 2] 냉동 영안실

등록 2004.11.19 03:52수정 2004.12.01 11:34
0
원고료로 응원
a 순릉

순릉 ⓒ 한성희

왕과 왕비의 무덤인 능에 부장품으로 무엇이 들었는가, 질문하는 사람을 많이 봤다. 사실 호기심을 자아낼 듯싶은 거대한 능상을 보면 궁금하기도 할 것이다. 저 커다란 무덤을 파면 도대체 속에 뭐가 들었을까?

카터가 발굴한 이집트 투탕카멘 피라미드에서 황금 관을 비롯해 금으로 만든 보물이 쏟아져 나왔고, 백제와 신라의 고분에서 찬란한 금관이 나온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왕의 무덤에 도대체 무엇이 들었을지 기대와 궁금증이 있을 법하다.


그러나, 이런 기대를 하는 사람들이 하나 간과하는 것이 있다. 금빛 찬란한 왕관이나 보물이 든 부장품이 쏟아져 나온 무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부분 고대 고분들이다.

조선시대는 중세도 아닌 근대사회다. 근대사회라는 건 고대와는 달리 살아 생전의 물건을 고스란히 집어넣고 심지어는 인간까지 순장하는 고대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a 장릉 참도와 정자각

장릉 참도와 정자각 ⓒ 한성희

근대사회는 현대에 못 미칠지언정 현대에 가까울 정도로 명분상 비슷한 사회제도를 만드는 시늉을 한 시대다. 중세사회인 고려가 귀족시대였다는 건 중학교 국사만 공부해도 누구다 다 아는 사실이다.

고려의 귀족사회는 제 아무리 잘나고 똑똑해도 신분상승의 기회조차 없었고, 조상을 잘 두면 재산과 신분을 그대로 이어받아 은수저 입에 물고 태어나서 죽는 것을 나라가 제도로 보장했다.

물론 조선도 신분 사회니까 문반과 무반을 일컬은 양반과 중인, 양인, 천민 제도가 있었다. 조선과 고려의 시대 구분의 확실한 차이는 과거제도에서 볼 수 있다. 귀족사회인 고려와 근대사회인 조선의 과거제도의 분명한 차이점은, 조상이 귀족이었느냐가 아니고 시험 성적으로 관직에 오를 수 있느냐 없느냐다.


a 공릉 겨울나무 가지

공릉 겨울나무 가지 ⓒ 한성희

귀족에게 온갖 특권을 주는 음서제도 때문에 인재일지라도 제도의 한계에 길이 막혔던 고려와는 달리 조선은 명목상으로 양인에게까지 과거를 볼 기회를 열어놓는다. 조선으로 오면 과거로 신분 상승할 수 있는 기회는 천민을 제외하고 누구에게나 준다는 얘기다. 실제로 양인이 과거에 급제하는 일은 하늘에서 별 따기보다 어려운 일이었으나 원천봉쇄한 고려와는 다른 점이다.

제도는 근대사회답게 완벽했지만, 돈 없으면 고액과외나 사교육 받을 기회가 없고 고교등급제라는 최신 입시제도까지 등장하는 바람에 일류대학 입학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새천년 시대와 흡사한 면이 있긴 하다.


조선의 국장제도를 언급하다가 조선과 고려의 과거제도까지 가면 곁가지로 흐를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이 정도에서 그친다.

무덤 속에서 보물이 나온다면 누구나 흥분한다. 도굴 당하지 않은 투탕카멘의 피라미드가 발굴되자 전 세계가 흥분했고, 1500년 전 무령왕릉에서 쏟아져 나온 유물과 찬란한 불꽃 모양 왕관을 보고 우리나라가 열광했다.

그렇지만 조선의 왕릉에서 그런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기대에 가득 찬 사람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부장품까지 기록에 남아있고 왕과 왕비의 무덤에 무엇을 넣는다는 것도 정한 조선은 근대사회기 때문이다.

a 창녕 석빙고

창녕 석빙고 ⓒ 이종찬

조선시대 냉동 영안고, 설빙(設氷)

<오마이뉴스>에 왕릉에 대해 연재를 쓴다는 걸 아는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왕릉에 뭐가 들었는지는 쓰지 말아요."
"왜요? 도굴해봐야 도굴한 비용도 안 나올 걸요? 값있는 게 있나요?"
"하하, 맞는 말이네요."
"파 봐야 다 썩어서 남은 것도 없을 거구요. 나온다해도 고고학자들에게나 가치 있는 유물들이겠지요."

국장을 관장하는 3관청 중 국장도감에서 하는 일 중 하나가 바로 무덤에 넣는 부장품을 만드는 일이다. 국장도감에서 하는 일은 정해 있고 장례 맨 나중에 행하는 일이니 다음에 밝히기로 하고 왕과 왕비의 장례절차로 되돌아 가보자.

"5개월이나 되는 장례기간 동안 시신이 썩으면요?"
"흙에 닿을 때까지 시신이 썩으면 안 됩니다."

a 창녕 석빙고 내부

창녕 석빙고 내부 ⓒ 창녕군

국상 절차를 다 설명하기 전에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처음 만났다. 그러면 냉동시설도 없는 조선시대에 어떻게 처리했는가? 왕과 왕비라고 해서 죽는 시간을 마음대로 정하는 것도 아니고 더위에 헉헉대는 한 여름에 죽을 수도 있다.

풍수 때문에 왕과 왕비는 흙에 닿을 때까지 시신이 썩으면 안 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어떻게 해결하는가?

"그럼 어떻게 하죠?"
"겨울이라면 문제가 없겠지요. 대나무로 평상을 만들어 대행(유해)을 놓고 얼음을 주위에 놓습니다. 동빙고에 저장한 얼음을 쓰지요."

왕의 시신이 썩지 않게 하기 위해 공조에서 빙반(氷盤)을 만든다. 길이는 10자(3m), 넓이는 5자4촌(1.6m), 깊이는 3자(90cm)의 조선시대 냉동 영안실이다.

이 빙반을 바닥에 놓은 다음 그 위에 대로 만든 평상(잔상)을 빙반 위에 설치한다. 물론 빙반이 잔상보다 더 크다. 이것을 설빙이라 한다.

생각보다 유해를 위한 냉동고는 아주 완벽하다. 밑에 있는 빙반에만 얼음을 두는 것이 아니라 사면에 대나무로 만든 잔방(棧防)을 둘러싸서 얼음을 쌓아 올린다.

a 2003년 1월 안동에서 열린 장빙제(藏氷祭) 행사 장면.  장빙제는 임금에게 진상하기 위해 석빙고에 얼음을 채워 은어를 보관하던 절차를 재현한 행사다.

2003년 1월 안동에서 열린 장빙제(藏氷祭) 행사 장면. 장빙제는 임금에게 진상하기 위해 석빙고에 얼음을 채워 은어를 보관하던 절차를 재현한 행사다. ⓒ 김용한

시신이 누워 있는 평상인 잔상(棧牀)에는 사방에 대 그물까지 붙여 습기를 방지한다. 그리고 습기를 흡수하기 위해 마른 미역을 사방에 쌓아놓고 계속 갈아댄다. 이것을 '국장미역'이라 한다.

여기까지 나오면 어지간해서는 놀라지 않는 사람이라도 "어휴, 어휴"하면서 혀를 내휘두른다.

조선시대의 얼음 저장고는 석빙고인 동빙고와 서빙고가 있다. 동빙고는 왕실 제사 전용 얼음 저장고이고 서빙고는 대장금이 활약했던 어주(왕실의 부엌)와 문무백관에게 여름에 내리던 얼음을 저장했던 곳이다.

한강에서 채빙한 얼음은 두께가 12cm 이상이라야 했고 오염되지 않는 곳을 택해서 떴다. 한 정(丁)이 최대 사방 6자(1.8m)인 얼음을 뜨기도 했다 하니 얼음을 담당했던 백성들의 고초를 알 만하다.

조선시대 냉동고인 동빙고의 얼음 저장량은 서빙고보다 1/10 이하로 적었다. 국상이 한 번 나면 동빙고와 서빙고의 약 15만 정에 이르는 얼음이 고갈될 정도였다.

그래서 왕이나 왕비가 병이 나서 위태하거나, 연로할 때는 국상을 대비해서 평년 두 배 정도 얼음을 미리 비축하기까지 했다.

하여간 왕과 왕비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씨가 다르긴 다른가 보다. 능에도 사가와 마찬가지로 산신제를 지내는데 쓰는 산신석이 있다. 보통 산소에 가면 산신제를 먼저 지내고 제사를 지내지만, 능에서는 왕과 왕비의 제사를 먼저 지내고 산신제를 지낸다. 왕은 하늘의 아들이고 조선 팔도에 거주하는 산신도 왕의 지배 밑에 있다는 의식인 셈이다.

현대에 태어난 것을 새삼 감사하게 여기고 살아야한다. 혹시 전생에 내시나 궁녀여서 5개월 동안이나 죽은 왕 옆에서 미역과 얼음이나 갈아대고 지냈다는 끔찍한 상상을 한다면? 현대에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할 일이다.

a 장릉의 산신석

장릉의 산신석 ⓒ 한성희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3. 3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4. 4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5. 5 "윤 정권 퇴진" 강우일 황석영 등 1500명 시국선언... 언론재단, 돌연 대관 취소 "윤 정권 퇴진" 강우일 황석영 등 1500명 시국선언... 언론재단, 돌연 대관 취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