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세 서 할머님의 1년만의 외출

등록 2004.11.19 12:09수정 2004.11.19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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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만에 처음 나온 쇼핑센터. 서 할머님은 가위를 사려고 하는데 손이 닿지 않아 함께 간 자원봉사자에게 부탁하기 위해 열심히 가위 모양을 설명하셨다.


쇼핑센터 진열대를 가득 메운 알록달록한 각종 물건, 시식코너에서 나누어 주는 간식들은 시설에서 오랫동안 생활해 온 할머님에게 또 다른 볼거리와 삶의 활력이 된다.

올해 95세 서 할머님은 요양원에서 생활한 지 올해로 다섯 해가 되었다. 서 할머님의 외출은 1년에 한두 번 정도. 휠체어를 타야 거동이 가능한 요양원 어르신들은 연고자가 요양원으로 찾아와 외출이나 외박을 신청해야 외출할 수 있다.

요양원에서 생활하는 몇 해 동안 서 할머님은 찾아오는 연고자가 없어 외출 한번 제대로 못했다. 일년에 한 두 번 찾아오던 서 할머님의 조카는 할머님이 조카를 볼 때마다 "날 좀 집에 데려가라"고 떼를 쓰고 바닥에 드러누워 우시는 바람에 이젠 잘 뵈러오지도 않는다.

청력이 손상되어 다른 사람의 말은 알아듣지 못하고 자신의 의사표현은 필담이나 "어, 어, 어"하는 의성어로 설명하는 서 할머님은 버리는 천이나 헝겊을 모아 꿰매는 일을 취미로 삼고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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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은숙

새로 산 속옷이나 선물로 들어온 양말을 나누어 드려도 할머님이 입으시는 건 항상 몇 해 전 처음 입소했을 때 입은 환자복 조각을 덧대 꼼꼼하게 꿰맨 팬티와 색깔이 다른 양말을 조각조각 기워 신은 옷가지들이다.

같은 방에서 생활하는 어르신들이 궁상을 떤다고 구박하고 눈을 흘기셔도 할머님의 취미생활은 바뀌지 않으셨다. 할머님은 조금만 꿰매 면 멀쩡할 옷들을 버리고 새것만 꺼내 입는 것이 아까워서 다른 분들을 이상하게 생각하신다.


지난 해 봄엔 나들이로 한강유람선을 태워 드렸는데 바람에 날릴까봐 모자에 달아드렸던 모자 끈을 목에 감고 한강으로 뛰어들겠다고 하시는 바람에 일행이 모두 놀란 적이 있다. 안전사고를 생각해서 할머님의 외출은 일정 기간 제한했는데 쇼핑 나들이를 간다고 하니 꼭 나가셔야 한다고 부탁하셔서 모시고 나갔다.

취미생활에 필요한 가위와 바느질 도구도 사고 평상시 자주 드시지 못하는 떡볶이도 사드셨다.


요양원에 들어가면 다른 할머님들에게 또 눈총을 받으시겠지만 종이에 꼬깃꼬깃 싼 사탕 몇 개를 외출을 도와준 자원봉사자에게 건네며 서 할머님은 어떤 소녀보다 더 해맑게 웃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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