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부정은 과연 충격적인 뉴스인가 1

[주장] 일그러진 우리의 치팅 문화

등록 2004.11.23 14:11수정 2004.11.28 12:05
0
원고료로 응원
지난 11월 17일 휴대폰을 이용한 몇몇 학생들의 대입 수능 시험 부정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경악했고 말 깨나 한다는 사람들은 한마디씩 보탰다.

예견되었던 부정사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예방책을 강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육당국이 얻어맞고, 철저하게 감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감독교사가 비난받았다. 또 '간이 부어도 유분수지 어떻게 그런 일을 공모할 수 있단 말인가'라며 어린 학생들에게 돌팔매를 던졌다.

그러나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우리 모두가 사실은 공범자고, 방관자다.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가치관이요 의식구조 때문이다.

남의 것을 훔쳐서라도 점수 하나 더 올릴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하라고 우리는 아이들에게 교육을 해왔다. 수행평가로 내준 가정숙제, 미술 숙제는 으레 엄마, 아빠, 오빠, 언니의 몫이 되고 그것도 모자라서 예체능 숙제의 경우는 학원선생님의 밑 손질이 가미되어져서 학교에 제출된다.

학교의 선생님은 뻔히 학생 본인의 작품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잘 했다는 최대의 칭찬과 더불어 상장까지 주는 경우가 다반사로 일어난다. 부모들은 모이면 학교 수행평가 때문에 아이들을 예체능학원으로 보낸다는 말도 공공연하게 한다.

몇 주 전의 일이다. 수업시간에 배운 몇 개의 단어를 학생들에게 제시하고 간단한 문장을 만들어오라고 숙제를 내 준 적이 있었다. 몇 명 학생의 학습지를 검사할 때까지 눈치를 못 채다가 뒤쪽으로 가면서 방금 읽었던 학생의 문장과 다음 학생의 문장이 똑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0명 이상의 학생들이 결국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 문장을 서로 베껴 써서 숙제로 제출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불같이 화가 나는 것을 억누를 수 없었다. 학기 초부터 강조해온 말 중 하나가 수업시간에 보는 퀴즈, 단어시험, 숙제 그 어떠한 경우에도 남의 것을 보거나 베끼지 말라고 강조해왔던 터였다. 그러나 정작 학생들은 남의 것을 베껴서 숙제를 제출한다는 것이 왜 그렇게까지 나쁜 것인지에 대해서 별 의식이 없어 보였다.


미국에서 아이들 두 명을 학교에 보내면서 2년여 기간 중에 겪었던 가장 큰 신선한 문화 충격 중의 하나가 바로 그들이 갖고 있는 치팅(cheating, 커닝)이나 표절(plagiarism)에 대한 의식이다.

둘째 아이가 미국에서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주(State)에서 실시하는 미술 컨테스트에 출품했던 작품이 혼자 힘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는 심사위원들의 판단 하에 등위권에서 밀릴 뻔했다는 이야기를 담임선생님이 전해준 적이 있었다. 다행히 학교 수업 시간에 그려진 그림이기 때문에 주변 친구들과 미술 선생님이 증인이 되어 주었고 결국에는 주 전체에서 우수작품으로 선정됐다.


큰 아이가 10학년 때의 일이다. 영어시간에 문학작품을 읽고 에세이를 써내는 숙제가 자주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번번이 점수가 좋지 않게 나오는 것은 말 할 것도 없거니와 교사가 수업시간에 우리 애의 에세이를 표절로 단정해서 학생들 앞에서 은근히 창피를 준 적이 있었다고 했다.

이유인즉슨 큰 애가 별 큰 생각 없이 작가의 서문이나 정리된 내용에서 몇 군데를 나름대로 인용해서 쓴 글이 선생님의 눈에 띄었던 것이고 그것이 그대로 치팅으로 간주되었던 모양이다. 어디에서 인용되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슬쩍 써 내려간 글은 절대로 용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

미국의 중고등학교에서는 자주 수업시간에 퀴즈를 본다. 이 퀴즈의 결과는 중간고사 기말고사 성적과 합산돼서 나오기 때문에 상당히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몸이 아파서 학교를 결석하고 난 다음날 다른 친구들이 이미 본 똑같은 문제의 퀴즈를 봐야하는 경우가 있다. 어떤 유형의 문제가 출제 되었는지 친구들끼리 물어볼 수도 있을 것이고 가르쳐 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것은 일종의 치팅으로 간주되고 부당한 방법으로 좋은 성적을 얻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받는다고 했다.

수학문제 한 문제를 더 맞히면 인생이 달라지는 우리나라의 교육의 장에서, 남의 힘을 빌어서라도 번지르르한 숙제와 작품을 내면 수행평가에서 여과 없이 'A'를 받을 수 있다는 우리의 의식구조 속에서 수능 부정은 과연 충격적인 뉴스인가?

뿌리부터 의식의 대전환이 필요할 때다. 우리 모두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현재 교육현장에서 일하고 있음 좀 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사람!

이 기자의 최신기사 아이와 지혜롭게 헤어지는 법

AD

AD

AD

인기기사

  1. 1 "난리도 아닙니다" 농민들이 올해 벼 빨리 베는 이유 "난리도 아닙니다" 농민들이 올해 벼 빨리 베는 이유
  2. 2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3. 3 "X은 저거가 싸고 거제 보고 치우라?" 쓰레기 천지 앞 주민들 울분 "X은 저거가 싸고 거제 보고 치우라?" 쓰레기 천지 앞 주민들 울분
  4. 4 "자기들 돈이라면 매년 수억 원 강물에 처박았을까" "자기들 돈이라면 매년 수억 원 강물에 처박았을까"
  5. 5 지금도 소름... 설악산에 밤새 머문 그가 목격한 것 지금도 소름... 설악산에 밤새 머문 그가 목격한 것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