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새책 14권] 중국, '십팔사략'과 '섹스일기'의 공존

하성봉의 <중국의 하늘을 연다>, 고우영의 <십팔사략(十八史略)> 등

등록 2004.11.23 15:38수정 2004.11.23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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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중국에 관해 알고싶은 모든 것
- 하성봉의 <중국의 하늘을 연다>


일송북
2003년 6월. 한 도발적인 여성이 중국대륙을 발칵 뒤집어놓는다. 잡지사 기자로 일하던 25세의 무쯔메이(木子美)는 인터넷을 통해 65명의 파트너와 나눈 섹스체험을 만천하에 공개했고, 유명 대중가수는 물론, 유부남과의 관계까지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녀의 색다른(?) 일기는 공맹(孔孟)의 나라 중국을 들썩이게 했다. 이는 급변하고 있는 중국 젊은이들의 성관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사소한 생활의 변화에서부터 사상의 변혁까지. 21세기 중국은 끊임없이 그 모습을 바꾸고 있다. 이러한 변화와 변혁의 흐름에 비추어보자면 위에 언급한 '무쯔메이의 섹스일기'는 그 흐름 속에 나타난 사소한 사건의 하나에 불과하다.

현재도 그렇지만 앞으로는 더 밀접한 관계를 맺게될 중국. 우리는 이 나라를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해야할까? 하성봉의 근저 <중국의 하늘을 연다>(일송북)는 위 물음에 대한 답변서로 읽힌다.

<한겨레> 북경특파원으로 3년간 근무한 저자는 기자 특유의 간결하고도 명확한 문장으로 오늘날의 중국을 묘파한다. 한 손에는 펜과 취재수첩, 다른 한 손에는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기록한 중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 책의 곳곳엔 땀 냄새가 배어있고, 그가 흘린 땀은 독자들에게 격변의 중국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중국에 관한 풍부한 정보와 함께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은 '재미'다. 하성봉은 "네 발 달린 것은 책상 빼고 모두 먹는다"는 중국사람들의 왕성한 식욕과 기상천외한 요리, 문도 칸막이도 없이 앞뒤가 모두 트인 엽기적인 화장실 이야기를 너무도 천연덕스럽게 혹은, 유쾌하게 들려준다.

모두 8장으로 구성된 책 중 제4장 '중국은 북한을 들여다보는 창(窓)'과 제7장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읽는 감칠맛과 함께 의미가 만만찮은 글들이다. 이는 하성봉의 중국해석 프리즘이 넓고도 깊음을 반증해준다.



만화로 만나는 대륙의 역사
- 고우영 만화 <십팔사략(十八史略)>



애니북스
초패왕 항우(項羽)는 사면초가(四面楚歌)에 처한 부군의 절망 앞에 자살로써 지조를 지킨 우희(虞姬)를 어떻게 만났을까? 또 목숨을 건 전장(戰場)에서 평생을 함께 한 천하의 명마(名馬) 오추마를 어떤 경로를 통해 얻었을까? 춘추전국시대의 거상(巨商) 여불위는 과연 진시황의 아버지였을까? 아들의 아내(양귀비)를 빼앗아 자신의 첩으로 취한 당 현종의 처사는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사마천의 사기(史記)와 반고의 전한서(前漢書), 준수의 삼국지(三國志) 등 중국 고대사를 다룬 18권의 책을 간추려 편집한 증선지의 <십팔사략>이 고우영에 의해 만화로 재탄생했다. 중국민족 탄생 설화에서부터 문자가 없던 시대인 삼황오제(三皇五帝) 시대를 거쳐, 은-주-진-한-당-송으로 이어지는 중국의 역사를 즐겁게 만나는 기쁨이 크다.

모두 10권으로 제작된 고우영의 <십팔사략>(애니북스)은 작가 특유의 미세한 묘사와 선 굵은 화풍을 만나는 즐거움 외에도 다양한 중국 고대 역사학자들의 각기 틀린 '역사해석 방식'을 접할 수 있는 드문 기회까지 제공한다. 재미와 의미의 효과적인 결합이다.

은나라를 망하게 한 초절정 미녀 달기와 이에 필적하는 경국지색(傾國之色) 서시, 기품과 지조를 겸비한 우희 중 최고의 미인은 누구였을까? 적토마를 몰고 오관을 돌파한 관우와 방천화극을 휘두르던 역사(力士) 여포, 용맹과 덕을 두루 갖춘 조자룡 가운데 으뜸가는 장수는 누굴까? 은나라의 주왕과 주나라 무왕 중 누가 더 인간적일까?

책을 읽다보면 이어지는 의문들이다. 그 의문 속을 헤매다보면 자연스레 중국의 역사와 친해져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역사공부'에 넌더리를 내는 청소년들에게는 선물할만하다.


기억과 지식, 그리고 정보를 둘러싼 모험
- 모의준 장편 <2036 year>


이화문화출판사
2004년 현재 남북한 협력의 한 과제로 논의되고 있는 '신의주 경제특구'. 바로 이 경제특구 신의주가 '통일'이 된 후에는 '정보특구'로 지정되고, 거기서 21세기 중반의 패권을 가지기 위한 세계각국의 쟁탈전이 벌어진다는 가설이 소설화됐다.

'오전 9시, 8번 승강장' '생각의 장난' 등을 낸 바 있는 신예 모희준의 신작 장편 <2036 year>(이화문화출판사)가 바로 그것. 작가는 표제에도 등장하는 '2036년'을 더 이상의 기계적 발달이 정지한 디스토피아로 설정하고, 그 어두운 상황에서 한국 아니, 인류를 구원할 '그 무엇'을 찾아 헤맨다. 소설의 얼개는 일견 리들리 스코트의 영화 <블레이드 러너>와도 닮았다.

<2036 year>에서 모희준이 소설의 주요 모티프로 삼는 건 '기억'과 '지식' 그리고, '정보'다. 아날로그적인 기억이 지식이란 개념을 실체화시키고, 이 지식이 다수가 공유하는 디지털 정보로 변환되는 과정은 이미 우리 삶의 주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작가는 픽션을 통해 독자에게 다시 한번 이 사실을 확인시킨다.

"때론 엉뚱한 상상력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말을 의심해온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으로 다가올 '특별한' SF소설이다.

한 줄 이상의 의미로 읽는 신간들

ⓒ시공아트
박서림의 <나를 매혹시킨 화가들>(시공아트)

오스트리아 빈의 침울한 안개와 눅눅한 바람은 이후 수백 년을 인구에 회자할 천재 화가 에곤 실레를 낳았다. 그렇다면 큐비즘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와 강렬한 색채로 지구상 모든 사람의 눈길을 휘어잡은 빈센트 반 고흐를 있게 한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동국대 강사인 박서림은 위의 질문에 친절하게 답하고 있다. 표지까지 예쁜 책 <나를 매혹시킨 화가들>을 통해서다. 앞서 언급한 화가 외에도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밀레, 세잔과 달리, 로트렉과 모네까지가 그녀 앞에서 벌거벗는다.

고지마 쓰요시의 <사대부의 시대>(동아시아)
명나라 말기의 유학자 황종희는 말한다. "선인의 학설을 자신의 학설처럼 말하는 것은 사기다. 학문이란 스스로 체득하는 것을 소중히 하는 과정이다." 일본의 사학자는 동아시아의 정신사를 어떻게 자기화(化)했을까?

크리스 하먼의 <민중의 세계사>(책갈피)
역사의 수레바퀴 밑에 깔려 신음하면서도 바로 그 역사의 끌어안고자 몸부림쳤던 사람들. 변화와 발전을 거듭한 인류역사의 객체가 아닌 주체로 서려했던 그들의 피와 눈물 어린 수난사.

이석우의 <예술혼을 사르다 간 사람들>(아트북스)
오윤과 최욱경, 박항섭과 박수근, 김환기와 박생광. 불운과 절망의 시대를 극복하고 그림으로 일가(一家)를 이룬 이들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뭔가.

클리포드 비숍의 <성과 영혼>(창해)
섹스란 단순하고 반복적인 피스톤운동이며 사라진 에너지가 어떤 형태로도 복원되지 않는 미망일 뿐인가? '성교'와 '사고(思考)'를 연결 지어 설명하는 저자의 해박함과 독특한 해석력이 놀랍다.

신현림의 <너무 매혹적인 현대미술>(바다출판사)
시인보다는 사진작가, 그보다는 미술에세이를 쓰는 작가로 더 유명한 신현림. 그가 2000년 출간 당시 아쉬웠던 점을 수정-보완해 새로이 묶어낸 동서양 현대미술 산책서.

박찬일의 <브레히트 시의 이해>(연세대학교 출판부)
"가장 위대한 시는 가장 쉬운 시다"라는 진술을 남긴 독일의 희곡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 시인으로도 적지 않은 명성을 날린 그의 작품을 명쾌하게 해부한다.

유이카와 케이의 <백만 번의 변명>(영림카디널)
'가족붕괴'의 흉흉한 소문이 떠돈 지는 이미 오래. 더없이 진부한 질문이지만 부부란 무엇이고, 사랑이란 또 무엇인가?

이생진 시집 <김삿갓, 시인아 바람아>(우리글)
지난해에는 황진이의 궤적을 좇던 원로시인이 올해는 해학을 통해 불운을 조롱했던 난고 김병연(일명 김삿갓)의 삶을 고스란히 시로 옮겼다. 놀라워라 일흔의 정열이여.

정재완의 <광화문 연가>(하늘숲)
서울 한복판 광화문 네거리에서 부채나 액자 따위를 팔고 있는 노점상. 기자도 가끔 본 바 있는 그가 이토록 눈물겨운 문장을 가진 시인일 줄이야. 육체의 쇠락도 태생적인 시심(詩心)은 어쩌지는 못한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안수길의 <호랑이 그림도감>(바다어린이)
조선 사람들에게 '호랑이'란 그저 한 마리의 동물이 아니다. 우람한 몸 속에 위엄과 전설을 동시에 지닌 영물(靈物)이자 이제는 우리 눈앞에서 사라져 더욱 그리운 호랑이를 기껍게 만나다.

中國의 하늘을 연다

하성봉 지음,
일송북,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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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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