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죽이의 귀차니즘을 방법하니 아햏햏하오!

[인터뷰] 디시인사이드 김유식 대표

등록 2004.11.23 16:06수정 2004.11.24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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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C사랑

“3급수 사이트로 남고 싶습니다.”

인터넷에는 청소년 권장 사이트처럼 1급수도 필요하지만 누구나 하고 싶은 말을 맘껏 쏟아내면서 자유롭게 노는 사이트도 있어야 한다는 게 김유식 대표의 생각이다. 조금은 거칠기도 하고 세련되지 않았을 뿐더러 어떤 때는 한없이 유치하지만 디시인사이드(이하 디시)의 그런 자유분방함이 ‘아햏햏’을 낳았고 ‘개죽이’와 ‘딸녀’를 유행시켰다. 디시를 이끄는 김 대표도 더없이 자유롭고 유쾌하다.

“그 점쟁이 참 신통하네”

디시가 문을 연 것은 1999년 10월. 햇수로 5년이 지난 지금은 페이지뷰 3200만 건을 기록하는 인기 사이트로 자리 잡았다. 디시를 중심으로 디지털 카메라와 노트북을 유통하는 디지털디시인사이드도 직원 40여명의 어엿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김 대표는 이 모든 게 “점쟁이 말을 잘 들어서”란다.

“5억원을 투자받아 사무실을 준비할 때 강남 테헤란에 들어가려다 임대료가 너무 비싸 구로공단 근처에 둥지를 텄습니다. 거기서 1년 있다가 강남 입성을 다시 꿈꾸는데 점쟁이가 ‘좀 더 멀리 가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문래동으로 갔지요.”

주문받은 물건이야 택배로 보내면 되고 대부분의 업무를 인터넷으로 처리하므로 사무실 위치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문래동에서 보낸 2년 간 디시는 네티즌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그렇게 회사가 커가면서 협력 업체와 교류가 늘었고 다시 강남 입성을 고민하게 되었다.

“이번에도 점쟁이를 찾아갔더니 ‘가도 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사했습니다. 그새 강남 열풍이 가라앉아 임대료가 많이 싸졌더군요. 덕분에 직원들이 넉넉한 공간에서 여유롭게 일하고 있습니다.”


이사를 가는 데 점쟁이 말만 들었을까마는 그에게는 사실 좀 엉뚱한 구석이 있다. 과거 행적만 봐도 그렇다. 일본에서 3년, 영국에서 1년을 보내며 다른 사람과는 지독히도 색다른 경험을 맛봤다. 일본이야 공부 때문에 맘먹고 건너갔지만 97년 영국행은 쫓기듯 이뤄진 한편의 드라마였다.

“북한 잠수정이 침투한 사건이 터졌을 때예요. 방송 3사가 하루 종일 떠들더군요. 당시 정부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을 때라 ‘이거 뭔가 냄새가 난다’고 PC 통신에 올렸죠. 그랬더니 바로 끌려가서 조사를 받았습니다. 보안법 위반이라나요.”


사업 수완 타고나

특별한 게 없어서 풀려나긴 했지만 ‘조사받았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 나오자마자 통신에 올려버렸다. 그때부터 이상한 전화가 걸려오는데 “이러다 뭔 일 터지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에라, 모르겠다. 잠시 뜨자”며 영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일종의 정치적 망명(?)을 한 것이다. 이왕 간 김에 영어를 배워볼 참이었지만 뜬금없이 카지노만 실컷 보고 돌아왔다.

“영어는 겨우 A, B, C를 떼었지만 도박 산업만큼은 제대로 배웠습니다. 거기서 얻은 괜찮은 사업 아이템이 있긴 한데 바빠서 미루다보니 비슷한 가게가 벌써 생겼더군요. 게임에서 이기면 칩을 주고 이것으로 술을 마시는 근사한 주점을 차릴 생각이었는데…. 현찰이 오가지 않으므로 불법이 아니에요. 합법적인 틀에서 도박도 즐기고 술도 마시고….”

“괜찮은 아이디어죠?”라며 동의를 구하긴 했지만 이미 확신에 찬 눈빛이었다. 도망치듯 떠난 타국에서 일거리를 물어올 만큼 그는 사업 수완이 좋은 편이다. 아이디어도 풍부하고 치밀하다. 일본에 공부하러 가서 돈을 잔뜩 벌어온 것만 봐도 타고난 그의 재주를 짐작할 수 있다.

“한창 때는 눈감고도 PC를 조립할 만큼 컴퓨터 실력이 좋았습니다. 그러다 네트워크에 관심을 갖고 93년 일본 유학을 떠났지만 말만 선진국이지 네트워크 인프라가 우리보다 못하더군요. 그냥 들어올까 생각하다가 돈벌이를 찾아냈지요.”

일본에 나와 있는 IT 제품을 써본 뒤 사용기를 국내 PC 통신에 올려 주문을 받으면 우편으로 보내는 일이었다. 국내 소비자들이 일본 제품을 접할 기회가 적었던 당시에는 괜찮은 아이디어였다. 국제전화로 하이텔에 접속해야 했으므로 전화비가 꽤 나왔지만 일본과 한국의 물가 차이 때문에 이윤이 쏠쏠했다. 주로 하드웨어를 팔았지만 나중에는 게임이나 영화 CD까지 다뤘다.

“어느 날에는 통장에 40만원이 찍혀 있잖아요. 메일을 보니까 ‘사무라이 쇼다운’이라는 게임을 사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한국에도 팔지만 녹색 피가 흘러서 재미없다더군요. 게임을 구해줬더니 이게 소문이 났는지 여기저기서 주문이 쏟아지는데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20대부터 통신판매 시작

비자가 만료될 때까지 그렇게 돈 좀 만졌다. 원하는 공부를 하진 못했지만 일본 생활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나 지났을까, 순탄치 않은 운명이 그를 덮쳤다. 검찰이 대대적으로 음란물 단속을 벌이는 과정에서 그가 유통시킨 만화 CD ‘무사 쥬베이’가 걸려든 것이다. 단지 여자 가슴이 나온다는 이유에서다. 집행유예로 풀려나긴 했지만 변호사를 대느라 돈은 돈대로 썼고 정신적 충격 때문에 직장생활을 온전히 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백수 생활이 시작되었어요. 횡설수설이라는 동호회에 가입해서 술 마시는 것이 전부였어요. 밤이면 나가서 술 먹고 새벽에 들어왔습니다. 다른 일을 할 의욕이 없었어요. 그렇게 한동안 철저히 망가지다가 보안법 위반까지 겹치면서 탈출구를 찾아 영국으로 떠났죠.”

이래저래 다 까먹긴 했지만 그가 일본에서 번 돈은 얼추 수억원이 넘는다. 20대 중반에 거둔 그 짜릿한 성공의 배경에는 90년대 초 PC 통신에서 갈고 닦았던 노하우가 큰 힘이 되었다.

“91년쯤 후배를 따라 용산에 갔을 때예요. 아무 것도 없는 매장에 전화기만 달랑 있는데 메인보드를 아주 싸게 팔더군요. 18만원짜리를 14만원에요. 알고 보니 딜러였어요. 그때부터 딜러가로 물건을 받아 통신에서 팔았는데 약간의 편법을 썼지요.”

편법이란 게 별게 아니다. 여자 이름으로 물건을 내놓은 것이다. PC 통신 이용자가 대부분 남자여서인지 반응이 좋았다. 18만원짜리 하드디스크를 25만원에 선보였지만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아침에 빈손으로 나가 은행 한바퀴 돌면 가방에 현금이 가득할 정도”였단다. 단순히 여자 이름이라고 먹혔을리 없다. 게시판 제목도 기막히게 달았다.

“아침에 출근해서 하루 종일 생각하는 게 제목이었어요. 게시판에 제목을 16자까지 쓸 수 있는데, 어떻게 달아야 많은 사람들이 읽을까 고민했지요. 최저가나 대박세일은 기본이었어요. ‘가격파괴’도 그때 생각했지요. 제목이 좀 튀면 2주 정도는 반짝 효과를 보더군요.”

조연이 주연 눌러

a 디시인사이드 메인화면

디시인사이드 메인화면

그렇게 그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20대 초반 일찌감치 성공을 맛봤다. 뒤이어 일본에서 보낸 화려한 20대 중반. 그리고 이제 30대로 접어든 그가 도전한 것이 디시인사이드다. 하지만 출발은 좀 엉뚱했다. 영국에서 돌아와 사업을 준비할 때만 해도 디지털 카메라는 ‘기타’에 불과했다. 핵심은 노트북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것이었다.

“일본에서 장사할 때는 노트북을 사서 써보고 국내 PC통신에 리뷰를 올려 팔았지요. 그렇게 써본 노트북이 400대 정도였습니다. 이 자료를 모아 99년 10월 노트북인사이드를 열었는데, 아이템이 하나면 허전할까봐 덧붙인 게 디시인사이드였지요.”

노트북이 주연이었지만 조연이 하루아침에 뜨면서 정작 주인공은 찬밥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김 대표도 디지털카메라가 이렇게 폭발적으로 성장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렇다면 디시가 디지털카메라라는 장르를 넘어 젊은이들의 인터넷 문화를 꽃피우는 커뮤니티로 거듭난 힘은 무엇일까?

“PC 통신 초기 시절에는 PC를 잘 다루는 이들이 커뮤니티를 형성했지만 뒤이어 글 솜씨가 뛰어난 논객들이 떠올랐습니다. 컴퓨터 마니아와 논객의 동거는 길게 이어지다가 99년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막을 내렸지요. 이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각자 입맛에 맞는 사이트를 찾아갔지만 논객보다는 PC 마니아들의 방황이 심했습니다. 하드웨어 사이트가 있긴 했지만 PC통신과 다른 분위기여서 정착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그러다가 디지털 카메라가 붐을 이루면서 방황하던 이들은 디시인사이드로 몰려들었다. 통신시절의 아늑하고 자유로운 분위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김 대표가 회원들의 모임에 가서 보면 예전에 나우누리나 하이텔에서 활동했던 PC 마니아들이 적잖았다. 다들 PC를 잘 다루니 그래픽 프로그램도 잘 만졌고, 이들이 그린 그림이 재미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네티즌들이 자꾸 몰려들었다. 사람들이 북적대면서 얘깃거리가 늘었고, 이것이 네티즌 특유의 감각으로 재생산되면서 ‘디시폐인’으로 정의되는 독특한 인터넷 문화가 생긴 것이다. 디시 특유의 말들은 모두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생겨났다.

디시의 주인은 네티즌

“~하오, 라는 독특한 말투를 몇몇 회원들이 쓰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재미있었는지 다른 사람들이 따라하더군요. 아햏햏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 댓글을 쓰다가 오타가 났는지 아햏햏이라는 글자가 올라왔습니다. 이것을 또 다른 사람이 쓰면서 들불처럼 번졌죠. 디시의 유행어는 이렇게 예상치 못한 곳에서 좀 엉뚱하게 생겨나곤 합니다.”

디시인사이드 바이블

아햏햏
1)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에 내는 감탄사(희노애락 모두 포함).
2) 무언가를 깨달았을 때 내는 소리
ex. 너참 아햏햏하구나?

햏자
1) 아햏햏을 수행하는 사람
2) 아햏햏에 입문했지만 아직 득햏을 이루지 못한 사람.

수햏
햏자가 되어 득햏에 힘쓰는 행위

하오체
~했소. ~그렇소. ~알겠소 등의 말투. 득햏의 길을 걸을 때 상대방을 배려함과 동시에 자신을 깎지 않는 오묘한 말투. 예사 높임.

방법하다
1) 위협하다
2) 혼내주다

원츄
1) 당신이 최고다
2) 추천한다

디시폐인
디시 사이트에 파묻혀 세월아 네월아 하는 사람

장승업
득햏의 경지에 이른 자. 취화선이라는 영화에서 득햏의 자태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아햏햏 최고의 득햏자.

개벽이
이룰 수 없는 일을 이뤄내는 犬 혹은 人, 시공을 초월한 얼굴 내밀기를 가능케 하는 犬 혹은 人.

개죽이
개벽이의 동생이자 라이벌
그러나 전혀 예측하지 못할 일도 아니다. 어떤 커뮤니티든 자기만의 색을 띠려는 게 본능이다. 이를테면, 학교 동아리 친구들끼리 옷을 맞춰 입는 것도 공동체 의식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인터넷은 눈에 보이는 게 없으므로 아바타나 글로 대신한다.

“디시는 비회원제여서 아바타를 쓸 수 없습니다. 자연스레 독특한 언어로 회원들이 동질감을 찾아가지요. 다른 커뮤니티와 구별되는 그 무언가를 향한 갈증이 자꾸 새로운 유행어를 만들어냅니다.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우리끼리 통하는 암호가 있다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수많은 네티즌들이 디시에 환호하는 이유는 결국 재미있어서다. 말투도 웃기고 생각하는 것이 독특하니 자꾸 들어오게 되고, 보는 것으로 모자라 댓글을 남기면서 서서히 중독이 된다. 패러디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상대가 유명인일수록 반응은 뜨겁다. 좀 식상하면 또 다른 대상을 만들어낸다. ‘광녀’니 ‘딸녀’니 모두 그렇게 유명세를 치렀다. 컨텐츠의 생산과 소비가 숨 가쁘게 이뤄지는 것이다.

“디시의 생생하고 활기찬 모습은 운영자가 만든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산에 울타리를 쳐놓고 양을 방목하는 게 아니라 양이 움직이는 데 맞춰 울타리를 친다고 할까요. 운영자는 네티즌들이 맘껏 놀 수 있게 멍석만 깔아줍니다. 디시의 주인은 그들이니까요.”

3급수는 영원하다!

김 대표가 디시를 비회원제로 운영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디시의 주인은 네티즌이니까 누구나 쉽게 드나들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예쁜 강아지 사진을 보고 한마디 남기고 싶은데, 회원으로 가입하거나 로그인해야 하는 불편을 주기 싫어서”라는 그의 설명에서 한없는 자유가 느껴진다.

놀이 문화를 스스로 생산하고 소비하면서 즐거움을 좇는 디시의 심장 박동은 도무지 멈출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김 대표는 3급수를 절대 정화할 생각이 없단다. 3급수에서도 물고기는 잘 사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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