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녀들의 투쟁사 무대에 오르다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특별 기획공연 제주 소리굿 '이어도 사나'

등록 2004.11.27 16:00수정 2004.11.2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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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희경

섬이라는 고립된 변방의 역사가 11월 25일~27일 국립국악원 예악당 무대에서 살아났다. 제주 세화리 해녀들의 질긴 삶을 그린 ‘이어도 사나’는 제주 민요와 제주 굿을 엮는 소리굿으로 제주 해녀들의 삶과 애환, 그리고 투쟁을 굿이라는 독특한 형식을 빌어 독특하고 새롭게 그려냈다.

“아~하양 어~허양 어~허요. 여기는 여기는 제주나돈데 옛날 옛적 가거지사에 탐라국으로 이름이 높아 삼신산도 안개나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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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희경

제주도의 명승지를 노래하는 ‘영주십경’으로 극이 시작된다. 아기 홍그는 소리, 너영나영, 뿡뿡머구리배, 촐비의 소리, 걸름발리는 소리 등 제주도의 독특한 민요와 석살림굿, 칠머리 당굿 등 굿 소리가 춤과 함께 어우러져 극의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킨다.

극의 줄거리는 돈을 벌기 위해 타국 일본으로 떠났던 해녀 순이가 결국 빚만 진 채 고향에 돌아와 일본인의 괴롭힘을 당하다 바다에 몸을 던져 죽자 제주 해녀들과 주민들은 억울한 순이의 넋을 달래는 굿을 한다는 내용이다. 굿 속의 굿으로 ‘이재수의 난’이 재현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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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희경

이 공연은 마당극의 대표적 연출가이자 이론가인 박인배(한국민족극운동협회 부이사장)씨가 연출을 맡았다. 마당극 형식을 빌린 음악극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펼쳐 보여 관객의 호응 또한 대단했다. 평소 뮤지컬을 자주 본다는 이길수(34, 건축설계사)씨는 “제주도의 민요를 듣고 싶어 왔는데 제주도의 역사를 함께 볼 수 있어 좋았고, 감동적이었다. 앞으로 국악원에서 이런 공연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내기도 했다.

극 전체를 끌고 갔던 국립국악원 민속악단들은 대부분 경기·서도·남도 명창들이었기에, 제주 토속 민요를 무대에 올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에 박인배씨는 “경기소리, 남도 소리, 서도 소리의 특성을 더 살려 우리 민요의 재창조를 거쳤다. 제주 민요를 잘하시는 분들로부터 질타를 받을 수도 있지만 전체 창작 의도와 주제를 살리는 데 초점을 두었다"며 연출 의도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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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희경

소리극이다 보니, 음악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김회경(오느름국악관현악단장 겸 지휘자)씨의 음악은 작품 전체를 아우르고 때론 휘몰아쳤다. 또 극 중간 중간 관객들의 호응을 끌어내 신나는 노래에서는 박수로 호응하고, 어느새 관객과 함께 하는 열린 구조로 극 전개와 잘 어우러졌다.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으로 이번 무대에서 옥이와 이재수의 역할로 혼신의 힘을 다해 열창을 했던 조주선씨는 "기존에 올려졌던 창극과는 또 다른 맛도 있고 재미도 있었다. 이런 작업이 계속되어서 우리 토속 소리를 발굴해 그 특성들을 잘 살리면 새로운 색깔의 장르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며 작품에 대해 만족감을 나타냈다.

연출, 주제, 음악뿐 아니라 무대 배경과 분장도 조화를 이루었다. 한라산의 사계를 화려한 영상과 절묘한 색깔 변화로 상징적으로 묘사했고, 인물 분장과 의상은 사실적으로 표현하여 배우들의 생동감이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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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희경

최근에 ‘일본군 위안부피해자를 위한 진혼의 춤’을 연출한 김진환(47, 무용단용오름대표)씨는 “우리 민족 정서를 시의적절하게 잘 끌어낸 작품으로 새로운 가무악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호평했다.

국립국악원은 이번 작품을 기획하면서 “앞으로 우리 민족의 역사와 현실, 그리고 미래에 능동적인 공연을 만들어 나갈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번 공연을 출발점으로 하여,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국악원이 국민들 앞에 더 가까이 다가가, 함께 공감하고 누리는 고급 문화의 공간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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