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중궁궐에 떠있는 배 한 척 있으니

<경회루 관람기> 촌놈, 금지구역 경회루에 오르다

등록 2004.11.29 08:17수정 2004.11.29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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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간정사는 우암 송시열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계곡으로부터 흘러 내려오는 물을 대청 밑으로 지나게 해서 연못으로 흘러들게 한 이 건물의 풍경은 독특한 멋과 흥취를 자아낸다.

그러나 평상시 이 건물은 산새들에게만 개방이 허용돼 있을 뿐 사람들에겐 철저히 접근이 차단돼 있다. 가끔씩 이곳에 들릴 때마다 난 늘 이 건물의 안쪽이 궁금한 나머지 깨금발을 하고 담장 너머를 기웃거리다가 하릴없이 발길을 돌린다.


그러던 남간정사가 드디어 지난 10월 우암 송시열의 학문과 사상을 기리는 우암문화제 기간에 그 굳게 닫힌 일각대문을 열어 단 하루 동안일망정 일반에게 자신의 폐쇄된 자아를 내보여주었다. 마침내 남간정사의 진면목을 들여다보게 된 것이었다.

가만히 신발을 벗고 방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그리고 뒷문을 활짝 열어젖힌 다음 연못을 바라보았다. 연못 한복판에 있는 인공 섬에는 가느다란 가지를 치렁치렁 늘어뜨린 왕버들이 홀로 앉아서 무심한 듯 세월을 낚고 있었고, 수면 위에는 새털구름이 노닐고 있었다. <중용>에 나오는 "하늘빛과 구름 그림자가 어울려 함께 배회한다(天光雲影共徘徊)" 구절을 연상케 하는 풍경이었다. 풍경은 전염이 빠르다. 내 마음도 어느 새 평화롭고 고요해졌다.

이번에는 문이란 문을 모조리 닫아걸어 보았다. 창호지를 통과한 빛의 무리가 어두운 방 가운데다 가만히 문 그림자를 음각해냈다. 방안이 더할 나위 없이 아늑해졌다. 남간정사가 지닌 운치란 게 이런 것이었던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본다.

밖에서 바라본다는 것과 안에서 내다본다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 생각했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풍경의 주인공이 되느냐 아니면 여전히 객(客)으로만 머무느냐의 문제일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남간정사의 풍경을 그저 밖에서 바라보기만 했다면 난 여전히 객의 위치에서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한 채 어정쩡한 감수성으로, 건성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이 자리를 떠났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건물의 쓰임새(用)를 체득해 보는 순간 나의 감흥은 한층 고조되었다. 그저 어떤 문화재를 답사하든 간에 내게 그런 순간이 생기길 바랄 뿐이다.

지난 13일 경회루 시범 개방 첫날 첫 관람에 참가했다. 초등학교 5학년 사회책에서 사진을 본 지 거의 40년만에, 경복궁을 드나든지 30여년 만의 일이었다. 그동안 경회루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나 먼 당신'이었다. 황지우 시인이 쓴 <커피자동판매기가 꿀꺽, 침을 삼킨다>라는 시의 한 구절은 "들어갈 수 없는 집; 탑은 우울한 건축이다"라고 규정한다.


그동안의 경회루야말로 그 말에 딱 들어맞는 집이었다. 들어갈 수 없는 집이었으며 따라서 우울한 건축일 수밖에 없었다. 귀하신 몸 경회루는 심지어 날짐승들에게조차 자신을 개방하지 않았다. '지각없는' 새들이 행여나 집을 짓거나 배설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공포에서 2층 바깥 기둥까지를 빙 둘러서 그물을 쳐놓았다.

경회루 전경
경회루 전경안병기
방지(方池)에다 네모난 섬을 3개 만들고 그 중 동쪽에 있는 가장 큰 섬에 웅장한 누각을 지은 게 바로 경회루다. 서쪽에 있는 두 개의 작은 섬은 그냥 나무만 심어 있다. 일설에 따르면 그 두 개의 섬은 연산군이 만들었다는데 만세산이라 부른다.


경회루로 건너가는 돌다리는 세 개가 있다. 남쪽에 있는 다리는 중간에 있는 다리와 북쪽에 있는 다리에 비해 폭을 넓게 하여 임금과 사신들이 다니고 나머지 두 다리로는 신하들이 다니도록 좁게 만들었다.

오전 10시가 되자 50여 관람객은 경회루를 오르기 위하여 흥례문 앞을 출발했다. 3개의 다리 중 가장 북쪽에 있는 다리를 건너 경회루 경내로 들어갔다. 본래 경회루와 그 연못 일대는 경복궁 내전에 딸린 누각이요 정원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내전인 강녕전과 교태전 쪽에서 들어가는 게 정식 경로라고 한다. 돌다리를 건너가자 제일 먼저 돌다리보다 한 단계 높게 한 외벌대 위에 자리한 1층 돌기둥들이 두 눈을 가득 메운다.

누하 돌기둥
누하 돌기둥안병기
바깥 둘레에 서 있는 네모난 돌기둥이 스물 네 개고 안쪽에 돌로 된 두리기둥들이 스물 네 개다. 이 돌기둥들은 모두 위가 좁고 아래로 내려올수록 넓은 민흘림기둥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아래 층 바닥은 전면에 방전(方塼)을 깔았다. 옛날 방전은 표면이 약간 거칠면서 쥐빛이었다고 하는데 지금 깔아놓은 방전은 검은 빛이 짙고 반지르르해서 햇빛을 반사해 버린다. 그러다 보니 가벼워 보이고 깊은 맛이 없는 게 흠이 아닌가 한다.

돌난간 동자 법수에 새겨진 불가사리. 화재를 막으려는 뜻이다.
돌난간 동자 법수에 새겨진 불가사리. 화재를 막으려는 뜻이다.안병기

선착장 옆 돌난간에서 바라본 만세산
선착장 옆 돌난간에서 바라본 만세산안병기
경회루가 있는 섬 서쪽 돌난간을 따라가다 보면 그 중간에 난간이 끊긴 곳이 나오고 거기 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배를 타는 선착장이라고 한다. 연산군은 경회루 연못에 임금이 타는 배인 용선(龍船)을 띄우고 놀았다고 한다.

2층으로 올라가는 게단
2층으로 올라가는 게단안병기
누 이층으로 올라가는 층계는 남쪽 끝 간의 동편과 서편 첫 째 간에 하나씩 두 틀이 있는데 목조계단이다. 우리가 올라가는 층계는 서편 첫째 간에 있는 것이다. 여기에 이르러 문화유산 해설사는 관람객에게 종이 가방을 하나씩 나누어준 다음 그 안에 신발을 넣으라고 한다. 이제부터 누 안으로 직접 들어가는 것이니 더욱 더 근신하게 행동하라는 뜻이다. 하나 둘씩 층계를 올라가기 시작한다. 약간 급경사가 지고 층계가 높긴 하지만 좌우로 난간이 있어 염려할 정도는 아니다.

2층 우물마루
2층 우물마루안병기
경회루 2층은 마루를 깔았는데 바닥 높이가 3단으로 되어 있다. 마루는 정면 7간 측면 5간해서 모두 35간인데 그 가운데 중앙에 있는 3간이 가장 높다. 그 3간을 둘러싼 12간은 한 뼘 남짓 낮고 가장 바깥을 두른 20간이 그보다 한 뼘 쯤 더 낮다. 이렇게 높이가 달라지는 경계 구역에다 한 번 젖혀 들어올리게 되어 있는 분합문을 달아 놓았다.

분합문을 내리면 그 안은 닫힌 방이 되고 들어올리면 터진 마루가 되어 한 공간으로 쓸 수 있게 되어 있다. 분합문을 단 문얼굴 위는 교창처럼 살대를 구성하고 거기에 한지를 발라 마감하였다. 중앙의 높은 자리는 당연히 임금의 자리요, 다음, 그 다음으로 내려오면서 지위에 따른 차등을 주어 자리를 정했다.

2층 평면도.2000년 문화재청 발간 <경회루> 책자에서.
2층 평면도.2000년 문화재청 발간 <경회루> 책자에서.안병기
이러한 경회루의 구조는 단순히 왕의 권위와 위계질서를 드러내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고종 때 사람 정학순이 쓴 <경회루전도>에 따르면 거기엔 주역의 원리 즉 우주의 이치를 내재하고 있다고 한다. 중앙의 가장 높은 3간은 정당(正堂)으로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를 상징하고 그 구간을 구성하는 기둥 여덟 개는 팔괘를 나타낸다.

그 다음 12간은 정당을 보조하는 헌(軒)으로 1년 열두 달을 상징하며, 기둥 16개에는 각 기둥 사이에 네 짝 문이 달려 있으니 이것은 64괘를 이룬다. 가장 바깥의 20간은 회랑(廻廊)으로서 기둥이 모두 24개인데 이는 24절기를 상징한다. 이밖에도 기둥의 길이, 서까래 수효와 다리, 연못의 형상에 대해서까지도 주역의 숫자를 들어 풀이하고 있다.

기둥 사이를 장식한 낙양각
기둥 사이를 장식한 낙양각안병기
바깥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낙양각이 장식해 마치 액자의 테두리처럼 만들어 밖으로 보이는 경치를 한 폭의 그림으로 펼쳐 보인다. 낙양각이란 기둥 상부의 측면이나 창방 밑을 파련각(波蓮刻)으로 목각하여 돌려 붙인 것을 말한다. 이런 낙양각이나 계자난간은 경회루라는 근엄한 얼굴을 지닌 건물의 표정을 풍부하게 바꿔 놓는다.

경회루 2층에는 벽이 없고 문과 창도 없다. 누에 오른다는 것은 시야를 멀리까지 확보하기 위한 것인데 시선이 막히면 안 되기 때문이다. 누란 본디 자연 풍경을 넓고 멀리까지 대응적 자세로 바라보며 사유하는 장소가 아니던가.

2층에서 바라 본 근정전
2층에서 바라 본 근정전안병기

2층에서 바라 본 만세산. 그 너머가 인왕산이다.
2층에서 바라 본 만세산. 그 너머가 인왕산이다.안병기
누에 오른 왕은 시선을 어디에다 두었을까. 마음이 심란한 날엔 어쩌면 왕은 수면의 움직임에 눈길을 주었을 같다. 그 고요한 움직임에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말이다. 마음이 외로운 날엔 어디를 바라보았을까. 근정전 너머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는 저자 거리나 멀리 육의전 쪽으로 눈길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아마도 아침에 물안개 피어오르는 시간과 저녁에 인왕산으로 해가 넘어갈 적에 경회루가 가장 아름다우리라.

이렇게 해서 약 40여 분 간에 걸친 경회루 관람은 끝이 났다. 총체적으로 정리하자면 경회루가 있는 방지의 길이는 남북으로 113m이고 동서로 128m이다. 호안(護岸)은 두께가 40cm 가량 되는 장대석을 사용했다. 경회루가 서 있는 네모난 섬은 동쪽 호안에서 9.36m 떨어져 있으며 그 넓이가 동서로 38.98m이고 남북 길이가 50.42m이다. 그 섬에 정면 7간, 측면 5간 해서 35간이나 되는 2층 누마루 집을 세운 것이 경회루다. 경회루는 그렇게 한 척의 배처럼 연못 위에 떠 있다.

2층 누각을 받치는 돌기둥 숲을 헤치고 밖으로 나왔다. 돌다리를 건너와 다시 한번 돌아서서 돌기둥들을 바라보았다. 모든 건축물에는 그 구조를 지탱하는 기둥이 있다. 경회루에는 모두 돌기둥 48개가 있다. 사람도 일종의 건축물이라면 나라는 一物을 받치는 기둥은 몇 개나 될까. 내 삶을 지탱해주는 관계 혹은 기둥을 생각하며 경회루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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