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 전 국회의장오마이뉴스 이종호
필자는 박정희 의장의 방일 방미 장면이 드라마에 방송되는 내내 이만섭씨와 대비되는 한 인물을 머리 속에서 지울 수 없었다. 그는 다름 아닌 한양대 리영희 명예교수.
1957년 같은 해에 언론사에 입사하여 언론인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이만섭과 리영희는 박정희 정권 초기, 직필로 정권으로부터 미운털이 박혔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만섭이 동아일보 주일특파원으로서 박정희의 심기를 거슬렀다면, 리영희는 박정희-케네디 회담 당시 합동통신사 소속 방미 수행기자단의 일원으로 박정희의 심기를 거스른 인물.
그러나 그런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은 일찌감치 미운털을 뽑아내고 일신의 보전을 통해 평생을 양지에서 지낸 반면, 한 사람은 미운털을 훈장처럼 박아넣은 채 일생을 꼿꼿하게 음지에서 살아왔다.
두 사람의 대조적인 인생이 보는 이에게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박-케네디 회담 당시, 박 의장의 수행기자였던 리영희의 송고 기사는 박-케네디 회담의 성과를 과대 포장하여 송고하는 다른 수행기자들의 것과 판이했다. 소속사인 합동통신사 데스크가 고민에 빠졌던 것은 당연한 일. 결국 그는 수행 중 본국 소환이라는 전대미문의 사태에 직면하고, 박정희 귀국 후에는 '방미 성과 보고 리셉션'에서도 제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