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방지법안은 국회 정보위까지 통과해 입법 직전까지 갔으나 인권침해 소지에 대한 비판이 거세 법안제정이 무산됐다.인권위 김윤섭
테러방지법안은 한국 정부의 이라크 파병에 따른 국내 테러 위협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다시 등장했다. 수정 제출된 테러방지법안 역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결국 국회 정보위까지 통과해 입법 직전까지 갔지만 다시 무산됐다. 이 법안은 테러 위협을 명분으로 여전히 되살아날 가능성이 남아 있다.
현재 인권 문제와 관련한 입법 활동 가운데 가장 중요한 현안은 국가보안법이다. 1948년 제정된 국가보안법은 일제시대 치안유지법에 뿌리를 둔 것으로 1953년 형법 제정 때도 국가보안법 폐지를 놓고 논란이 일어 태생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동안 국가 권력은 국가보안법을 자의적으로 적용해 국민의 인권과 존엄성을 침해해 왔고 법 자체도 인권 침해 소지가 있어 끊임없이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제2~4조(반국가단체), 7조(찬양·고무), 10조(불고지)는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되고 양심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악법 조항으로 거론됐다.
지난 4월 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가보안법 폐지 또는 개정을 주장하는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면서 폐지 움직임은 힘을 받았다. 2004년 8월 국가인권위의 폐지 권고에 이어 9월에 노무현 대통령의 국가보안법 폐지 발언이 있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현존하는 북한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국가보안법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폐지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21세기 들어 새롭게 부각하는 인권 현안의 하나는 북한 인권 문제다. 2002년 3월 15일 탈북자 최명섭씨 일가족을 비롯해 25명이 주중 스페인 대사관에 진입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이 사건은 탈북자들이 유럽연합(EU) 의장국을 맡고 있는 스페인 대사관을 선택한 점과 한 가족의 범위를 넘는 집단 망명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탈북자 문제의 심각성을 국제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 해에 이어 올해에도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북한 인권 결의안을 채택했고, 이 결의안에 따라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이 임명됐다. 또한 미국은 최근 북한인권법을 제정했다.
소수자 활동, 일보 전진
지난 3년 간 쟁점으로 제기된 인권 문제를 살펴보면 그 변화를 알 수 있다. 그것은 소수자 인권 문제가 점차 우리 사회의 주요 인권 현안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 소수자 인권 문제는 그전에도 '존재'했으나 '인식하지 못한' 문제들이다.
이주 노동자 문제는 지난 3~4년간 산업연수생 제도의 인권 침해와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불법체류자)에 대한 대책, 고용허가제의 실시와 노동비자를 요구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집단 농성, 그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으로 요약할 수 있다.
중소기업의 인력난 해소를 목적으로 도입한 산업연수생 제도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에 입국하기 위해 엄청난 뒷돈을 들여야 하는 송출비리를 낳았다. 다시 그 돈을 갚으려는 연수생들의 근무지 이탈이 확산하고 불법체류가 일반화하면서 임금 체불, 노동 착취, 비인간적 대우라는 인권 침해문제로 불거졌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2003년 1월 "2004년 1월부터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고용허가제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계의 반발과 야당의 반대로 산업연수생 제도를 존속하는 고용허가제 법안이 통과됐다. 이후 정부는 4년 이상 장기 체류자에 대해 자진출국을 유도한 후 대대적인 단속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단속 기한이 점차 가까워지자 이주 노동자들이 자살하는 사건이 잇따랐다. 지난해 1월 11일에는 스리랑카인 치란 다라카(31)가 지하철역에서 전동차에 뛰어들었고, 12일에는 네팔인 비쿠(34)가 공장에서 목을 맸다.
한편 2003년 8월 17일 고용허가제가 실시돼 이주 노동자도 최저임금과 노동3권을 보장받는 한편 급여 외에 퇴직금이나 연월차 수당, 각종 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현대판 노예제도라고 불리는 산업연수생 제도가 그대로 유지되면서 인권 침해 문제는 여전히 불거지고 있다.
이주 노동자 문제가 제도 개선을 통해 일단이나마 진정된 데 비해 여전히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편견과 싸우는 소수자들이 있다. 성적 소수자들도 그런 경우다. 성적 소수자 인권 문제와 관련해 '엑스존'에 대한 행정소송 사건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2002년 1월 동성애자차별반대공동행동은 동성애자 사이트인 '엑스존'을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결정한 정보통신윤리위원회와 이를 고시한 청소년보호위원회를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엑스존을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인정할 경우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개인의 인격권 및 행복추구권, 동성애에 대한 표현의 자유나 알 권리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이 재판은 성적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정식으로 다룬 재판 중 하나로 기록됐다. 2002년 6월에 열린 제3회 퀴어문화축제는 최초로 정부의 지원을 받는 공식행사로 확대됐다. 원내 정당인 민주노동당도 올해 9월 '성소수자위원회'를 발족하고 성적 소수자들의 인권 문제에 적극 대처하기로 했다.
그러나 지난해 4월 한 십대 동성애자가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성적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 문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정책적 배려가 아쉬운 것은 비단 성적 소수자 문제만이 아니다. 장애인들의 인권 또한 점검해야 할 주요 과제다. 장애인 인권 문제 중 사회 쟁점으로 부각한 내용은 이동권 보장이었다.
2001년 1월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사건과 2002년 5월의 발산역 리프트 추락 사고는 장애인들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시스템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보여 주었다. 이를 계기로 장애인 인권단체들은 '장애인이동권 쟁취를 위한 연대회의'를 구성하고 헌법소원, 국가인권위 진정, 수십 차례에 걸친 버스 타기와 같은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그 결과 2004년까지 모든 역에 장애인용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장애인을 위한 무료 셔틀버스, 심부름센터, 휠체어 콜택시를 도입하겠다는 서울시의 약속을 받아 냈다. 올 들어 건설교통부는 교통시설과 교통수단에 교통약자를 위한 편의시설 설치를 의무 규정으로 하는 내용의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제정안을 마련한다고 밝혔다.
정보인권, 새롭게 부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