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송년회 어떨까요?

미리 가보는 2004 송년회, 그 유쾌한 상상

등록 2004.12.02 01:11수정 2004.12.14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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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이 되니 달랑 한 장 남아있는 달력에 공연히 마음이 허전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하나 둘 잡히는 송년회를 기대하게 됩니다.


해마다 다가오는 연말이겠거니와 또 의례히 하는 연례행사처럼 참석하던 송년회. 그 많은 모임 중에서 가장 유쾌한 송년회였고, 올해 역시 기대하는 송년회가 있습니다.

우리 모임의 이름은 '삼사회'. 본래 여자들끼리 모임에서 발전하여 이제는 부부 여덟 쌍의 모임이 되었습니다. 나이 서른 중반 혹은 마흔이 넘어 만난 우리들, 나이가 오십이 넘고 육십이 넘어도 영원히 30-40대처럼 살아보자고 어느 회원이 이름을 붙인 모임입니다. 벌써 이 모임을 시작한 지 10여 년이 흘러 이젠 40-50대가 되었습니다.

여느 부부들의 모임들이 그렇듯 특별히 요란하거나 화려하지는 않지만 우리 모임 회원들이 이 모임을 특별하게 지내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첫째 이유는 아내들을 제치고 남편들끼리 우정이 더 돈독해졌다는 것이고 둘째 이유는 우리끼리 마냥 즐겁다는 것입니다.

a 벌써부터 '유쾌한 상상'에 빠지게 하는 우리 모임의 회원들입니다.

벌써부터 '유쾌한 상상'에 빠지게 하는 우리 모임의 회원들입니다. ⓒ 허선행

잠깐 우리의 '마냥 즐거운' 시간들을 잠시 들춰볼까 합니다. 여러 번 모임이 있었지만 가장 유쾌했던 모임인 지난 연말의 송년회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한 사람 한 사람 한 해 동안 잊지 못할 일을 소개하며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노래를 한 곡조 뽑기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며 송년회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특별히 사회자가 없는 그 자리에서 자칭 '사회자'라 말하던 분이 말을 꺼냈습니다.


"나는 올해 건강해지려고 운동을 하느라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랬더니 배에 王자가 생기더군요. 한 번 보여드릴까요?"

'과연 사실일까' 갑자기 조용해진 가운데 그의 배를 주시하던 우리들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뒹굴고 말았답니다. 땅바닥을 치며 웃는 사람, 너무 웃어 눈물까지 흘리는 사람, 소리를 치는 사람….


사실은 그러했습니다. 중년 남성의 그 남산만한 배 한 귀퉁이에 볼펜으로 王자를 그려온 것입니다. 그 송년회에 참석한 이들을 웃기기 위해 아무도 모르게 준비를 하고 왔던 것입니다.

일 년 내내 그 생각만 하면 웃음이 절로 나서 슬며시 입가에 미소를 짓게 된답니다. 어쩌면 한해 웃을 웃음을 그날 다 웃었을지도 모릅니다. 경제가 어려워 웃을 일도 적어지고 자꾸 줄어드는 씀씀이는 어쩔 수 없지만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 줄 생각을 하면 어떨까요?

무엇보다 이 모임의 송년회가 기대되는 것은 부부가 함께 하는 시간이라는 사실입니다. 올해는 각자 배우자에게 서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사랑의 편지'로 써 보자고 했습니다. 평소에 하고 싶지만 쑥스러워 못했던 말을 편지로 써 보자는 것입니다.

우리 남편은 생전 편지라고는 안 써봤다는 둥 무슨 말을 써야 할지 지금부터 걱정이라는 둥 핑계를 늘어놓지만 결코 싫지는 않은가 봅니다. 송년회 이후 부부금슬이 더 좋아질 테니까요.

올 한 해는 여느 해보다 우리 모임의 회원들에게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고이 키운 딸 혼사를 앞둔 집, 시아버님이 돌아가신 집, 딸의 임용고사를 앞둔 집, 건물을 짓느라 바쁜 집, 아들이 팔을 다쳐 깁스를 한 집, 시아버님이 암으로 투병 중인 집, 남편이 0.5밀리미터만 종양이 컸어도 암이 될 뻔 했다고 안도의 숨을 쉬는 집, 아들이 좋은 직장에 취직한 집, 늦둥이 아들의 돌잔치를 한 집, 운동에 열중하는 집.

이번 송년회에서는 함께 슬퍼하고 함께 애태우고 함께 기뻐하며 보낸 한 해를 다시 한 번 반추하고 마무리하려 합니다. 나누어서 반이 되었던 슬픔과 나누어서 배가 되었던 기쁨을요.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따로따로 하는 송년회, 술에 흥청망청 찌들어버리는 송년회가 아니라 부부가 함께 참석하여 정말 편안하게 웃고 즐길 수 있는 송년회, 그 웃음 속에서 한 해를 마무리할 수 있는 송년회는 어떨까요? 또, 꺼내기 쑥스러운 말들을 편지에 옮겨 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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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부터 시작되는 일상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로부터, 현직 유치원 원장으로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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