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바다에서 건져 올린 게인권위 김윤섭
자명종 소리에 깨어 여관을 나선다. 해양경찰서에 들러 출항신고를 마친 뒤 저인망 복성호에 승선하자 새벽 3시. 먹빛 바다를 향해 뱃머리를 돌리는 순간 선원들은 약속이나 한 듯 고물 쪽 선원식당으로 들어간다. 반 평이나 될까, '소꾸도'라는 식당 안은 새벽바다를 가르고 있는 복성호와는 대조적이다. 먹잇감을 찾아 어선은 눈에 불을 켜고 항해 중이나 선원들은 부족한 잠을 보충하느라 앉은 채 석고상이 되어간다.
선원식당을 나와 찾아간 곳은 선장실. 어제 잠깐 얼굴을 익힌 바 있는 선장 박상조(53)씨는 한 사건으로 현재 재판에 계류중이다. 지난 6월 19일 자신이 몸담고 있는 복성호에서 조업하던 중 사고가 발생했는데, 비트(어망줄을 고정시키는 쇠갈고리가 달린 막대기)를 책임지고 있던 중국인 선원이 그물을 올리는 도중 그만 로프에 휩쓸려 수장되고 만 것이다.
“요즘 머리가 아파. 며칠 후면 판결이 나겠지만 선장 혼자서 어떻게 아홉 명을 책임지라는 것인지…. 경찰서로 검찰청으로 불려 다니는 건 선장이지만 내가 없으면 아홉 명의 식구(선원)들이 손을 놓아야 해.”
새벽 3시에 깨어나는 바다
듣고 보니 변명은 아니다. 선원들이 잠들어 있는 동안 선장은 고기 밭을 찾아 바다를 헤매고 있다. 또한 싹쓸이 저인망(바다 밑바닥으로 끌고 다니며 깊은 데 사는 물고기를 잡는 그물)은 자망(그물을 길게 쳐서 그물코에 물고기가 걸리게 하여 잡는 그물)과 달리 한 번의 선택이 그날의 어획량을 보장한다. 그러므로 모든 책임은 선장의 몫이다. 어획량이 밑바닥을 칠 때 선원들의 실망 섞인 눈빛도 눈빛이거니와 그 모든 책임을 지고 선장은 키를 놓아야 한다.
현재 속초에서 감포까지 저인망 어선은 44척. 그중 죽변은 6척의 저인망이 조업 중이다. 그나저나 최근 들어 저인망을 바라보는 정부와 수산 관련 학자들, 환경단체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물고기의 씨를 말려 생태계를 위협하는 싹쓸이 어선이라는 점이 그 이유다.
그래서 내놓은 정부의 방침이 저인망 어선 감축. 정부는 어선 감축 정책의 일환으로 저인망 1척당 2억원을 제시하고 있으나 선주들은 입질조차 하지 않는다. 정부와 학자들, 환경단체의 의견을 인정하지만 3억5000만원은 돼야 협상에 응하겠다는 것이 선주들의 입장이다.
박상조씨는 여기에 대해서도 한마디 덧붙인다. “선주들이야 배를 팔면 그만이지만 그럼 우린 뭐가 되는 거요? 이 배에 타고 있는 선원들만 보더라도 이곳 죽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소. 속초에서 내려온 사람들과 한족 선원들이 전부란 말이오.”
선장이 말하는 10명의 선원들이란 이렇다. 선장을 머리로 기관장, 갑판장, 주방장에 이르기까지 장급 선원만도 4명에 이른다. 숫자적인 분류는 그것만이 아니다. 가장 실질적인 임금문제에 다다르면 등급의 분류는 확연해진다. 도급제로 시작해 도급제로 막을 내린 광부들처럼 선원들 사정도 오십보백보다.
그날의 어획물에 따라 각자 손에 쥐는 돈의 액수는 달라질 수 있겠으나 하나의 원칙 만큼은 영구불변이다. 그날의 어획물 중 기본 경비(기름, 숙박비 등)를 먼저 감하는 계산법은 선주 50%, 선장 15%, 기관장 13%, 갑판장 12% 선이다. 그러니까 선주와 장급선원의 몫을 제외한 돈으로 나머지 선원들의 몫을 분배하는 셈이다. 여기에 예외적인 인물이 있다면 바로 중국이나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에서 온 이방의 선원들이다.
바다가 삼킨 목숨들
저인망 한 척에 3명까지 승선이 가능한 외국인 선원들에 대해서는 월급제를 실시하고 있다. 그중 중국인 선원을 예로 든다면 그들은 본국에서 2주간의 선원 연수교육을 마친 후 송출회사를 통해 한국에 입국, 3일간의 소정교육을 끝으로 이국에서의 선원생활이 시작된다. 그러나 이삼십대의 이들이 본국을 떠나올 때 치러야 하는 돈은 만만치 않다.
본국의 송출회사에 바쳐야 하는 액수는 한국돈으로 350만원에서 500만원. 2년 만기로 1년을 더 연장할 수 있는 이들은 삼겹살 한번 배불리 먹을 수 없다. 연수기간인 1년은 본국을 떠나올 때 빌린 돈을 갚느라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