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옷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습니다

등록 2004.12.07 16:03수정 2004.12.10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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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우리 식구들에게는 때맞춰 옷이 생깁니다.

우리 식구들에게는 때맞춰 옷이 생깁니다. ⓒ 송성영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하면서 우리 부부는 아이들 옷 걱정을 시작했습니다. 아이들 크는 게 다 그렇듯이 매년 이맘때면 좀더 두툼한 옷 걱정을 하게 됩니다.


우리 집에서는 아이들에게 옷을 사 입힌 적이 거의 없습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아내가 직접 옷을 해 입히기도 했습니다. 만들어 입히기 어려운 두툼한 옷들은 사촌들로부터 물려받거나 더러는 명절을 기해 일 년에 한 벌 정도 사 입히기도 합니다. (우리식구가 어떻게 입고 사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얘기는 '생활비 60만원으로 어떻게 입고 사나'라는 제목으로 <오마이뉴스>에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아내에게는 본래 재봉틀이 두 대나 있었습니다. 장모님이 사용했던 아주 오래 된 재봉틀과 70년대 봉재 공장 누이들이 잔업수당도 제대로 못 받아가며 밤낮으로 돌려댔던 골동품에 가까운 '봉재 공장 재봉틀'이 있었습니다.

그런 아내에게 얼마 전 새 재봉틀이 하나 생겼습니다. 우리 집에 찾아오던 어떤 분이 아내의 오래된 재봉틀에 감격(?)해 자신의 집에서 숨죽이고 있던 새 재봉틀을 선물로 가져왔던 것입니다. 그 재봉틀은 예전에 아내가 사용했던 두 대의 재봉틀의 기능을 합친 최신식 재봉틀이었습니다. 물론 예전에 사용하던 두 대의 재봉틀은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줬습니다.

아내는 폐품 직전의 어른들 헌옷을 얻어오면 사정없이 가위질해 팔 다리 소매를 잘라내고 줄이고 봉합하여 아이들에게 전혀 새로운 옷을 만들어 입히곤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부터 고민거리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내가 만든 옷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부쩍부쩍 자라나는 아이들의 몸매나 눈썰미를 따라 잡을 수 없었습니다. 봄이면 봄옷이 필요하고 여름이면 여름옷이 필요했습니다. 사계절 새로운 옷이 필요했습니다. 1년이 지나면 더 이상 아이들의 몸에 맞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계절이 돌아오면 그때마다 여지없이 옷이 생겨났습니다. 올 봄에도 전혀 예상치 못한 옷 보따리가 굴러 들어왔습니다. 대전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는 분이 옷을 보내왔던 것입니다. 그 분들과 잘 알고 지내는 사이도 아니었습니다. 어쩌다 1년에 서너 차례 얼굴을 마주 대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 분들에게는 우리 집 아이들보다 두 살 많은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입던 옷을 불쑥 가져왔던 것입니다. 우리 부부가 아이들에게 헌옷을 입히고 있다는 입 소문을 접했던 모양입니다. 보따리를 풀어 보니 마루에 한가득이었습니다. 거의 다 새 옷이나 진배없었습니다.


a 우리집 아이들은 무릎이 다 헤질때까지 옷을 입고 다니곤 합니다.

우리집 아이들은 무릎이 다 헤질때까지 옷을 입고 다니곤 합니다. ⓒ 송성영

올 가을에도 역시 무릎이 다 헤진 아이들 바지를 보면서 은근히 걱정을 했습니다. 아이들 가을 옷이며 겨울옷을 사 입혀야 하는가, 여러 날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하늘은 우리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아이들 옷 보따리가 거짓말처럼 우리 집 마룻바닥에 뚝 떨어졌습니다.

고종사촌 형님 댁에서 갑자기 옷을 한 보따리하고도 더 많이 보내주셨던 것입니다. 조카들이 입었던 옷이었습니다. 내년 봄까지 걱정 없이 입을 수 있는 옷들이었습니다. 보따리 속에는 겨울 신발도 있었습니다. 신발 중에는 축구화도 있었습니다. 통나무집 짓는 장난감도 있었습니다. 책도 있었습니다. 없는 거 빼놓고 다 있었습니다. 쓰던 물건이라서 주시는 분들은 미안해했지만 우리에는 너무나 고마운, 그야말로 하늘에서 보내온 물건들이었습니다.

이럴 때마다 입버릇처럼 아내에게 던지는 말이 있습니다.

"거봐라, 비워져 있으니께 하늘에서 다 채워주시잖어."
"에이그 또 그 사이비 교주 같은 소리."

사이비 교주 같은 헛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비워지면 반드시 채워지기 마련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모든 것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연결되어 있다면 비워져 있는 부분은 반드시 채워질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고종 사촌형님 댁에서 아이들 옷을 받기 이전에 지리산 칠백 고지 고운동에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옷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비교적 깨끗하게 입던 옷이며, 누군가에게서 물려받은 옷 중에 우리 집 아이들 몸에 맞지 않은 옷들을 보따리, 보따리 싸 보냈습니다. 그 부모님은 헌옷을 받고 지리산 밤을 한 상자 보내오셨습니다.

우리 부부는 고마워하는 그 부모님들이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헌옷을 보내고 나서 요즘 헌옷 받고 기분 좋아하는 젊은 부부들이 드물다며 아내가 내심 걱정했었거든요.

생각해보면 고종사촌 형님 댁에서 보내온 그 옷들은 우연이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가 지리산으로 보낸 바로 그 옷들이 다시 우리 집 아이들 크기에 맞게 되돌아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고 있으니까요.

옷에는 만든 이의 정성이 베어 있다고 합니다. 또한 누군가 입었던 옷에는 입었던 사람의 기운이 배어 있을 것입니다. 우리 집에 보내온 옷의 주인들은 아주 착한 아이들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옷만 얻은 게 아닙니다. 그 착한 마음까지 덤으로 얻은 셈입니다. 옷 주인의 착한 마음과 함께 그 부모의 베푸는 마음까지 곱으로 얻은 셈입니다. 그러니 이 옷이야말로 하늘에서 내주신 옷이 아니겠습니까?

욕심내서 좀더 넓게 생각해 보면 그 옷은 재활용되는 순간, 그만큼 자연을 살리는 옷이 된다고 봅니다. 주신 분들도 자연을 살리는 것이고 받는 사람들 역시 자연을 살리는 것이라고 봅니다. 무엇이든 우리가 쓰고 있는 것들은 그만큼 자연을 꾹꾹 눌러 짜서 나온 것이니까요.

흔히들 의도하지 않는 큰 일이 생겼을 때 기적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나는 헌옷이 생길 때마다 기적이 일어났다고 여깁니다. 내게 있어서 기적은 헌옷처럼 사소한 것이지만 꼭 필요한 그 어떤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기적은 매일 같이 일어납니다. 매일 먹는 밥과 반찬이며 방을 따뜻하게 하는 장작불, 하늘과 땅 사이에서 아주 사소하게 만나는 모든 것에서 일어납니다. 기도 끝에 갑자기 불치병이 낳는다거나 하는 것만이 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모든 것들은 이미 기적이라고 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침 해가 뜨고 저녁이 되면 해가 지고 봄이면 새싹이 돋고 여름이면 꽃이 피고 가을이면 열매를 맺고 눈에 보이는 삼라만상 온갖 것들이 기적이라고 봅니다. 하늘이 주신 모든 것들은 이미 기적이라고 봅니다.

욕심을 버리는 순간 모든 것이 기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욕심을 앞세워 기적을 바라면 그때부터 고통이 따르는 것 같습니다. 헌옷이 생기는 일처럼 아주 사소한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기적'에 눈을 돌리면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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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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