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원 없어 교육환경 열악한 장애인야학

등하교 지원, 시설과 교사 수 확대 요구

등록 2004.12.07 14:58수정 2004.12.07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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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장애인교육권연대가 지난 10월 18일부터 11월 12일까지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벌인 천막농성의 결과물 중 하나로 서울 구의동의 노들장애인야학은 내년 예산 5천만원을 지원받게 됐다. 현재 노들장애인야학생들은 가장 시급한 지원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지난 3일 노들장애인야학을 찾아봤다.

비록 분필가루 마시며 수업하지만 눈망울은 '또랑또랑'

6평 남짓 되는 작은 교실. 20대 초반의 야학교사가 청색 칠판 앞에서 분필가루를 마시며 일제시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군데군데 구멍 뚫린 벽에 걸린 시계는 밤 9시를 가리키고 있지만 전동휠체어와 수동휠체어를 타는 7명의 학생 중 졸거나 하품하는 사람은 없다.

전국 장애인야학교 중 큰 규모에 속하는 노들장애인야간학교 수업은 이렇게 또랑또랑한 눈망울과 열악한 학습 환경으로 상징화된다.

전국에서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장애인야학은 노들장애인야학과, 대전, 대구, 부산 등에 각각 하나씩 해서 4개 정도를 꼽을 수 있지만 대부분 상황은 비슷하다.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야학치고 교실은 작고 학생 수는 적다. 더욱이 따로 기자재를 필요로 하는 청각이나 시각장애 학생은 찾아 볼 수조차 없는 것이 현재 우리나라 장애인야학의 현실이다.

그렇지만 많은 장애학생들은 이러한 불편을 감수하고 졸업장을 따내고 검정고시에 도전하고 있다.


한글도 깨우치고 자립심도 키우고

노들장애인야간학교에서 첫 수업을 들을 때 한글조차 몰랐다는 이흥섭(34ㆍ지체1급)씨는 올해로 7년째 학교에 다니고 있다. 처음 야학을 찾았을 때와는 많은 것이 변했다. 책을 읽을 수 있게 됐고, 검정고시이지만 중고등학교를 마쳤고, 올해에는 대학수학능력평가 시험도 치렀다. 수업이 없는 낮 시간에는 정립회관 자립생활센터에서 자립생활 교육과 활동보조인 교육도 맡고 있다.


이씨는 28살 때 조치원에서 서울 쌍문동으로 독립했다. 집에 처음 독립을 선언했을 때 능력도 없고 장애도 심하다는 이유로 부모의 반대도 극심했지만 그는 지방에는 장애인야학기관이 없어 야학공부를 핑계로 서울로 올라왔다.

그는 "28살이 되고도 집에 있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비장애인들이 나이가 되면 독립하듯이 나 또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 사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야학에 다니기 전, 줄곧 집에만 있었던 이씨는 세상 밖 구경을 할 기회도 많지 않았다. 이씨에 따르면 많은 장애인들이 이씨와 같은 상황이고 그래서 장애인야학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 중 절반가량은 세상구경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싶은 마음에 야학에 오는 사람이란다.

등하교 불편해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장애인 많아

a 노들장애인야학 이흥섭(오른쪽)씨가 수업 중에 야학 교사에게 설명을 듣고 있다.

노들장애인야학 이흥섭(오른쪽)씨가 수업 중에 야학 교사에게 설명을 듣고 있다. ⓒ 정현주

그는 저녁6시부터 시작하는 야학수업을 위해 오후부터 준비를 한다. 쌍문동에서 야학교가 있는 구의동까지 오려면 지하철을 두 차례 갈아타야 하는 긴 등굣길 때문이다. 전동휠체어를 타기 때문에 갈아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엘리베이터가 있는 역을 찾다보니 어쩔 수 없다. 게다가 간혹 지하철에서 엘리베이터가 작동이 안 되기라도 하는 날엔 지각을 하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씨는 "나는 이제 전동휠체어 사용도 꽤 익숙해졌고 집이 서울이라서 학교까지 등하교가 가능하지만 학교를 다니고 싶어도 중증이거나 집이 멀어 등하교 문제로 포기하는 학생이 많다"고 전했다.

노들장애인야학에는 등하교지원차량 3대가 있지만 운전자가 없어 차량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야학교사들이 돌아가며 운전을 해서 3대 중 한 대만 겨우 운행하고 있는 정도.

노들장애인야학 좌동협 교사대표는 "현재 야학생은 30여명에 불과하지만 등하교만 해결되면 수업을 들을 수 있는 학생들이 몇 배는 많아질 것"이라며 등하교 서비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씨는 등하교지원 이외, 야학도 교육기관으로 인정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특수학교나 특수학급에 다니는 장애학생들이 자신들의 교육받을 권리에 대해 당당하게 요구하는 것이 늘 부러웠다고 한다.

야학은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지원하는 교육기관이 아니다 보니 시설이 열악하고 교사 수가 부족한 것은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것으로 돼 있는 게 아직까지의 사회적 인식이다.

이씨는 "장애인야학도 공식적인 교육기관으로 인정받고 정기적으로 예산을 지원 받게 되면 야학에 다니려는 장애인도 많아질 테고 자연스럽게 교실도 넓혀질 것이다. 다음으로는 아마 학생 수에 맞게 교사 수도 늘어나지 않겠는가"라고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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