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부정, 나의 잘못은 없는가?

현직 교사가 수능시험 부정행위를 지켜보며 쓴 반성문

등록 2004.12.06 12:58수정 2004.12.06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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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자 들어간 사람은 다 죄인이야."

점심 시간, 교무실에서 수능시험 부정행위에 대한 얘기가 한참 오고가던 중 한 동료교사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입니다. 그 말이 나오게 된 경위는 이렇습니다.

수능시험 부정사건을 취재하러 온 기자들이 교육부 고위 관료에게 사진기를 들이댔습니다. 그러자 그는 "왜 나를 죄인 취급하느냐?"고 따집니다. 뉴스를 통해 접한 이 장면을 두고 저마다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그럼 죄인이 아니란 말이야?"
"부정행위를 한 아이들이 죄인이지 교육부 관료가 왜 죄인이야?"
"군대에서 졸병이 무장 탈영하면 사단장까지 징계를 받잖아."
"그래서 교육부총리도 사표를 낼까 말까 하는 거지."
"'교'자 들어간 사람은 다 죄인이야."

그 마지막 말이 참 절묘했는지 신기할 정도로 더 이상의 군말이 없었습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오후 수업에 들어가기 위해 출석부를 챙기다가 문득 이런 물음이 생겼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무슨 죄를 지었을까?'

금세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꽤 오래 전 일입니다. 저는 방학중에 학교에 올라와 교무실에서 연말정산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열 장이 훨씬 넘는 의료비 영수증을 종이에 붙이고 서류에 내역을 적느라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그날 세금 감면을 받기 위해 제출한 영수증은 거지반 '가짜'였습니다.


엄연한 범법행위를 저지르면서 일말의 불안감이나 양심의 가책 같은 것이 없을 리 없었습니다. 하지만 주변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가짜 서류를 꾸미는 것을 보면서 그것이 현실(현실이 아니라 범죄인데)이거니 하고 쉽게 넘기고 만 것입니다.

그 이듬해 저는 가짜 영수증을 제출하는 짓을 그만두었지만, 가짜 영수증을 앞에 놓고 붙일까 말까 망설인 시간이 너무 짧았다는 사실이 저를 오랫동안 부끄럽게 했습니다.


저는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나 제 몸으로 낳은 아들에게 수능시험을 볼 때 부정행위를 해서라도 높은 점수를 따라는 말을 한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엄연한 범법행위인 줄 알면서도 남들과 함께 하면 죄가 면해지리라는 생각에 일을 저질러버린 그런 취약한 도덕관과 윤리의식을 가진 사람이었으니 부지불식간에 아이들의 인격 형성에 악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요즘 내신 부풀리기에 대한 지탄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물론 저도 직업이 교사이니 그 목소리로부터 자유스러울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교사의 입장에서 굳이 해명을 하자면 할 말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다른 학교가 다 점수를 부풀리는데, 우리 학교만 제대로 평가를 하게 되면 애꿎은 우리 학생들만 손해를 보는 그런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변명이지만 죄인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기방어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무슨 죄를 지었을까?'

다시금 생각해보건대, 제가 저지른 잘못은 그런 현실과 원칙 사이에서 갈등하고 번민한 시간이 너무 짧았다는 점입니다. 또한, 절대평가의 제도적인 결함을 보완하기 위한 방책을 강구하지 않고 너무도 쉽게 현실에 순응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일개 교사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원칙론과 현실론이 맞붙으면 현실론이 백전 백승하는 그런 패배주의적인 삶을 살아온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사실, '내신 부풀리기' 문제를 해결할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는 분들이 바로 교장선생님들입니다. 교장선생님들이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만들어내기로 한다면 일은 의외로 쉽게 풀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국교장단회의에서 이런 문제로 고민하거나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말을 들어보지는 못했습니다. 교육계의 원로들이 평가의 원칙과 공정성이 무너지면 결국 교육의 기반이 무너진다는 사실 앞에 이리도 태연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다른 학교에서 점수를 부풀리는데 우리 학교만 원칙을 적용하면 상대적으로 내 제자가 손해를 보리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교육자로서 당연하고 마땅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계속 진행된 이후에 초래될 엄청난 결과에 대해 고민하는 것도 교육자의 몫일 것입니다.

이번 수능시험 부정사건은 이런 고민을 하는 교육자나 어른들이 절대 부족한 우리 사회의 음습한 그늘에서 저질러진 범죄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번 수능부정을 둘러싼 논의 속에서 윤리과목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리기도 합니다. 이런 주장의 허구성에 대해서는 굳이 말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입시위주 교육의 틀을 유지하면서 윤리 교육을 강화시킨다는 자체가 모순이요, 어불성설이기 때문입니다. 저녁 뉴스를 통해 그 말을 듣는 순간 제 입에서는 이런 말이 튀어나오기도 했습니다.

'윤리라니? 노예에게 무슨 윤리야?'

미래의 주역인 학생들을 노예라고 지칭하는 것은 제 스스로 제 뺨을 때리고 싶을 만큼 가슴 아픈 일입니다. 하지만 상당수 학생들 스스로가 자신을 입시노예로 생각하고 있으며,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밤 10시, 혹은 11시가 넘도록 학교에 남아 딱딱한 의자에 앉아 공부를 강요당하고 있으니, 자유인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노예에게는 도덕이나 윤리가 필요 없습니다. 윤리란 인간의 존엄성이 담보되는 최소한의 조건 속에서 존재할 수 있는 덕목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윤리교육을 강화시킬 생각이라면 먼저 학생들을 입시노예의 상태에서 풀어주어야 합니다.

암기를 위한 지식이 아니라 삶을 위한 지식이 되도록 학습환경을 바꿔주어야 합니다. 또한, 정규수업이 끝나면 방과 후 여가시간을 자신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마땅히 배려해주어야 합니다.

이런 너무도 당연한 기본적인 요구가 너무도 쉽게 무시되는 인권의 사각지대가 바로 학교입니다. 그것은 학교 구성원들이 모두 비인격적이거나 폭력적인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어서가 결코 아닙니다. 대다수의 학교와 대다수의 교사들이 함께 저지르는 일이기에 죄가 되는 줄 모르고 쉽게 넘어가는 까닭입니다.

상급관청의 감사에 대비하기 위해 공문서를 위조하는 일도 그렇습니다.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교사가 일러주는 곳에 동그라미를 치면서 학생들은 교사로부터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부당한 수단을 써도 좋다는 암묵적인 가르침을 받는 셈이 되지만, 이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교사는 별로 눈에 띄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저질러진 교실에서 인간의 도덕성이 강조된다한들 머리로 암기하는 지식으로밖에 전달되지 못할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입니다. 이것은 교육의 손실이요, 낭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한때나마 저도 그 행렬 속에 있었으니 죄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겠습니다.

아, 이제 다시는 현실을 핑계삼아 아이들을 수렁에 빠뜨리는 죄를 범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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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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