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을 물고 발갛게 잘 익은 감이종찬
그래. 나도 저 아이만 할 때 우리 집 감나무 꼭대기에 달랑 매달린 그 맛난 감홍시를 따먹으려 돌팔매질을 자주 했다. 하지만 아무리 조약돌을 던지고, 있는 힘을 다해 감나무를 발로 차도 그 감홍시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 조약돌을 마구 던지다가 잘못하여 커다란 간장독이 깨지는 바람에 두 손을 들고 벌을 서기도 했다.
"외할배! 퍼뜩 저 감홍시 좀 따 주라. 저 감홍시가 맨날 날보고 약을 자꾸 올린다카이."
"하필이모 와 그 감홍시로 따 묵을라카노? 도장(창고) 앞에 가모 곶감 맨든다꼬 주렁주렁 매달린 기 감 아이더나?"
"할배야, 내는 저기 매달린 감홍시 저기 훨씬 더 맛나 보인다카이."
"깐챙이(까치)도 묵고 살아야 올 겨울을 날 거 아이가. 그라고 깐챙이밥을 남겨놔야 내년에 더 많은 감이 달린다카이."
그 당시 우리 마을에서는 집집마다 싸리대문 옆에 떨감나무가 한두 그루씩 그 집을 지키는 지킴이처럼 우뚝 서 있었다. 우리 집 황토마당 귀퉁이에도 해걸이를 하는 떨감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해걸이를 하든 하지 않든 감을 딸 때마다 감나무 맨 꼭대기에 감홍시 하나를 반드시 남겨두곤 했다.
내 아버지뿐만이 아니었다. 나락타작이 끝난 뒤 감을 딸 때마다 마을 어르신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것처럼 감홍시 하나를 덩그러니 남겨두었다. 그것도 감나무 맨 꼭대기에 매달린 잘 익은 감, 흉터 하나 없는 아주 잘 생긴 그 감을 말이다. 언뜻 바라보면 감나무 가지에 마치 해가 걸린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의 그 빨간 감….
그 감은 까치밥이자 겨우 내내 우리 마을사람들의 집을 지켜주는 일종의 수호신이었다. 우리 마을사람들은 땡겨울이 되면 집밖에서 떠돌던 잡귀들이 추워서 마을사람들의 집으로 들어온다고 믿고 있었다. 그때 잡귀들이 땡겨울을 지내기 위해 싸리대문을 기웃거리다가 감나무 가지에 매달린 빨간 감빛을 보고 놀라 달아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