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구! 백구! 백구 어디갔냐?김규환
쥐약 먹은 쥐 먹고 떠난 우리 집 백구
초등학교 3학년 때 일이다. 학교 갔다와보니 백구가 보이지 않았다. 평소라면 다리께까지 마중을 나왔을 백구다. 올라타고 핥고 귀찮게 하고 나서 내 뒤를 졸졸 따르던 똥개 백구가 오늘은 왠지 보이지 않았다.
"엄마, 백구 어디갔당가?"
"돌아올 것이여. 지달려봐."
"백구! 백구!"
"백구야!"
가방을 마루에 던져놓고 뒤안(뒤뜰)으로 가서 개를 찾았다.
"백구! 백구 어딨냐?"
온 동네를 쓸고 다니며 백구를 불렀다.
'요년이 발정이 난 것이여? 아닌데 새끼를 밴 놈이 무슨 발정인가? 그렇다면 밖에 쏘다니고 있을랑가.'
두 시간여를 찾아 헤맸다. 그래도 보이지 않았다. 지친 몸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 백구가 없어라우. 팔아먹은 거 아니제라우?"
"새끼 밴 놈을 팔아먹는 사람도 있다냐?"
"글면 어디 갔지?"
"지달려봐. 지가 어디 가겠냐? 때 되면 돌아올텡께."
사람이고 짐승이고 간에 집 나간 놈은 언젠가 때가 되면 돌아오게 되어 있다. 엉엉 울면서 해가 지길 기다리며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 때였다.
사뿐사뿐 주인을 반겨야 할 백구가 온몸에 흙투성이가 되어 아무거나 물듯이 쏜살같이 사립문을 통과한다.
"백구! 백구 어디 갔다 왔어? 이리 와."
내 말을 알아들을 턱이 없었다. 외양간으로 측간으로 쏘다니다가 한번 꼬꾸라지더니 다시 힘을 내서 장독대를 돌아 뒤뜰 감나무 밑으로 가서 마구 땅을 휘집어파더니 개 거품을 한정 없이 쏟아낸다. 발도 전혀 규칙적이지 않게 마구 움직여댄다.
백구가 무서워졌다. 거품 질질 흘리며 인사불성이다. 한 동안 그곳에 머물던 내 친구는 마지막 힘을 써서 일어서더니 밖으로 나갔다. 그 때 아버지께서 들일을 하시고 집으로 오셨다.
"뭔 일 있냐?"
"아부지 백구가…."
사태를 감지한 아버지는 손에 가시덩굴 벨 때 쓰던 가죽장갑을 끼고 개를 붙들었다. "아그르르" "걀걀" 침을 질질 흘리며 발버둥치며 으르렁거리는 백구는 더 이상 순한 개가 아니었다.
"후딱 가서 세숫대야에 구정물을 두 바가지 퍼오니라."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까스로 붙들고 강제로 구정물을 양껏 먹였다.
"놔보자."
땅을 박차고 일어선다.
"야, 백구 어디 가? 어디 가냐니까?"
뒤따랐지만 벌써 사라지고 없다. 뒷모습이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제 집이라고 마지막 한번 들어와서 하직 인사하는 영물이 개다. 저 예쁜 것이 백구였다. 떠나가는 처연한 모습을 보며 하염없이 울었다. 더구나 미치도록 아름다운 뒷모습은 딴 데 있었다. 자신이 죽는 마지막 모습을 절대 보이지 않으려고 집 밖으로 멀리 가서는 몇 달이고 찾지 못하도록 아름답게 죽어간 것이다.
눈이 탱탱 불도록 울고 나서 물었다.
"엄마, 백구 돌아오제라우?"
"그려."
"아부지 왜 근다요?"
"니기 영순이 하래비가 놓은 쥐약을 먹은 것이여. 내 이놈의 인간을…."
"지기 아부지 가지 마쇼."
"놔, 놓으라니까. 한두 번이어야 말이제. 남들은 언제 마을에서 이런 짓 한 일이 있어. 그 못된 인간 다시 들어오고 나서 요로코롬 됐단 말이시."
"글도 안 돼라우. 할 말 있으먼 낼 아직에 따짓쇼."
"호랭이 물어갈 인간! 천벌을 받을 것이여."
사실 우리 집안엔 개가 잘 되지 않았다. 컸다 싶으면 광견병에 죽고 쥐약 먹고 죽었다. 그 때 일은 광주에 나가 살던 할아버지뻘 되는 분이 동네에 다시 들어와 살면서부터 동네 개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사건의 시작이었다.
시골마을엔 평소 개를 풀어놓고 기르는데 몇 마리가 어울려 다닌다고 쥐약을 논밭에 일부러 놓아 죽인 까닭이다. 미리 경고라도 했으면 좋았으련만 원성이 잦고 싸움이 그치지 않았다. 그 뒤로 어머니가 계신 중학교 2학년 때까지는 집에서 개를 기르지 않았다.
쥐약 먹은 쥐를 먹고 내 친구 백구는 죽어서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