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에 얽힌 추억 세 가지

쥐에 물린 할머니, 쥐약 먹은 백구, 학교에 쥐꼬리 가져가던 일

등록 2004.12.07 08:00수정 2004.12.07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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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가 단지 징그럽지만은 않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곡식만 축내지 않았다면 같이 지낼만 했던 영물이지요. 쥐처럼 부지런히 살고 싶습니다.
쥐가 단지 징그럽지만은 않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곡식만 축내지 않았다면 같이 지낼만 했던 영물이지요. 쥐처럼 부지런히 살고 싶습니다.김규환
쥐에 물린 할머니께 담뱃불 붙여드리다 12살 때 담배 배운 아버지


"항월에 살 때다. 니기 할매가 자고 있는데 뭔가 꼼지락꼼지락 발가락을 긁더란다. '서방님 뭐 하셔요. 간지러워요'했더니 묵묵부답이었단다. '그만 허싯쇼'해도 아무 말이 없더란다. 이윽고 '찍찍' '찍찍찍' 쥐새끼 서너 마리가 쥐구멍으로 들어와서 자고 있는 니 할머니 발을 핥더란다.

'악!' 코큰 할매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지. 놀란 쥐새끼들이 니기 할매 발모가지를 콱 물어불었제. 내가 열두 살 때부터 니 할매 병 수발하느라 봉초로 담뱃불 붙여들이다봉께 그날부터 담배를 배워버렸다. 지독히도 고상을 하셨어. 반년은 누워 계셨응께."


아버지께서 생전에 내게 들려주신 이야기다.

양상군자(梁上君子)는 단지 도둑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서생원 서족(鼠族)을 일컫기도 한다. 조선시대에서 한말(韓末)을 거쳐 50, 60년대로 이어지는 예전 방 구조를 보면 금방 짐작이 간다.

문만 여닫을 수 있을 뿐 안과 밖이 정히 구분되지 않았다. 내 어릴 때 방도 흙집이라 쥐새끼들이 천정에 붙어있질 않나, 밤마다 설강 그릇을 엎어놓고, 흙벽을 뚫고 제집 드나들 듯했다. 그 놈들은 뚫고, 온 식구는 종이를 꼬깃꼬깃 넣거나 헝겊이나 장갑으로 틀어막고 하며 옥신각신했다.


몇 번인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골똘히 눈싸움을 하다가 "야, 안 나가!" 윽박지르고 빗자락(빗자루)으로 톡톡 치면 그도 잠시 다시 고개를 내민다. 가난한 우리집에 뭐 먹을 게 있다고 무척이나 귀찮게 했다.

들락거리는 쥐 때문에 우리 집 방안은 온통 쥐똥 천지였다. 이틀에 한 번은 쥐똥을 쓸어내느라 허비한 시간도 만만치 않았다. 방 안에 쌓아둔 고구마 뒤주까지 그들의 활동무대였다. 자고 있으면 밖에서 이삼십 분 동안 문창살을 달그락달그락 긁는데 잠마저 확 깬다.


쥐는 아예 소와 함께 살았다. 겨울철일수록 외양간에 소 등짝 멍석 안에 들어가 괴롭히기도 하고 썰어놓은 여물에서 알곡만 챙겨먹기도 한 못된 놈이었다.

방안과 설강, 여물 청, 구시(구유), 외양간을 넘나드는 이놈을 처치해야 하는데 가장 간단한 방법은 쥐약을 놓은 것이었지만 그게 말같이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차선으로 쥐가 다니는 길목에 물을 절반 쯤 채워둔 큼지막한 통을 놓고 여기 빠지게 한 뒤 기어 올라오지 못하게 해서 익사하도록 했다.

백구! 백구! 백구 어디갔냐?
백구! 백구! 백구 어디갔냐?김규환
쥐약 먹은 쥐 먹고 떠난 우리 집 백구

초등학교 3학년 때 일이다. 학교 갔다와보니 백구가 보이지 않았다. 평소라면 다리께까지 마중을 나왔을 백구다. 올라타고 핥고 귀찮게 하고 나서 내 뒤를 졸졸 따르던 똥개 백구가 오늘은 왠지 보이지 않았다.

"엄마, 백구 어디갔당가?"
"돌아올 것이여. 지달려봐."
"백구! 백구!"
"백구야!"

가방을 마루에 던져놓고 뒤안(뒤뜰)으로 가서 개를 찾았다.

"백구! 백구 어딨냐?"

온 동네를 쓸고 다니며 백구를 불렀다.

'요년이 발정이 난 것이여? 아닌데 새끼를 밴 놈이 무슨 발정인가? 그렇다면 밖에 쏘다니고 있을랑가.'

두 시간여를 찾아 헤맸다. 그래도 보이지 않았다. 지친 몸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 백구가 없어라우. 팔아먹은 거 아니제라우?"
"새끼 밴 놈을 팔아먹는 사람도 있다냐?"
"글면 어디 갔지?"
"지달려봐. 지가 어디 가겠냐? 때 되면 돌아올텡께."

사람이고 짐승이고 간에 집 나간 놈은 언젠가 때가 되면 돌아오게 되어 있다. 엉엉 울면서 해가 지길 기다리며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 때였다.

사뿐사뿐 주인을 반겨야 할 백구가 온몸에 흙투성이가 되어 아무거나 물듯이 쏜살같이 사립문을 통과한다.

"백구! 백구 어디 갔다 왔어? 이리 와."

내 말을 알아들을 턱이 없었다. 외양간으로 측간으로 쏘다니다가 한번 꼬꾸라지더니 다시 힘을 내서 장독대를 돌아 뒤뜰 감나무 밑으로 가서 마구 땅을 휘집어파더니 개 거품을 한정 없이 쏟아낸다. 발도 전혀 규칙적이지 않게 마구 움직여댄다.

백구가 무서워졌다. 거품 질질 흘리며 인사불성이다. 한 동안 그곳에 머물던 내 친구는 마지막 힘을 써서 일어서더니 밖으로 나갔다. 그 때 아버지께서 들일을 하시고 집으로 오셨다.

"뭔 일 있냐?"
"아부지 백구가…."

사태를 감지한 아버지는 손에 가시덩굴 벨 때 쓰던 가죽장갑을 끼고 개를 붙들었다. "아그르르" "걀걀" 침을 질질 흘리며 발버둥치며 으르렁거리는 백구는 더 이상 순한 개가 아니었다.

"후딱 가서 세숫대야에 구정물을 두 바가지 퍼오니라."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까스로 붙들고 강제로 구정물을 양껏 먹였다.

"놔보자."

땅을 박차고 일어선다.

"야, 백구 어디 가? 어디 가냐니까?"

뒤따랐지만 벌써 사라지고 없다. 뒷모습이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제 집이라고 마지막 한번 들어와서 하직 인사하는 영물이 개다. 저 예쁜 것이 백구였다. 떠나가는 처연한 모습을 보며 하염없이 울었다. 더구나 미치도록 아름다운 뒷모습은 딴 데 있었다. 자신이 죽는 마지막 모습을 절대 보이지 않으려고 집 밖으로 멀리 가서는 몇 달이고 찾지 못하도록 아름답게 죽어간 것이다.

눈이 탱탱 불도록 울고 나서 물었다.

"엄마, 백구 돌아오제라우?"
"그려."
"아부지 왜 근다요?"
"니기 영순이 하래비가 놓은 쥐약을 먹은 것이여. 내 이놈의 인간을…."

"지기 아부지 가지 마쇼."
"놔, 놓으라니까. 한두 번이어야 말이제. 남들은 언제 마을에서 이런 짓 한 일이 있어. 그 못된 인간 다시 들어오고 나서 요로코롬 됐단 말이시."
"글도 안 돼라우. 할 말 있으먼 낼 아직에 따짓쇼."
"호랭이 물어갈 인간! 천벌을 받을 것이여."

사실 우리 집안엔 개가 잘 되지 않았다. 컸다 싶으면 광견병에 죽고 쥐약 먹고 죽었다. 그 때 일은 광주에 나가 살던 할아버지뻘 되는 분이 동네에 다시 들어와 살면서부터 동네 개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사건의 시작이었다.

시골마을엔 평소 개를 풀어놓고 기르는데 몇 마리가 어울려 다닌다고 쥐약을 논밭에 일부러 놓아 죽인 까닭이다. 미리 경고라도 했으면 좋았으련만 원성이 잦고 싸움이 그치지 않았다. 그 뒤로 어머니가 계신 중학교 2학년 때까지는 집에서 개를 기르지 않았다.

쥐약 먹은 쥐를 먹고 내 친구 백구는 죽어서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도둑고양이는 이 집 저 집 설강 뒤지기 바빴나보다.
도둑고양이는 이 집 저 집 설강 뒤지기 바빴나보다.김규환
전국 동시 쥐잡기

저녁밥을 먹고 다들 숨바꼭질 하러 밖으로 나와 냇가에 모여 있었다.

"야야, 꺼거 뭐냐?"
"뭐긴 마. 쥐새끼잖어."
"뭐야? '새앙쥐'가 셤을 친다고?"
"모르는 소리 하지 마 임마. 쩌것이 얼매나 헤엄을 잘 친다고. 100미터도 건넌당께."

쥐는 달리기 선수인데 물갈퀴를 사사삭 저으며 잘도 건넌다. 30여m를 건너는 데 40여 초 걸린다.

"그건 그렇고 니기덜 쥐꼬리 구했냐?"
"엄니가 쥐약을 놓았다고는 허는디 오늘 저녁 봐봐야제."
"핵교에 낼까장 안 갖고 가믄 선상님이 혼낼 것인디. 난 하나 구해놨지롱."

"쥐약 놓아 다 같이 쥐를 잡자."
"부락 공동으로 만들고 공동투약하자."
"쥐는 살찌고 사람은 굶는다."
"한 집에 한 마리만 잡아도 수만 명이 먹고 산다."
"애써 지은 농사 쥐가 다 먹는다."


동네 벽보판엔 이런 구호가 난무했다. 가을에서 초겨울엔 더 심했다. 오죽하면 쥐꼬리를 잘라서 학교에 가져오라 했겠는가. 많게는 전국에서 생산량의 10%까지 먹어치우는 쥐. 이 쥐를 잡기 위해 집집마다 한 봉지씩 나눠주었다. 때가 되면 하루에도 몇 번이고 마을 방송이 나왔다.

"아아~ 알려드리겄습니다. 주민 여러분! 오늘 저녁 양지부락은 일제히 저녁 7시를 기해 쥐약을 놔주시기 바랍니다. 집집마다 개는 꼭 묶어주시기 바랍니다. 이상 마을 회관에서 말씀드렸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겄습니다. 오늘 저녁 7시에 한 분도 빠짐없이 쥐약을 놓으세요. 감사헙니다. 그리고 포획한 쥐는 내일 아침에 마을 회관 앞으로 가져오시기 바랍니다."

정부에서 하는 일은 늘 강제였다. 실적을 올리는 작업에 어떻게든 옆집에서 한 마리라도 빌려서 내놓아야 했다. 식량의 10% 이상을 축냈던 쥐였으니 오죽했겠는가.

쥐약은 파란 가루약이다. 빨간 물약도 있다. 정부에서 나눠준 건 주로 가루약이었다. 삶은 고구마를 으깨 가루를 칠하고는 군데군데 길목에 놓았다. 주로 놓은 곳은 곳간이나 뒤주, 아직 탈곡하지 않은 볏단을 쌓아둔 낟가리 또는 외양간 근처였다.

때론 가보 1호인 소가 긴 혀로 고구마를 날름 하는 통에 소까지 잡는 일이 있었던 게 쥐잡기다.

기생하는 쥐와 박멸하려는 사람들 간의 끊이지 않는 전쟁은 오랫동안 지속되다가 이젠 민간이 자율로 하고 있다. 낟가리 안에 둥지를 틀고 생쥐 열댓 마리 까놓은 그 시절, 도둑고양이도 한패가 되어 없던 집안 살림 거덜 내던 그 시절. 이제는 오랜 과거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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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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